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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uit of Happiness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끄적거립니다
마음의 빚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금전적인 채무는 아니고, 마음의 빚입니다. 요즘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뢰로 쌓아올린 마음의 빚 문득 제가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아왔다고 느꼈습니다. 그간 해온 고생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때로는 형편 없는 제안을 선뜻 수락해주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저를 적극적으로 소개해주시기도 합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하는 일은 소개자의 사회적 신용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소개를 정말 소중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자격을 갖추고 신뢰를 쌓아서, 저와 교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이 신뢰의 네트워크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싶어요. 스스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을 포장하는 게 사실이지만서도, 저는 진심으로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기도 해요. 자신의 사회적 신용을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가진 것들을 저라는 사람에게 사용해준 사람들에게 많은 마음의 빚을 졌어요. 물론,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해본적 없는 경험을 해봤다고 한 적 없고,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고 하지 않고, 책임질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선을 곧잘 긋습니다. 신뢰의 기본은 정직입니다. 적어도 비즈니스에 있어서 정직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꿈이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제 열정과 꿈은, 아직은 별 볼일 없는 저를 때때로 좀 더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나봅니다. 동상이몽에서 동반자로 동반자가 생겼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같은 꿈을 꿨는데, 한동안은 표현법이 달랐지만,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는 정말 싱크를 맞출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요. 앓아누울 만큼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내달리고, 아낌없이 두뇌와 손목과 성대를 내어주고, 저에게 없는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릅니다. 일이 벅차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설명하지도 말고 아무 말이라도 하라고, 뭐든 다 도와주겠다는 사람이라니요.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서로의 성장기를 봐왔기 때문에 능력치에 대한 믿음과 인간적 의리를 확인한 것 같아요. 우리의 신의(信義)가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오래오래 고마운 사람으로 곁에 남아주세요. 천냥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나에게 쏟아주는 체력과 마음을 갚아야 하거든요. 이루고 싶었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점점 더 커질 빚더미 원래 사업은 빚더미에 앉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신뢰, 소개와 정성을 통해 사업은 초기에 기반을 다집니다. 이 빚을 잊지 않고, 지금 빌린 사회적 신용을 기반 삼아 잘 성장해서, 더욱 의미 있는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산을 통해 갚고 싶어요. 지금 저에게 사용한 사회적 리소스들이 소모되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회수되도록 성장하고 싶어요. 아직은 더 많은 빚을 져야할 것 같아요. 그렇게 지는 빚으로 단단한 사업의 기반을 다져서, 멋드러지게 성장해서 보답할게요. 마음을 빌려주시는 모든 분들 늘 감사합니다. 함께 하는 성공 성공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주변이 잘 되면서 나도 함께 잘 되기 때문에 늘 기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머리가 비상하지 못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저도,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이 잘 될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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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향하는 2024년의 회고록
2023년 회고록을 쓰던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2024년 회고록을 쓰고 있네요. 작년 회고록 속 계획한 올해와, 실제 올해를 비교해보니 역시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고, 내면의 변화는 천천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2024년은 유달리 쓰나미 같은 한 해였습니다. 아홉수의 징크스인걸까요? 동양에서는 아홉수의 해에 액운이 따르고 이듬해에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고 하는데, 올해 징한 액운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액운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들과 소중한 인연들도 생겼지만, 아무튼 지독한 액운이 끼어있긴 했습니다. 상처 작지 않은 사기를 몇번 당했습니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는 아니고, 배신이랄까요. 의리, 신뢰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들먹이며 적잖은 기간동안 저와 교류하며 저를 이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용 당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유무형의 투자에 대한 약속된 보상이 있었고, 약속이 당연히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대가에 부합하도록 저는 진심을 다해 열심히 인풋을 넣었는데, 대가는 보잘 것 없이 어겨지곤 했습니다. 사회적 자본 저는 그동안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춰진 집단에서 주로 교류해왔습니다. 집단 내의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기본처럼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고 이에 기반한 거래의 기준들이 존재합니다. 이 기준들을 서로 지킬 것이라는 신용과 신뢰가 그 집단의 사회적 자본입니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이너써클의 인원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집단에 맞이하는 이유는 이 사회적 자본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교류하는 사람의 집단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기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단 의식이 희미할수록, 거래 상대방의 규모가 작을수록 이 기준을 정확하게 소통하고 최소한 법적인 보호장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거래하거나, 혹은 거래가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하는데, 저는 이너써클의 편안한 방식에서 벗어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 저는 성선설을 좋아합니다. 좋아할 뿐이지 믿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하는데,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적인 논의입니다. 선악을 떠나서 인간의 본성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뭔가를 얻고 싶어하고, 비용 없이 수익을 내고 싶어하고, 장기적 관점의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단기적인 이익을 당장 취득하려고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본성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매 순간 적용되고 있는지를 깨닫는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카운터파티 리스크 Counterparty Risk 계약서를 써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카운터파티(계약 상대방) 리스크를 헷징하기 위해 위약벌 조항을 계약서에 세세하게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거래 자체를 망가뜨리는 리스크가 생깁니다. 거래에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이런 리스크를 감안해서 거래의 상황을 조율하고 명문화해서 내 몫을 잘 챙기는건 다양한 일과 사람에 대한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무엇을 신뢰해야 거래하는가를 따지기보다도, 사실 사람들은 필요해야 거래합니다. 리스크를 안고도 거래를 해야만 하는 어떤 아쉬움이 있어야 거래가 성사됩니다. 내가 돈을 주는 갑의 입장이든, 돈을 받는 을의 입장이든, 결국 상대방이 거래에 참여해야만 하는 정황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 사회 경험이 한참 모자라고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는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워커홀릭의 허세와 어리석음 성실하게 일하면서 공부 많이 한, 똑똑한 척만 했지, 진짜 현명하게 처신하는 법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누가 뭔가를 약속하면 그러려니 하고 믿어버리기만 했지, 정말 그 사람이 그 약속을 지킬 동인이 충분한지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은 충분히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뒷통수를 맞았던거죠. 실익을 잘 지킬 수 있는 구조를 잘 만들기보다는 솔직히 일하는 행위와 결과물에 대한 자기만족에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도 했어요. 저는 일을 할때는 제 기준에 맞는 결과물을 내야만 하는 편이에요. 70점짜리 결과물을 미련맞게 90점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강박이 있는데, 90점짜리 결과물을 만들고 그냥 자기만족에 의의를 두기에는 제가 쏟은 진심과 겪은 고생의 기간이나 규모가 너무 컸어요. 사실 스스로 워커홀릭이라고 칭하면서 원래 밤새며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미련맞은 짓이었어요. 계속해서 밤을 새는 건 몸도 정신도 힘듭니다. 일의 강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질때는 일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일에서 얻어지는 성과와 보상이 확실하고 충분해야 육신의 극강의 괴로움을 버틸 수 있습니다.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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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창업
2024년은 열심히만 살아왔던, 잔잔한 인생에 파란이 일었던 해였어요. 큰 사기를 당해서 한동안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절망에 빠진 동안 무척 약해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이걸 극복하는 힘은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을 원망하고, 외부에 의존할수록 세상은 나에게 더 큰 절망을 선사했고, 제가 스스로 다시 일어나고자 행동할 땐 새롭고 소중한 인연들을 선물해줬어요. 결국 그 인연들은 내가 더 단단하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었어요. 일종의 자신감이 생겼는데, 스스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닌 것 같구요. 안되는 일은 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아주 많은 시행착오를 감내할 기운을 얻었달까요. 이 자신감을 회복한 뒤에는 정말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경험의 폭을 급격하게 넓힐 수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고객의 문제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특히 고객을 진짜로 만족시키는 좋은 '고객 경험'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값졌던 것 같아요. 직접 고객 접점을 만들며 굴러다니는 경험을 통해, 샌님처럼 하던 투자검토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많이 느꼈어요. 물론 내가 잘 모르는 고객의 사업에 대한 투자검토는 여전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런 방식의 검토가 좋은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을 전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다만 외부에서 강의할 때 제 입으로 늘 말하던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얘기가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인생을 '창업'했다고 얘기하곤 했어요. 전에는 회사가 그냥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고, 나는 회사에 종속된 개체가 아니라고 표현할 뿐 이 인생 사업의 정체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어요. 사실 수동적인 회사원의 프레임을 기준으로 그저 달라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이 인생 사업체의 본질이 조금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회사는 개인보다 크기 때문에 질적으로 좋은 경험과 사회적 자산을 비교적 빠르고 쉽게 축적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일종의 R&D 기관이랄까요. 이렇게 쌓은 값진 자산을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가치로 잘 풀어내는 '사업화'는 다른 역량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뻔한 이야기로 가득해보일 수도 있지만요, 1년 반쯤 전에 어렴풋한 느낌으로 인생 창업은 했는데, 이 인생도 이렇게 조금씩 스타트업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연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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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새벽녘은 쌀쌀한 아침 공기에, 어슴푸레하게 동이 트는 시간입니다. 참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쌀쌀한 공기와 희미한 빛이 참 잘 어울리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출발의 초입에서 우리는 늘 세상의 차가움을 느끼면서도, 어떤 희망을 보며 전진합니다. 새벽녘과 인생의 차이라면, 시간이 흐르면 해가 뜨고 공기가 데워지다가, 해가 지면 다시 차가워지는 사이클은 예측 가능하게 매일 반복되지만,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헌데, 하루를 살아가면서 해가 지고 뜨는 것을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아침 출근길이 추우면 그러려니 하며 외투를 동여매지, 낮에는 따뜻해질거라는 식의 희망적인 생각을 굳이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면면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삶이 참 역동적이지만, 세발짝 뒤에서 여유를 두고 보면 결국 쳇바퀴처럼 실수와 잘못, 그로 인해 촉발되는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며 겪는 성장의 연속입니다. 새 살은 상처에서 돋아나고 상처는 아픕니다. 사람은 관성의 동물이라 자연스럽게 경험의 지평이나 관점이 넓어지지 못합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경험하면 반드시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은 일정 확률로 성장으로 이어지고, 성장은 새로운 기회들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금 춥지만 희망적인 시그널이 있다면, 새벽녘이라고 믿어보려고 합니다. 곧 동이 트고 세상은 다시 환하게 밝혀지겠지만, 딱히 기대하지도 않거니와 실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가 마음이 지쳐버린 것인지, 이젠 그저 쳇바퀴처럼 앞으로 나가는 관성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성을 유지하려면 희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성공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희망으로 고문할 것이 아니라, 그저 희망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일을 살아가듯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찾아오겠지요.
기시감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데도 언제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 기시감은 조금 생소한 한자어고, 흔히 데자뷰(Déjà vu)라고 하죠. 최근에 여러 고민을 정돈하고 어떤 목표를 정했습니다. 저는 목표가 생기면 집착하고 몰입하는 집요한 사람입니다. 가치있는 목표라고 진정으로 믿게되면, 온종일 그 생각만 합니다. 밥을 먹든, 청소를 하든, 어딘가로 이동하든, 하루의 빈틈을 그 생각으로 꼭꼭 채워버린달까요. 정말 몰입하면 무아지경에 이른다고 합니다. 목표를 이룬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낍니다. 목표를 자꾸 생각하다보니, 목표하는 바에 도달한 양 상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상상을 통해 추진력을 얻지만, 실은 과정을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지, 이 모험에는 얼마나 많은 역경이 걸쳐있을 지 알 방법은 없지만, 짐작컨대 고생스러울 것 같습니다. 목표를 생생하게 그리지만 성공한 모습은 상상에 불과하고 사실 망망대해를 항해중인 장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허공을 휘적거리며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끝없이 헤매는 것이 사실 이 여정의 본질입니다.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힐 때도 있고, 뭔가 잡았는데 생전 처음 느끼는 것이라 분간하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잡힐 듯하다가 놓쳐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할 겁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때는 단서가 없으니 과감하게 움직여보기도 하고, 분간하지 못할 때는 육감을 믿어보고, 단서를 놓쳤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인내심을 가지는, 인생의 현명함을 배우는 여정이기를 바랍니다. 한편으로, 간절함은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서 이용당하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객관적 판단이 어려운 순간이 오기에 나를 진단해줄 지혜로운 주변인을 가까이에 두고, 가끔은 몰입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나를 돌이켜보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몰입과 여유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 또한 이 여정에서 배워야 할 현명함의 일부겠지요. 깊은 마음 속으로는 성공을 가장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삶의 지혜를 통해서만 얻어질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향한 여정이라는 점에도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성공과 자유, 사랑이 종착점에서 모두 만나면 좋으련만, 적어도 과정에서 지혜는 얻을 수 있겠지요. 간절한 만큼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몰입!
요즘 부쩍 정신 사나우리만치 산만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뚱아리는 하나고, 나이를 먹다보니 체력은 줄어듭니다. 이 체력 문제 때문에 부쩍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최근 기차를 타고 지방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요, 예전에는 하룻밤 잘 자면 다음날 말짱했는데, 이제는 주말까지 출장의 피로가 이어지네요. 원래 이 정도 강도로 미팅 스케쥴을 잡아도 건강상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은 목이 늘 쉬어있어요. 시간은 곧 건강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자원이라고들 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점점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 정신적 에너지를 일에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체력으로 인해 줄어드니까요. 건강관리를 통해 체력을 키우려고 한들, 결국 줄어드는 총 체력의 캐파 중 가용 용량을 늘리려는 것이니, 노화라는 신체적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렵겠죠. 시간은 곧 체력이고 건강이라고 생각하고 더 소중히 나를 안배해야겠습니다. 단위 시간당 가치 밤을 많이 새는 것은 그 자체로 자랑이 아닌데 종종 열일하는 자아에 취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밤을 샌다는 건 일을 비효율적으로 오래한다는 뜻일수도 있고, 혹은 가치가 낮은 일을 하며 밤을 새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단위 시간당 최대한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이 많아지면 현실적 데드라인에 닥쳐서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는데, 지금 해야 할 일의 목록에서 벗어나 과연 이 목록 속의 일들이 중장기적으로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나를 소모하는데, 여기에서 축적되는게 있는지, 그리고 축적되는 것들이 어떤 구심점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경쟁력이 될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몰입의 조건 요즘 비로소 제가 뭘 잘하는 지 조금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 스킬을 어떻게 축적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몰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몰입할 때 끈기를 가지고 집요하게 시행착오를 겪고, 고통스러운 러닝커브를 체험하면서, 내 시간과 체력을 스킬셋과 노하우로 자산화하게 됩니다. 요즘의 산만함과, 하는 일들이 어떤 구심점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몰입하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동기, 내적 동기(감정적 애착)와 외적 동기(경제적 이익)가 갖춰져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해서 언젠가 대외적으로도 성공하는 상상에 빠져 몰입하는 거죠. 온전히 몰입한다는 것은 굉장히 낭만적인 일입니다. 자나깨나 정신이 있는 순간에는 늘 그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이니까요. 낭만! 좋아합니다. 낭만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사람들이 왜 심사역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낭만이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계속해서 새롭고 신기한 시장을 탐색하면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고, 열정이 넘치는 역량 있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운명처럼 투자자로서 연을 맺고, 사업의 역경을 함께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소중한 인연이 되고, 성공하면 함께 부자가 되는 그 모든 현재의 과정과 미래의 상상이 저에게는 낭만이었습니다. 결국, 실제 업무 자체에 대한 애착과 함께 언젠가 함께 부자가 될수도 있다는 외적 동기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죠. 언젠가부터 사라진 낭만 최근 들어 관심이 가는 일도 너무 여러가지고, 어설프게 눈만 높아졌달까요. 이렇게 살어서 부자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요만큼의 커리어와 알량한 경제적 풍요로 낭만의 빈곤이 찾아왔다면 심각한 자의식 과잉일겁니다. 낭만이 식어버리기까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게 한 여러가지 사건사고들과 풍파도 있었습니다. 빈곤한 집안에서 태어나진 않았기에 한번도 밥 굶는 각오로 헝그리하게 뭔가에 임해본 적은 없지만, 첫 취업하고, 첫 이직할 때 누군가 나를 고용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던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달라진 것 같습니다. 헌데, 진짜 성장하던 사람은 그때의 저인 것 같아요. 고용주에 감사한 마음도 없던건 아니지만, 고용주를 위해 일한게 아니라 저는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하던 과정 속에서 몰입했던 거죠. 결국 조금은 순진하게 당장의 업무에서 오는 재미와 도파민에 집중하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경제적 리워드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놓고, 눈앞의 일에 몰입하는 시간 덕분에 커리어도 벌이도 생겼더라구요. 목적과 수단 로또를 맞은 일확천금 부자가 아닌, 성장해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이 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돈은 방향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되려 길을 잃게 만듭니다.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몰입해서 낭만적이게 지내는 것이 내가 행복한 길이고, 그래야만 돈 벌 기회도 찾아오기에, 동시에 성공할 가능성도 가장 높은 방법이 아닐까요. 조급해지다보면 돈이 목적처럼 보이곤 하는데, 조급하면 충분한 선택지를 만들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가 됩니다. 목적 삼았던 돈과 오히려 멀어지는 셈입니다.
불안이와 행복추구권
2024년 상반기 회고록 - 좀 덜 아등바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날씨가 더워지나 싶더니 장마와 함께 상반기가 지나갔습니다. 늘 그랬듯이 다사다난한 분기, 반기를 보내서인지 반년의 세월이 스치듯이 가버렸네요. 아홉수도 반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지난 반기를 전반기, 하반기로 나눠보면, 전반기에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폭삭 삭았고, 하반기에는 전반기의 마음고생을 적절한 시기에 정리하지 못하고 괜히 속을 많이 썩혔습니다. 적당한 고통은 교훈을 몸과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어, 그 다음으로 발전할 추진력을 제공하지만, 정도를 넘으면 그냥 개고생입니다.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감정을 털어내기 어려울 때도 많지만, 잘 갈무리하고 넘어가기 위한 멘탈도 결국 또 갈고 닦아야하는 것임을 회고하면서 느끼게 되네요. 그렇게까지 독기를 품고 아등바등 지냈어야하나 싶습니다. 최근에 저를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 오랜 친구들은 아마 느꼈을 겁니다. 겉으로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불안에 휩싸여있다는 것을요. (글 쓰는 지금이 새벽5시인데 이 불면증도 아마 불안과 스트레스에 기인하겠지요) 인사이드아웃2의 불안이 최근 개봉한 인사이드아웃2 보셨나요? 주인공이 사춘기에 진입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불안, 당황, 부러움, 따분함, 추억 등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이 중 가장 비중있게 묘사되는 감정이 불안입니다. 불안은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망상에 빠지게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불안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양가적이라,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는데, 영화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극단적으로 묘사되어서 저는 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불안은 우리의 시대정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성장이 고착화되어가고 있고, 경기는 불황이고,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 여느때보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공유하는 환경이겠지요. 미래가 언제는 예측 가능했냐만은, 적어도 우리 세대가 미래에 대해 느끼는 장밋빛 채도는 과거에 비해 옅어진 듯합니다. 보통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영화들은 또래 집단 내에서의 시기, 질투, 갈등, 혹은 첫사랑 같은 준거집단 내 타인을 향하는 감정을 묘사합니다. 불안은 사람을 향하기보다는 미래를 향하는 감정인데요, 어쩌면 현재에 대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할 청소년들조차도 미래의 아득함 때문에 당장 눈앞에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부족해진 점을 묘사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라 환경에 엄청나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무엇을 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에 생각의 흐름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할 때에는 미친듯이 고민과 무관한 업무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더 좋은 방법은 당장, 현재의 감정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포근한 햇살, 볼결을 스치는 산들바람, 출근길에 운 좋게 맞아떨어진 건널목의 청신호, 누군가의 소소한 깜짝 선물, 사랑하는 사람의 눈웃음 같은, 일상 속의 행복 요소에 몰입하다보면, 심각한 부족함 없는 일상에 감사하게 됩니다. 물론 큰 불행은 이런 몰입을 근본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큰 불행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회고록만큼은 불행보다는 행복에 대해 적고 싶은 마음이에요. 행복을 찾아가는 미생 집요하고 미련맞은 사람이라서 감정 다스리기에 서툰 것 같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감정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데, 그 적절함이 어디인지는 인생의 지혜가 쌓이면 알게될까요? 지혜가 부족한 미생이지만, 완생이 되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요. 최근 오늘의 회고록 속 이야기들을 나눴던 친구가 저보고 언젠가 꼭 에세이집을 써보라고 응원해줬는데, 빈 페이지를 글자로 채워나가는 행위예술에 재주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친구도 마음 고생을 정말 많이 했던데, 제 굳은살을 어루어만져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추구권 하반기에는 불행보다는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의식적으로 말하고, 고민하려고 해요. 상반기에 미련맞게 행사하지 못한 행복추구권을 좀 행사해볼까 합니다. 카르페디엠, 세렌디피티... 참 진부한 표현들이지만 널리 소비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과 지금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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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의 근황
그간 블로그에 거의 신경을 못 썼습니다. 왜냐면요...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투자 4개, 팁스 4개를 끝냈습니다. 3개월동안 일년치 본업을 다했습니다. 이 와중에 강의도 하나 찍었고, 대외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네요.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한 시기였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11시에 서류들을 다 제출한 뒤부터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데드라인에 쫓기며 매일 쪽잠자다가 몸이 부서질 뻔했는데 진짜로 부서지기 직전에 일이 다 마무리되었습니다. 계속 피로에 쩔어서 다니다보니 (쓰면서도 어이가 없지만) 길에서 넘어져서 무릎, 팔꿈치, 손까지 성한 곳이 없습니다. 편도염이라는 것을 앓고 있는데, 턱이 두꺼비마냥 붓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 지독한 병이군요. 이틀정도 집에서 쉬면서 몸살이 심했는데, 마지막으로 아프고 균형을 회복하려나봅니다. 정말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크런치 모드에서는 이성적 사고가 마비됩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생존 본능에 의존하는 fight or flight 모드가 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고 꼼꼼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도파민 중독은 사고회로를 단축시키는데, 아드레날린은 사고를 아예 정지시켜버린달까요. 솔직히 바쁨이 극에 달했던 지난 한 달은 거의 척수반응으로 페이퍼워크만 겨우 해치우는, 거의 사고가 정지된 좀비같은 상태였어요. 이사를 해야해서 집을 새로 구하는데, 5월 초에 처음으로 본 집을 계약해버렸습니다. 완벽한 조건의 집이어서 계약한 건 아니라, 사실 이마저도 아드레날린 중독에 의한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극도의 워커홀릭입니다. 일이 늘 우선이고, 일이 적당하면 일을 더 만들고, 성취할 때 가장 즐거워합니다. 헌데, 난생 처음 이런 정도의 힘듦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몸이 자꾸 새로운 방식으로 아픈게 서럽기도 했구요. 사실 그보다도, 내 앞에 놓인 선택지들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이런 크런치 모드가 다시 찾아오거든 좀더 잘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어떤 힘든 일을 이겨내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스트레스도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정말 생존 본능 수준으로 내몰리는 경험은 처음 해본 것 같아요. 제 한계는 여기인가봅니다. 인생은 단기적으로는 내 뜻대로 안 됩니다. 이번 극한의 크런치도 급작스런 어떤 외부 환경의 변화와, 회피해선 안되는 여러 사람에 대한 책임 때문에 발생했으니까요. 사실 저에게 가장 힘든 스트레스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내 뜻대로 어느정도 됩니다. 앞으로는 건강한 스트레스 수준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책임을 질 일을 덜 만들되, 내가 챙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더 잘 챙기고 싶어요. 몸도 마음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트레스의 양을 줄이되 질적으로 좋은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여실히 배운 것 같습니다. 참, 뭐든 선택과 집중이네요. 오랜만에 글쓴답시고 푸념만 잔뜩해서 조금 민망하지만, 사실 힘들었던만큼 여러 방면으로 생각이 확장되기도 했고, 스킬셋의 측면에서 단련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조만간 밤잠을 설치게 하던 생각의 실타래들을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실은 이전에 기획해놓고 마무리짓지 못한 글이 여러 편이기도 해요. 지금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제일 먼저 블로그로 찾아왔어요. 어쩔 수 없는 글쟁이인가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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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서 인연, 인연에서 운명으로
우연에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운명을 기다리는 나날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 벤처투자를 잘 하려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흔히들 투자 검토 기업을 만나는 것이 사람 만나는 일의 대부분이라고들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업무와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투자 가설에 대해서 산업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야하고, 투자 검토 중인 서비스의 고객 혹은 잠재 고객들의 생각도 직접 들어봐야하고, 포트폴리오사에 도움이 될만한 사업 혹은 후속 투자 관련 네트워크도 꾸준히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투자 기업을 만났을 때, 그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그리고 해당 기업으로부터 매력적인 투자자로 보이기 위해서 필요한 네트워킹이랄까요. 이렇게 네트워킹을 하다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좋은 기업을 추천받고... 네트워킹은 선순환입니다. '네트워킹'은 사실 업무적인 표현이고, 실제로는 그냥 사람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이지요. 사무적이고 상투적이면 그저 이메일로 교신하는 명함으로 존재할 뿐이고, 사람 냄새가 날 때 비로소 관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만남'입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한다 사람을 만나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지인에게 필요한 사람을 추천해주고 제가 소개를 받기도 하고, 네트워킹 파티에서 수십장의 명함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신뢰하는 중개인이 있는 네트워킹에서 만나는 것도 모두 우연이지만, 가끔 더 우연하게, 중개인 없이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콜드 메일로 미팅을 요청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혹은 좀 더 낯설게는 자주 가는 가게의 사장님, 더 낯설게는 길가다 번호를 물어서 우연히 알게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하게 시작합니다. 저는 만남의 계기에 편견이 없는 편입니다. 어떤 곳에서, 어떤 경위로 만났든, 만났다면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떤 경험을 해온 어떤 배경의 사람이든, 그러니까 어떤 과거를 거쳤든간에, 인연으로 발전하는 데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태도와 생각, 가치관, 역량입니다. 과거를 보지 않고 현재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으레 사람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짐작하려고 하고,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색안경을 끼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긴 합니다. 우연에 가능성을 열어두면 조금 더 낭만적이게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우연한 만남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을지 설렐 수 있거든요. 우연에서 인연으로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발전하려면 두 사람이 모두 흥미를 가지고 뭔가 서로에게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연이 특별한 것 같습니다. 하필 그 찰나의 순간에, 관심이 생겼다는 거니까요. 3년쯤 전에 온라인 피칭 행사에서 만났던 대표님 한분께 미팅을 요청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던 시장을 타겟하는 아이템이었고, 대표님도 논리적이고 열정적인 분이었는데요, 그 당시 제가 원래 그분 사무실을 찾아가기로 했었는데, 미팅 장소가 갑자기 저희 사무실로 변경되면서, 그 동네에서 유명한 케이크를 사오셨어요. 웃기게도 그 앵무새 케이크가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미팅 후 아주 많은 질의와 여러가지 리서치를 전달해드렸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 대표님과는 사업과 인생에 대해 격없이 이야기하는 절친한 친구로 몇년째 지내고 있습니다. 미팅 때 감사하게도 달다구리나 선물을 가져오시는 경우는 종종 있고, 그런 미팅이 모두 인연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하필 저 날, 저 맥락에서 저 친구가 저 케이크와 등장했기에 저는 좋은 친구를 얻었습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서로 정성이 한번 오갈 때 인연이 시작되는데 그 계기라는 것은 별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연은 소중하게 발전할 수 있기에, 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성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다보니까요. 인연에서 운명으로 너는 내 운명! 몇몇 인연은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결이 정말 비슷하고, 같이 있으면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서로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것만 같은, 그러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꼭 맞는 퍼즐조각처럼 채워주는 사람들이 정말 가끔 있습니다. 헌데 운명을 알아보려면 서로 알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이 또한 우연의 장난처럼 계기가 있어야 하니, 알아보게 된 운명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매 순간 변화하고 바뀌기에 지금의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계속해서 바뀌고, 나 스스로 사람을 만나가면서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때 운명같았던 인연과 멀어지고, 또 새로운 인연과 운명같은 사이로 발전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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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도전을 위한 2023년 회고록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서류들에 날짜를 2023년이라고 작성하고 2024년이라고 슬쩍 바꾸고 있겠네요. 연말은 회고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연초, 연중에 했던 수많은 다짐들이 스쳐지나갑니다. 쓰다만 글, 중도 해체된 프로젝트들, 삽조차 뜨지 못한 기획들이 아른거리네요.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팀이 해체되어서 등등 미완으로 남은 이유는 많지만 어쨌든 다 핑계겠죠? 정말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면 다른 우선순위를 조정했을 것입니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은 한가득인데, 제대로 한건 없었습니다. 의욕만 앞서고 실천은 부족한 용두사미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보다 지속 가능한 도전 모드로 살기 위해 연말 회고 레쓴-런을 몇가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지속성 있게 도전하기 위해서... (1) 잘해야 한다는 강박 버리기 사람들에게 결과물이 보여진다는 생각에 완벽하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리서치는 조금 더 꼼꼼하게, 글은 조금 더 다듬어서, 그래픽은 조금 더 보기 좋게... 70점짜리 결과물은 쉽게 만드는 것 같은데 90점으로 완성도를 높이려면 들어가는 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90점은 되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고, 비로소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90점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노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잠 좀 덜 자고, 독하게 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으로 무마해버렸던 거죠. 이건 업무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남들이 80점짜리 결과물을 가져갈 때 저는 시간과 노력을 좀 더 들여 90점짜리를 들고가는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결과물은 칭찬받았고, 비교적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보상 루프가 뇌에 박혀버린 것일까요. (2) 특별하다는 생각 버리기 90점이 되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이유는 자만이었습니다. 남들이 만든 결과물을 보고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이상한 경쟁심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나는 특별하니까 (늘 그렇게 칭찬받아왔으니까) 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저변에 깔려있었나봅니다. 무엇이 사람을 채찍질할까요? 육신의 피로함을 이겨내면서 늦은 밤, 새벽에 집중할 수 있게 할까요? 저에게는 '특별함'이었습니다. 결과물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경제적 보상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을 '특별함'이라고 여겨왔습니다. 특별한 월급쟁이가 되는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정욕구를 본능적으로 가지고, 인정은 희소하기에 가치있는 것이라 인정받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근 삼십년 인생을 비추어볼 때, 제 도파민 루프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인정을 쟁취하는 데에 상당히 강화되어있던 것 같습니다. 당장 보고서를 더 잘 쓰고, 더 좋은 피티를 만들어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저는 꽤 확실하게 인정받을 테지만, 저는 특별한 월급쟁이에 머무르겠죠. 인생은 한달 뒤에 끝나지 않고, 큰 결실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제 성과의 기한은 늘 한달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좀 웃긴 얘기지만, 직장은 단기간 내에 소소하고 확실한 도파민을 줄 수 있는 곳입니다. 편견 없이 세상을 넓게 보는 연습 알고리즘의 시대라고들 하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기가 막히게 내가 관심 가지는 컨텐츠를 파악하고, 강화학습을 통해 비슷한 유형의 컨텐츠만 계속 보여줍니다. 컨텐츠 플랫폼은 컨텐츠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면서 의견을 공유할 여지를 주지만 실은 타 사용자와의 인터랙션 없이 컨텐츠를 시청만 하는 사람들이 90%입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수동적으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참 웃긴 일입니다. 검색창을 통해 온 세상의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는데 막상 강화학습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걸 계속 본다는 게 말이에요. 말이 길어졌는데, 혼자 유튜브 보는게 세상에 대한 시야를 점점 좁힌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어제 서점을 갔다가 문득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에는 자격증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재미난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많고, 이런 저런 자격증과 취미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내가 하는 고민이 얼마나 평범한지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나는 그저 앞으로 어찌 살아야할지 걱정하는 30대를 앞둔 직장인이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업적인 문구로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책들이 지천에 깔려있고, 나 또한 똑같이 그러한 문구에 혹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나에 집중한다는 것은 (1) 보여지는 모습에 집착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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