요즘 부쩍 정신 사나우리만치 산만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뚱아리는 하나고, 나이를 먹다보니 체력은 줄어듭니다. 이 체력 문제 때문에 부쩍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최근 기차를 타고 지방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요, 예전에는 하룻밤 잘 자면 다음날 말짱했는데, 이제는 주말까지 출장의 피로가 이어지네요. 원래 이 정도 강도로 미팅 스케쥴을 잡아도 건강상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은 목이 늘 쉬어있어요. 시간은 곧 건강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자원이라고들 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점점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 정신적 에너지를 일에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체력으로 인해 줄어드니까요. 건강관리를 통해 체력을 키우려고 한들, 결국 줄어드는 총 체력의 캐파 중 가용 용량을 늘리려는 것이니, 노화라는 매크로 트렌드를 아주 거스르기는 어렵겠죠. 시간은 곧 체력이고 건강이라고 생각하고 더 소중히 나를 안배해야겠습니다. 단위 시간당 가치 밤을 많이 새는 것은 그 자체로 자랑이 아닌데 종종 열일하는 자아에 취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밤을 샌다는 건 일을 비효율적으로 오래한다는 뜻일수도 있고, 혹은 가치가 낮은 일을 하며 밤을 새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단위 시간당 최대한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이 많아지면 현실적 데드라인에 닥쳐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지금 해야 할 일의 목록에서 벗어나 과연 이 목록 속의 일들이 중장기적으로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나를 소모하는데, 여기에서 축적되는게 있는지, 그리고 축적되는 것들이 어떤 구심점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경쟁력이 될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몰입의 조건 요즘 비로소 제가 뭘 잘하는 지 조금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 스킬을 어떻게 축적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몰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몰입할 때 끈기를 가지고 집요하게 시행착오를 겪고, 고통스러운 러닝커브를 체험하면서, 내 시간과 체력을 스킬셋과 노하우로 자산화하게 됩니다. 요즘의 산만함과, 하는 일들이 어떤 구심점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몰입하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동기, 내적 동기(감정적 애착)와 외적 동기(경제적 이익)가 갖춰져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해서 언젠가 대외적으로도 성공하는 상상에 빠져 몰입하는 거죠. 온전히 몰입한다는 것은 굉장히 낭만적인 일입니다. 자나깨나 정신이 있는 순간에는 늘 그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이니까요. 낭만! 좋아합니다. 낭만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왜 심사역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낭만이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고 신기한 시장을 탐색하면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고, 열정이 넘치는 역량 있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운명처럼 투자자로서 연을 맺고, 사업의 역경을 함께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소중한 인연이 되고, 성공하면 함께 부자가 되는 그 모든 현재의 과정과 미래의 상상이 저에게는 낭만이었습니다. 결국, 실제 업무 자체에 대한 애착과 함께 언젠가 함께 부자가 될수도 있다는 외적 동기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죠. 언젠가부터 사라진 낭만 최근 들어 관심이 가는 일도 너무 여러가지고, 알량한 벌이가 있다보니 어설프게 눈만 높아졌달까요. 이렇게 벌어서 부자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요만큼의 커리어와 알량한 경제적 풍요로 낭만의 빈곤이 찾아왔다면 심각한 자의식 과잉일겁니다. 낭만이 식어버리기까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게 한 여러가지 사건사고들과 풍파도 있었습니다. 빈곤한 집안에서 태어나진 않았기에 한번도 밥 굶는 각오로 헝그리하게 뭔가에 임해본 적은 없지만, 첫 취업하고, 첫 이직할 때 누군가 나를 고용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던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달라진 것 같습니다. 헌데, 진짜 성장하던 사람은 그때의 저인 것 같아요. 고용주에 감사한 마음도 없던건 아니지만, 고용주를 위해 일한게 아니라 저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하던 과정 속에서 몰입했던 거죠. 결국 조금은 순진하게 당장의 업무에서 오는 재미와 도파민에 집중하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경제적 리워드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놓고, 눈앞의 일에 몰입하는 시간 덕분에 커리어도 벌이도 생겼더라구요. 목적과 수단 로또를 맞은 일확천금 부자가 아닌, 성장해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이 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돈은 방향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되려 길을 잃게 만듭니다.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몰입해서 낭만적이게 지내는 것이 내가 행복한 길이고, 그래야만 돈 벌 기회도 찾아오기에, 동시에 성공할 가능성도 가장 높은 방법이 아닐까요. 조급해지다보면 돈이 목적처럼 보이곤 하는데, 조급하면 충분한 선택지를 만들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가 됩니다. 목적 삼았던 돈과 오히려 멀어지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