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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uit of Happiness
지속가능한 도전을 위한 2023년 회고록
Cath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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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서류들에 날짜를 2023년이라고 작성하고 2024년이라고 슬쩍 바꾸고 있겠네요.
연말은 회고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연초, 연중에 했던 수많은 다짐들이 스쳐지나갑니다. 쓰다만 글, 중도 해체된 프로젝트들, 삽조차 뜨지 못한 기획들이 아른거리네요.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팀이 해체되어서 등등 미완으로 남은 이유는 많지만 어쨌든 다 핑계겠죠? 정말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면 다른 우선순위를 조정했을 것입니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은 한가득인데, 제대로 한건 없었습니다. 의욕만 앞서고 실천은 부족한 용두사미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보다 지속 가능한 도전 모드로 살기 위해 연말 회고 레쓴-런을 몇가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지속성 있게 도전하기 위해서...
(1) 잘해야 한다는 강박 버리기
사람들에게 결과물이 보여진다는 생각에 완벽하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리서치는 조금 더 꼼꼼하게, 글은 조금 더 다듬어서, 그래픽은 조금 더 보기 좋게... 70점짜리 결과물은 쉽게 만드는 것 같은데 90점으로 완성도를 높이려면 들어가는 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90점은 되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고, 비로소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90점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노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잠 좀 덜 자고, 독하게 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으로 무마해버렸던 거죠.
이건 업무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남들이 80점짜리 결과물을 가져갈 때 저는 시간과 노력을 좀 더 들여 90점짜리를 들고가는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결과물은 칭찬받았고, 비교적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보상 루프가 뇌에 박혀버린 것일까요.
(2) 특별하다는 생각 버리기
90점이 되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이유는 자만이었습니다. 남들이 만든 결과물을 보고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이상한 경쟁심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나는 특별하니까 (늘 그렇게 칭찬받아왔으니까) 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저변에 깔려있었나봅니다.
무엇이 사람을 채찍질할까요? 육신의 피로함을 이겨내면서 늦은 밤, 새벽에 집중할 수 있게 할까요? 저에게는 '특별함'이었습니다. 결과물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경제적 보상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을 '특별함'이라고 여겨왔습니다.
특별한 월급쟁이가 되는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정욕구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인정은 희소하기에 가치있는 것이라 인정받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근 삼십년 인생을 비추어볼 때, 제 도파민 루프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인정을 쟁취하는 데에 상당히 강화되어있던 것 같습니다.
당장 보고서를 더 잘 쓰고, 더 좋은 피티를 만들어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저는 꽤 확실하게 인정받을 테지만, 저는 특별한 월급쟁이에 머무르겠죠. 인생은 한달 뒤에 끝나지 않고, 큰 결실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제 성과의 기한은 늘 한달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좀 웃긴 얘기지만, 직장은 단기간 내에 소소하고 확실한 도파민을 줄 수 있는 곳입니다.
편견 없이 세상을 넓게 보는 연습
알고리즘의 시대라고들 하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기가 막히게 내가 관심 가지는 컨텐츠를 파악하고, 강화학습을 통해 비슷한 유형의 컨텐츠만 계속 보여줍니다. 컨텐츠 플랫폼은 컨텐츠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면서 의견을 공유할 여지를 주지만 실은 타 사용자와의 인터랙션 없이 컨텐츠를 시청만 하는 사람들이 90%입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수동적으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참 웃긴 일입니다. 검색창을 통해 온 세상의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는데 막상 강화학습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걸 계속 본다는 게 말이에요. 말이 길어졌는데, 혼자 유튜브 보는게 세상에 대한 시야를 점점 좁힌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어제 서점을 갔다가 문득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에는 자격증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재미난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많고, 이런 저런 자격증과 취미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내가 하는 고민이 얼마나 평범한지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나는 그저 앞으로 어찌 살아야할지 걱정하는 30대를 앞둔 직장인이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업적인 문구로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책들이 지천에 깔려있고, 나 또한 똑같이 그러한 문구에 혹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나에 집중한다는 것은
(1) 보여지는 모습에 집착하지 말 것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야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사치스러운 오만함인 것 같습니다. 미술계 20년 거장도 아닌 주제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이런 강박에 시달리는 걸까요?
보여지지 않으면 나아질 문제일까요? 올해는 스텔스 모드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작당모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더니, 올해는 정말 요란하기만 했거든요.
요즘은 시작부터 주변인들로부터 응원받으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지속하는 방식을 많이들 쓰더군요. 하지만 일단 정말 자력으로 0에서 1을 만든 뒤에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품은 본질이지,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니까요.
창업가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하는 것 같네요. 사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겠죠. 사람들은 작고 부족한 시작을 깔보지 않고 대체로 응원합니다.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도전을 이어나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고,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은 단계이니까요.
(2) 긴 호흡으로 나를 위한 일을 할 것
70점짜리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70점에서 90점을 만드는 데에 시간과 정성, 노력이 많이 든다는 것은 작금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70점짜리를 더 많이 만들다보면, 언젠가는 시작점이 80점짜리가 될지, 혹은 20점을 더 빨리 높이는 숏컷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에게 당장 보여주기 위해 시간을 갈아넣기 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아웃풋을 더 빨리 낼 수 있는 방법을 1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보려고 합니다. 나는 10년 뒤에도 살아갈텐데, 사람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도, 갑자기 행운이 벼락처럼 찾아오지도 않기에, 오랫동안 쌓았을 때 의미있을 노력을 꾸준히 해야겠지요.
아마 성과 없이 지루한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조오억번 저어야 완성되는 맛있는 당근죽같은 느낌일까요. 일주일, 한달짜리 초단기 도파민 중독으로부터의 디톡스를 향하는, 건강한 과정이리라 생각합니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
한동안 책을 거의 안 읽었습니다. 어차피 뉴스든 뉴스레터든 유튜브를 통해 생산성 컨텐츠와 시사 뉴스는 충분히 소비하다보니, 자기계발서도, 경제경영서적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게 싫었거든요.
독서를 지식의 수단으로 여긴건 참 바보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하드한 지식이 필요하다면 논문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야겠죠. 독서는 제대로 된 문장을 읽고, 논리력을 연습학, 문해력을 기르는 환경입니다. 지식의 밀도 그만 따지고 적당한 책을 가까이하려고 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연습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고, 기르면 정말 유용한 스킬입니다. 70점짜리 완성되지 않은 글이더라도 정해진 시간을 들여 꾸준히 써보려고 합니다. 쓰다보면 같은 시간 안에 더 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보다 잘 정제해서 표현할 수 있겠죠?
(3) 성장은 방향과 노력의 밀도, 기간의 함수
방향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오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쌓이지 않기에 자산이 되지 못합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지루해할 오조오억번 당근죽을 젓는 과정은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루해 죽을 일일테니까요. 초단기 도파민에 절여져있던 것도 결국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좋아하는 일은 잘하는 일의 하위집합입니다. 이 일이라는 것은 어떤 산업이나 취미같은 것이 아니라, 스킬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관심사는 이해관계에 의해 관심을 발달시키면 되는데, 스킬은 선천적인 영역이 많이 관여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원래 잘하는 일은 회사와 밀접해서 그런대로 계속 발전할 것 같은데,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올해 내가 재미있게+잘 해볼 수 있을 만한 스킬에 대한 단초를 몇 가지 발견했고, 연초에는 강의를 들으면서 이걸 좀더 연습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내년 초에 시도하는 일에 재능이 없을수도 있지만, 대체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어 새로운 걸 배우다보면 그 다음에 대한 단초가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에 도전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겠죠?
노력의 밀도
원래 관용어처럼 속도라고 썼다가 문득 참 모호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 세계에서 사람들은 늘 빠르게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뭘 빠르게 한다는지 대체로 모르겠습니다. 저는 속도보단 노력의 밀도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어쨌든 주어진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해 최대한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잠을 줄이고 바쁜 척을 하는 쇼잉말고, 정말 순간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생활을 바꿔나가는 중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의 고민을 줄이고 생산성에 최대한 몰입할 수 있게끔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고 하죠?
정말 사소하게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외투 걸어두기라던가, 뭐 먹을지 고민이 필요없게 일주일에 몇번은 정해진 식단을 먹기로 하는 것과 같은 생활패턴에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자주 앉아있는 테이블에는 읽어야 할 책을 두었습니다. 짠순이처럼 그만 아끼고,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현명한 소비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기간
사실 방향과 속도는 다들 하는 이야기이고, 매년 고민해왔던 주제이지만, 올해 회고의 진짜 교훈은 '기간'인 것 같습니다. 충분한 시간동안 밀도 높은 노력을 한 가지 방향으로 들이면 반드시 성장합니다. 성장하다보면 성공이 찾아올 수도 있겠죠.
올해 제가 해온 노력들은 단발적인 것들이 많았고, 충분한 기간동안 꾸준히 지속되지 못했기에 자산이 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좌충우돌이 있었지만 사실 다 핑계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의 저의 직장인으로서의 스킬셋들은 최소 10년 이상 갈고 닦아온 독서, 암기, 토론, 문제해결, 엑셀과 피피티 노가다에서 비롯되었는데 말입니다.
2022년은 중꺾마였다면 2023년은 중꺾그마라던데요, 뇌절 한번 해서 2024년은 중꺾그존마합시다.
Ode to failure
2023년은 참 다이나믹한 한 해였습니다. 이렇다 할 성장은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지식도 지혜도 조금은 쌓였을 것이고, 분명 내면이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세상 공부를 많이 했네요.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가장 크게 성장하는 경험은 실패라고 합니다. 실패의 골이 깊어 절망의 늪에 빠지거든,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설 때 인격적으로 도약한다고 믿습니다. 인생이 망할 것 같은 순간에도 오늘과 내일이 있다면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향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삶의 긍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믿는 것입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주변이 조금씩 바뀌다보면 바꿀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들도 바뀌리라 믿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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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erine
불안이와 행복추구권
2024년 상반기 회고록 - 좀 덜 아등바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날씨가 더워지나 싶더니 장마와 함께 상반기가 지나갔습니다. 늘 그랬듯이 다사다난한 분기, 반기를 보내서인지 반년의 세월이 스치듯이 가버렸네요. 아홉수도 반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지난 반기를 전반기, 하반기로 나눠보면, 전반기에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폭삭 삭았고, 하반기에는 전반기의 마음고생을 적절한 시기에 정리하지 못하고 괜히 속을 많이 썩혔습니다. 적당한 고통은 교훈을 몸과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어, 그 다음으로 발전할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정도를 넘으면 그냥 개고생입니다.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감정을 털어내기 어려울 때도 많지만, 잘 갈무리하고 넘어가기 위한 멘탈도 결국 또 갈고 닦아야하는 것임을 회고하면서 느끼게 되네요. 그렇게까지 독기를 품고 아등바등 지냈어야하나 싶습니다. 최근에 저를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 오랜 친구들은 아마 느꼈을 겁니다. 겉으로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불안에 휩싸여있다는 것을요. (글 쓰는 지금이 새벽5시인데 이 불면증도 아마 불안과 스트레스에 기인하겠지요) 인사이드아웃2의 불안이 최근 개봉한 인사이드아웃2 보셨나요? 주인공이 사춘기에 진입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불안, 당황, 부러움, 따분함, 추억 등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이 중 가장 비중있게 묘사되는 감정이 불안입니다. 불안은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망상에 빠지게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불안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양가적이라,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는데, 영화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극단적으로 묘사되어서 저는 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불안은 우리의 시대정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성장이 고착화되어가고 있고, 경기는 불황이고,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 여느때보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공유하는 환경이겠지요. 미래가 언제는 예측 가능했냐만은, 적어도 우리 세대가 미래에 대해 느끼는 장밋빛 채도는 과거에 비해 옅어진 듯합니다. 보통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영화들은 또래 집단 내에서의 시기, 질투, 갈등, 혹은 첫사랑 같은 준거집단 내 타인을 향하는 감정을 묘사합니다. 불안은 사람을 향하기보다는 미래를 향하는 감정인데요, 어쩌면 현재에 대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청소년들조차도 미래의 아득함 때문에 당장 눈앞에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부족해진 점을 묘사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라 환경에 엄청나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무엇을 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에 생각의 흐름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할 때에는 미친듯이 고민과 무관한 업무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더 좋은 방법은 당장, 현재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포근한 햇살, 볼결을 스치는 산들바람, 출근길에 운 좋게 맞아떨어진 건널목의 청신호, 누군가의 소소한 깜짝 선물, 사랑하는 사람의 눈웃음 같은, 일상 속의 행복 요소에 몰입하다보면, 심각한 부족함 없는 일상에 감사하게 됩니다. 물론 큰 불행은 이런 몰입을 근본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큰 불행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회고록만큼은 불행보다는 행복에 대해 적고 싶은 마음이에요. 행복을 찾아가는 미생 집요하고 미련맞은 사람이라서 감정 다스리기에 서툰 것 같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감정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데, 그 적절함이 어디인지는 인생의 지혜가 쌓이면 알게될까요? 지혜가 부족한 미생이지만, 완생이 되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요. 최근 오늘의 회고록 속 이야기들을 나눴던 친구가 저보고 언젠가 꼭 에세이집을 써보라고 응원해줬는데, 빈 페이지를 글자로 채워나가는 행위예술에 재주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친구도 마음 고생을 정말 많이 했던데, 제 굳은살을 어루어만져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추구권 하반기에는 불행보다는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의식적으로 말하고, 고민하려고 해요. 상반기에 미련맞게 행사하지 못한 행복추구권을 좀 행사해볼까 합니다. 카르페디엠, 세렌디피티... 참 진부한 표현들이지만 널리 소비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과 지금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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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erine
2024년 5월의 근황
그간 블로그에 거의 신경을 못 썼습니다. 왜냐면요...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투자 4개, 팁스 4개를 끝냈습니다. 3개월동안 일년치 본업을 다했습니다. 이 와중에 강의도 하나 찍었고, 대외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네요.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한 시기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11시에 서류들을 다 제출한 뒤부터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데드라인에 쫓기며 매일 쪽잠자다가 몸이 부서질 뻔했는데 진짜로 부서지기 직전에 일이 다 마무리되었습니다. 계속 피로에 쩔어서 다니다보니 (쓰면서도 어이가 없지만) 길에서 넘어져서 무릎, 팔꿈치, 손까지 성한 곳이 없습니다. 편도염이라는 것을 앓고 있는데, 턱이 두꺼비마냥 붓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 지독한 병이군요. 이틀정도 집에서 쉬면서 몸살이 심했는데, 마지막으로 아프고 균형을 회복하려나봅니다. 정말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크런치 모드에서는 이성적 사고가 마비됩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생존 본능에 의존하는 fight or flight 모드가 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고 꼼꼼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도파민 중독은 사고회로를 단축시키는데, 아드레날린은 사고를 아예 정지시켜버린달까요. 솔직히 바쁨이 극에 달했던 지난 한 달은 거의 척수반응으로 페이퍼워크만 겨우 해치우는, 거의 사고가 정지된 좀비같은 상태였어요. 이사를 해야해서 집을 새로 구하는데, 5월 초에 처음으로 본 집을 계약해버렸습니다. 완벽한 조건의 집이어서 계약한 건 아니라, 사실 이마저도 아드레날린 중독에 의한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극도의 워커홀릭입니다. 일이 늘 우선이고, 일이 적당하면 일을 더 만들고, 성취할 때 가장 즐거워합니다. 헌데, 난생 처음 이런 정도의 힘듦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몸이 자꾸 새로운 방식으로 아픈게 서럽기도 했구요. 사실 그보다도, 내 앞에 놓인 선택지들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이런 크런치 모드가 다시 찾아오거든 좀더 잘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어떤 힘든 일을 이겨내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스트레스도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정말 생존 본능 수준으로 내몰리는 경험은 처음 해본 것 같아요. 제 한계는 여기인가봅니다. 인생은 단기적으로는 내 뜻대로 안 됩니다. 이번 극한의 크런치도 급작스런 어떤 외부 환경의 변화와, 회피해선 안되는 여러 사람에 대한 책임 때문에 발생했으니까요. 사실 저에게 가장 힘든 스트레스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내 뜻대로 어느정도 됩니다. 앞으로는 건강한 스트레스 수준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책임을 질 일을 덜 만들되, 내가 챙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더 잘 챙기고 싶어요. 몸도 마음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의 양을 줄이되 질적으로 좋은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여실히 배운 것 같습니다. 참, 뭐든 선택과 집중이네요. 오랜만에 글쓴답시고 푸념만 잔뜩해서 조금 민망하지만, 사실 힘들었던만큼 여러 방면으로 생각이 확장되기도 했고, 스킬셋의 측면에서 단련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조만간 밤잠을 설치게 하던 생각의 실타래들을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실은 이전에 기획해놓고 마무리짓지 못한 글이 여러 편이기도 해요. 지금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제일 먼저 블로그로 찾아왔어요. 어쩔 수 없는 글쟁이인가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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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erine
우연에서 인연, 인연에서 운명으로
우연에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운명을 기다리는 나날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 벤처투자를 잘 하려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흔히들 투자 검토 기업을 만나는 것이 사람 만나는 일의 대부분이라고들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업무와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투자 가설에 대해서 산업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야하고, 투자 검토 중인 서비스의 고객 혹은 잠재 고객들의 생각도 직접 들어봐야하고, 포트폴리오사에 도움이 될만한 사업 혹은 후속 투자 관련 네트워크도 꾸준히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투자 기업을 만났을 때, 그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그리고 해당 기업으로부터 매력적인 투자자로 보이기 위해서 필요한 네트워킹이랄까요. 이렇게 네트워킹을 하다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좋은 기업을 추천받고... 네트워킹은 선순환입니다. '네트워킹'은 사실 업무적인 표현이고, 실제로는 그냥 사람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이지요. 사무적이고 상투적이면 그저 이메일로 교신하는 명함으로 존재할 뿐이고, 사람 냄새가 날 때 비로소 관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만남'입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지인에게 필요한 사람을 추천해주고 제가 소개를 받기도 하고, 네트워킹 파티에서 수십장의 명함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신뢰하는 중개인이 있는 네트워킹에서 만나는 것도 모두 우연이지만, 가끔 더 우연하게, 중개인 없이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콜드 메일로 미팅을 요청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혹은 좀 더 낯설게는 자주 가는 가게의 사장님, 더 낯설게는 길가다 번호를 물어서 우연히 알게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하게 시작합니다. 저는 만남의 계기에 편견이 없는 편입니다. 어떤 곳에서, 어떤 경위로 만났든, 만났다면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떤 경험을 해온 어떤 배경의 사람이든, 그러니까 어떤 과거를 거쳤든간에, 인연으로 발전하는 데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태도와 생각, 가치관, 역량입니다. 과거를 보지 않고 현재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으레 사람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짐작하려고 하고,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색안경을 끼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긴 합니다. 우연에 가능성을 열어두면 조금 더 낭만적이게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우연한 만남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을지 설렐 수 있거든요. 우연에서 인연으로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발전하려면 두 사람이 모두 흥미를 가지고 뭔가 서로에게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연이 특별한 것 같습니다. 하필 그 찰나의 순간에, 관심이 생겼다는 거니까요. 3년쯤 전에 온라인 피칭 행사에서 만났던 대표님 한분께 미팅을 요청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던 시장을 타겟하는 아이템이었고, 대표님도 논리적이고 열정적인 분이었는데요, 그 당시 제가 원래 그분 사무실을 찾아가기로 했었는데, 미팅 장소가 갑자기 저희 사무실로 변경되면서, 그 동네에서 유명한 케이크를 사오셨어요. 웃기게도 그 앵무새 케이크가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미팅 후 아주 많은 질의와 여러가지 리서치를 전달해드렸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 대표님과는 사업과 인생에 대해 격없이 이야기하는 절친한 친구로 몇년째 지내고 있습니다. 미팅 때 감사하게도 달다구리나 선물을 가져오시는 경우는 종종 있고, 그런 미팅이 모두 인연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하필 저 날, 저 맥락에서 저 친구가 저 케이크와 등장했기에 저는 좋은 친구를 얻었습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서로 정성이 한번 오갈 때 인연이 시작되는데 그 계기라는 것은 별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연은 소중하게 발전할 수 있기에, 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성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다보니까요. 인연에서 운명으로 너는 내 운명! 몇몇 인연은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결이 정말 비슷하고, 같이 있으면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서로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것만 같은, 그러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꼭 맞는 퍼즐조각처럼 채워주는 사람들이 정말 가끔 있습니다. 헌데 운명을 알아보려면 서로 알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이 또한 우연의 장난처럼 계기가 있어야 하니, 알아보게 된 운명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매 순간 변화하고 바뀌기에 지금의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계속해서 바뀌고, 나 스스로 사람을 만나가면서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때 운명같았던 인연과 멀어지고, 또 새로운 인연과 운명같은 사이로 발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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