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일로 하자
용서의 힘 "없던 일로 하자" 저는 살면서 저 이야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있던 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흔적이든 나쁜 흔적이든 시간에 무뎌질 순 있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없던 일로 하자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많은 일들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무슨 일인지 말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지운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 그 시간을 겪었던 나의 모습들, 상대방의 행동, 이런 것들은 절대 저절로 잊어지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일일수록 나를 과거에 붙잡습니다. 과거의 사건에서 얻은 교훈은 이미 내 뼈에 새겨져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성장했기에 사건 자체를 굳이 들춰볼 필요가 없습니다. 사건과 감정과 교훈은 모두 분리되어야 합니다. 교훈은 새기고, 사건은 묻어두고, 감정은 잊어야 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아주 큰 일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잠도 못 자고, 멍하고, 빈 페이지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을 마주하며 이 일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결국 없애기로 선언했습니다.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집에 와서는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저는 눈물이 참 없는 편입니다. 일년에 한번 울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눈물을 쏟은 것은, 과거의 감정들과 이별하기 위해서 소중히 여겼던 과거의 나를 지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짧지 않은 기간의 기억을 영영 되찾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라서 얼얼함과 공허함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언해버렸으니, 곧 없어질 것입니다. 이따금씩 쑤시겠지만, 무뎌지겠지요. 멋진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 이 외에도 많은 일들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옛날 회고 어딘가에 사람을 과거에서 현재로 움직이는 힘은 고통[suffering]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현재에서 미래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입니다. 고통 속에 지내면 겨우 현재에 머무릅니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희망을 느끼고, 밝은 면을 봐야 합니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수단은 용서입니다. 용서의 힘은 위대합니다. 완전한 용서는 심연을 탈출하는 유일한 동아줄입니다. Look on the bright side 사람이 빠르게 성장하려면 아픕니다. 감정의 성장통이지요.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처리하려보면, 아직 소화되지 못한 과거의 찌꺼기들이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키곤 합니다. 2025년 상반기는 대체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의 잔재가 뒤얽혔고, 새로운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건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정체 모를 복잡한 감정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덩어리였는데 감정이 가장 복잡했던 기간을 삭제하면서 사건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사건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으면 잘못된 기대를 만들고 판단을 흐립니다. 요만큼 성장했으니 앞으로는 비슷한 실수를 덜 하겠지요. 이제 한없이 밝은 빛을 볼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 미래에는 대단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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