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무심, 그리고 사랑
진심 속에 무심이, 무심 속에 진심이 있다고 합니다. 진실된 마음은 곧 비어있는 것과 같다. 진심의 칼날 저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필요한 도움을 최선을 다해 주는 것, 함께 있는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일보다 우선순위로 두는 것. 그게 제가 진심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가진 게 별 것 없지만, 주는 것입니다. 뭔가에 마음을 쏟다보면, 기대하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해도 기대가 생깁니다. 저 사람도 나를 이만큼 생각해주지 않을까,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 같은 소통되지 않은 기대가 은연 중에 슬금슬금 자랍니다. 참 야속합니다. 그 기대라는 것은 왜 생기는 걸까요. 사실 사람 본성이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이익을 버리는 이상한 선택을 합니다. 때때로 그것을 '투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대가가 없어보이는 뭔가를 받을 때 조심해야하는 만큼, 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를 주는 기버(giver)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대가 정말 없을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칼을 쥐어줄 때, 배려랍시고 칼날을 내 손으로 쥐고, 손잡이를 상대에게 쥐어주면, 결국 내 손에서 피가 납니다. 상대방에게 날이 잘 든, 좋은 칼을 최선의 배려를 하며 주려고 하다보면 그 칼날은 나를 베어버립니다. 상처는 아픕니다. 마음을 담아서 뭔가를 주고 받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마음이 담기면 상방만큼 하방도 큽니다. 주면서 기쁜 만큼, 받으면서 기쁜 만큼, 어딘가에 불행함이 꼭 따라오게 됩니다. 무심의 재발견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무심해야 합니다. 감정을 없애야 합니다. 주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받을 기대도 없으면 됩니다. 헌데 그러면 관계를 왜 맺냐구요? 자꾸 의미를 부여하면 안됩니다. 별로 관심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관심 같은 감정은 기대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저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필요에 의해 무언가가 오갈 때, 아쉬움이 있다면 미련 없이 거절할 수 있고, 손색이 없다면 승낙하면 됩니다. 대단히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대단히 나쁜 감정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미워하는 것도 힘든 감정입니다. 내가 힘들지 않아야 타인과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문제 없이 지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면 감정을 빼면 됩니다. 그다지 좋은 감정 없이 관계가 흘러가다가,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고 관계를 끊어낼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일수도 있습니다. 존재의 불편함 저에게 참 무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만 다가가려고 하면 부던히 도망갑니다. 저의 존재는 그 사람을 불편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완전히 회피하지 않는 것이 기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무심함은 거리를 멀리 두어서 관계가 부서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한 진심의 표현이었던 걸까요. 쓰다보니 문득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 슬픕니다. 알고 있었지만 이기적이게도 인정하기 싫었던 현실이기도 합니다. 내가 없다면 행복할 텐데요. 이런 슬픔과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감정이 됩니다. 진심으로 위한다면 멈춰야 하는 생각, 덜어내야 하는 감정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건 이런 뜻인가봅니다. 주관의 개입 없이, 감정의 투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가장 무심하게, 나와 무관하게 두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우주에 개입해서, 함께 더 멋진 우주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은 어린 날의 착각 짙은 잘못된 낭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한 가지라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사랑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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