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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suit of Happiness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끄적거립니다
안정
안정. 얼마만에 떠올리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일년동안 저는 만사에 쫓기듯이 살았습니다. 일, 사람, 돈, 피로, 모든게 숨이 막히기 직전이었습니다. 새벽은 항상 일하면서 보냈고, 잠을 거의 못 자서 스트레스에 짓눌렸습니다. 성격은 늘 예민했고,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꼬박 일년만에 인생에 안정과 균형이 찾아왔습니다. 외적인 환경에서 안정이 찾아온 건 아닙니다. 여전히 사업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쫓기듯이 사는 삶은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문을 모르고 도전한 적도 많았고, 매번 세상에 없던 걸 팔려고 하다보니 빈 페이지에서 새로운 제안을 써냈습니다. 조언을 구할 곳 없이 망망대해를 계속 헤매면서 수많은 거절을 마주했고, 그 속에는 종종 작은 성공과 성취도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쫓기듯 살았는지 생각해보면, 도달 불가능한 지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해본 적 없는 일들을 하다보니 '현실적인' 일정을 스스로 세울 줄 몰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거 그만 좀 하라고' 혼냈는데, 아, 이제 무슨 말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결국 다 해도 되는데, 좀 천천히 하면 됩니다. 한꺼번에 하려면 체합니다. 강박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려고 합니다. 물론 종종 밤을 샐 겁니다. 하지만 쫓기듯이, 스트레스에 짓눌려 새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새고 싶습니다. 막상 이러고 다음 주에는 또 헉헉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주의 저로 회귀하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적어도 매일 날밤을 지새우지는 않을 겁니다. 보여지는 모습은 날밤을 지새우는 것이더라도, 좀더 건강한 마음의 균형을 찾은 상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지난 일년동안 비현실적인 캐파로 일해왔습니다. 이젠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라도 안정을 찾아야 합니다. 날이 선선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귀여운 추억 남기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회와 선택
세상에 없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있던 일은 아무리 지우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못 본 척' 하는거죠. 그런데 있는 걸 어떻게 없는 척을 하겠어요, 다른 일들로 덮는 겁니다. 새로이 역사를 덧대어서 과거를 희석하는거죠. 누구나 살면서 잘못을 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현재를 덧대어서 바로 잡을 기회는 언제든지 있습니다. 꼭 지금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이 좋은 시점인지 판단해보는 것이겠지요. 어떤 환경에서든지 우리는 늘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절해도 됩니다. 도움은 권리도 의무도 아닌, 누군가의 호의일 뿐입니다. - 기회는 항상 만들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뚜렷하다면 인생은 나를 반드시 그 길로 인도합니다. 목적지의 모습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그리고 내가 그 목적지를 도달하고픈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쾌속정 티겟을 받을 수도, 통통배를 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기회가 함정이라면 다시 한번 인생이 가라앉을텐데, 그럼 다시 올라갈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상승 기류를 타는 방법은 지상에서도, 지하 10층에서도, 지하 100층에서도, 항상 있습니다. 지금의 기회가 구원의 손길이라면, 놓치면 바보겠지요. 기회처럼 보이는 것은 대체로 잡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 크고 작은 기회는 늘 있는데, 통상 살면서 3번의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이 저 3번의 기회 중 첫 번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만큼의 우당탕탕을 지나왔으면 한번쯤 기회가 찾아올 법도 합니다. 기회를 잘 소화하는 것도 제 몫일테고, 이게 제 인생의 구원의 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봐야죠. - 저를 외면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받아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좋은 것만 보려고 노력하니 자연스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기회이자 도움의 손길이고 싶습니다. 물론 이 손을 잡을지는 상대방의 선택이겠지만요. - 네가 인생의 굴곡에 대해 뭘 알아? 그럼 넌 뭘 알아? 어차피 사람들은 서로의 인생을 겪을 수 없기에 영원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지금 정도의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합니다.
기다림의 미학
창업 5개월차 회고 이모저모: 여전히 조급하고, 시행착오 중이지만, 그래도 기다림의 미학을 맛보았다 리더쉽과 조급함 한때 옆 팀이 저랑 각개전투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옆 팀에게서 리스펙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제 모자람입니다. 광고 캠페인 성과가 3일이면 나오는 사람들에게 최소 3개월씩 성과가 걸리는 일은 성과가 없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당연합니다. '네가 백그라운드가 좋은 건 알겠는데 할줄 아는게 있냐?' 정도로 비춰졌을 것 같습니다. 제가 왜 광고를 돌리지 않고, 왜 이런 형태의 레퍼런스들을 쌓아나가는지, 어떤 고객 네트워크를 왜 쌓고자 하는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그리고 이들의 사고방식과 문법을 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케팅 대행은 세상에 존재하는 10% 정도의 회사가 고객이 될 수 있지만, 제 타겟 고객은 0.1%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시장이 이토록 작은데 이 속도로 고객사로 만들면서 BEP도 맞추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주는 게 아쉽습니다. (그냥 기적)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시장이 작은 일을 왜 하냐?'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이 구조가 뭐냐면...이라고 말이 길어지면 어차피 집중이 흐려지니 이건 좋은 대화법이 아닙니다. 계속 크고 작은 성과들로 설득하며 결국 3-4년 뒤 100억짜리 한방으로 증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고 회로가 다르고, 서로 잘 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게 회사로서 합쳐지면 분명 시너지가 될텐데, 이걸 통합해내는 것도 결국 제 숙제입니다. 신뢰는 회사의 이익에 배반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밑바탕이 되는 소극적 협조입니다.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리더쉽입니다. 사실 조직에서의 권위는 긴 말 필요 없이 수치로 증명되는 성과에서 옵니다. 아무튼 제가 빌드업해둔 일들의 성과가 조금씩 나기 시작해서 다행입니다. 팀워크가 자리잡는 것 또한 시간이 걸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짝꿍이 제 뜻을 믿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제가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좀더 입체적으로 보여지기 시작하니, 드디어 해상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시간 성장 중인 다마고치 박대표가 성장하기도 했고, 매일 밤 새다가 과로사할까봐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뜻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이 부쩍 많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제 진짜로 유일무이한 문제해결 조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독한 시행착오의 시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실험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지난 4개월동안 템플릿 없이 빈 페이지에서 제안만 20개 넘게 썼습니다. 서비스 패키지를 이렇게 저렇게 쪼개고, 가격도 바꿔보고, 가치 제안을 바꿔보기도 하고, ... 제 시장이 얼마나 좁고, 초기에 기회의 문이 얼마나 좁은지 자각한 뒤부터 제안 하나하나에 늘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일단 되는대로 서로 다른 6가지 서비스를 팔아보면서, 내부 운영도 테스트해보고 고객 반응도 보고, 성과도 확인해봤습니다. 일단 서비스로서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춰야 상세 페이지나 서비스 소개서라도 쓰니까요.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분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고객이 이 중에서 가치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지독한 PoC의 반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PoC 중일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나 소개서 기획을 할 수가 없었던 게, 제가 무엇을 할수 있고 없는지, 공수는 얼마나 드는지조차 잘 모를 정도로 세일즈 경험이 부족했고, 고객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는 팀으로 어떻게 시너지를 내는지 설명할 수 없어서 무슨 내용이 들어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날이 좀 선선해질 즈음이면 이제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신기하게도 생각했던 고객 가설들은 상당 수 맞았습니다. 내가 팔고자 하는 서비스의 시장이 있다! (물론 틀린 것도 엄청 많습니다) 사실 제 아이템의 특성상 네트워크 중심으로 초반부를 전개하지 못하면 시작이 불가능한 종목이기도 합니다. 돈을 쓰는 실행보다 네트워크와 개인기로 버로우타는 구간이 상당히 긴 사업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좀더 멋있게 해내고 싶었는데,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실행을 스스로 참 못한다는 걸 백만번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문제를 쪼개고, 솔루션을 구조화하는 걸 세렌디스트에 실험해봤을 때 잘 하는 편인 것 같긴 한데 역시 속도감 있게 실행하는 건 다른 역량인 것 같습니다. 사실 실행도 채용이나 비용을 쓰는 시행착오인데 그럴 여력이 자금 측면에서 부족했던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실행이 아닌, 고객을 위한 실행을 잘 할 수 있는 팀을 빌딩하는 데에 투자했고, 회사에는 고객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이 또한 좋은 투자였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만들기 이 과정을 거치니 비로소 어떤 팀을 만들고 싶은지도 알 것 같습니다. 핏이 안 맞는 사람이어도 돈만 벌어오면 되냐, 아니요. 돈을 떳떳하게 제대로 버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손이 가기 때문에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나중의 이익을 버리게 됩니다. 조직은 만들고자 하는 회사에 명확히 기여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나의 소명(calling)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좀 웃긴 이야기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 시간과 돈을 써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니 존재론적인 고민을 합니다. 회사 다닐 때는 주어진 역할이 명확했기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업하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어딘가에 돈을 쓸 겁니다. 무엇에 돈을 써야 세상에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싶은데, 그렇다면 어떤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을 해야 할까? 저는 분명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으로 단련된 스킬이지만 이 또한 운명적으로 쌓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이 선물 덕분에 저는 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귀하디 귀한 선물이기에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이 사회에서 나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일까? 나의 소명(calling)이 무엇이기에 나는 이런 선물이 주어진 걸까? 제 소명은 기업과 자본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사업 잘하는 사람들이 자본시장을 모르고 있을 때 개입해서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직접 투자일 수도 있고, 컨설팅일 수도 있고, 그 형태는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체득한 선물은 '번역'이고, 저는 이 두 집단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가교를 놓는 사람일 뿐입니다. 투자가 불가능할 사업체에 투자유치를 권하는 건 사회적 낭비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사기입니다. 제 판단 하에 투자가 될 것 같다면 실제로 투자가 된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저의 역량에 대한 증명이고, 안목을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돈을 끌어다 오는 도관이 아닙니다. 사업을 시작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원하는 것이 '과정은 관심 없고 결과적으로 자금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압도적인 수요를 마주하고 여러 고민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관점과 고객이 가진 자산, 대표님의 스토리가 만나서 일어나는 케미스트리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좋은 결과물에서 나오는 성과가 가장 즐겁고, 이 과정의 가치를 이해할 사람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즐거울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즐겁지 않으면 결과물도 별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모두 소싱으로 귀결됩니다. 저와 핏이 잘 맞을 회사들을 찾습니다. 지인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전국 팔도의 실력자들을 찾아다녀야겠지요. 연초부터 했던 생각인데, 여러 방황 끝에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자금 조달 또한 좋은 작업의 결과입니다.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와, 자금조달이 용이한 구조가 존재하면 펀딩이 됩니다. 자문하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이나, 관점은 같습니다. 성장성이 있을까? 후속 펀딩이 될까? 전략적 액션들이 수반되어야 자본시장과 얼라인되는 지수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게 스타트업을 위한 '전략컨설팅'이라고 생각하고, '전략'의 효용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역량 있는 조직을 꾸렸습니다. 저는 사업이 현실적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무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제게 주어진 선물이 가지는 소명이기도 합니다. 역량 있는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결과물 만들어내며, 저를 거쳐간 사람들은 모두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하며 오래오래 보고 싶습니다.
Pendulum
단순해지자 3월 17일 창업 이후, 4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지난 130일 정도, 매일이 새로운 좌충우돌로 가득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서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입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130일동안 가장 신경 쓴 것은, 단순해지는 법입니다. 과거를 잊고, 감정을 지우고,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태스크로 삶을 집중할 수 있게끔 정돈하려고 했습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둘은 늘 함께 있어왔습니다. 그저 반복되는 진자 운동(Pendulum)입니다. 좋은 일 뒤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찾아옵니다. 나쁜 일 뒤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옵니다. 마음의 심지 늘 있는 일에 마음이 동요하면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고요하고 평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지가 필요합니다. 저는 사실 용감한 척하면서도, 심지가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을까 두려운 아해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기저기 부딪혀보니, 그동안 당했다고 생각한 배신 따위의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세상은 훨씬 험한 곳입니다. 그간 저는 너무 안락한 세상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지난 4개월은 험한 세상을 한 방울 맛보는 기간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의 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의구심, 걱정, 불신 따위의 감정들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고 해낼 것입니다. 오로지 성공하는 미래와, 성공을 이뤄가는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스스로 내면을 강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외부 보강도 큰 도움이 됩니다. 관계의 끝을 지우다 지난 반년이 지나면서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짝꿍이 생겼습니다. 2월에도 그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긴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 상호 헌신에서 낭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연애 같은 것이지요.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연애하면 헤어질 수 있고, 결혼하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무덤까지 같이 가기로 약속했으면 이별은 없습니다. 항상 무조건입니다. 무슨 일이 있든 항상 최선을 다해 도울거고, 무조건 서로의 편일거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곁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매사에 견해가 일치할 수 없습니다. 만약 매사에 일치한다면, 우리는 상호보완적이지 못하기에 함께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매번 다투고, 싸울 것입니다. 다툼을 통해 우리는 다름에서 배우기에 갈등은 성장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혼할 용기는 결혼을 단단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조건부 용기입니다. 이별을 지워버리면 훨씬 단순하고 단단한 관계가 됩니다. 대신 그 용기를 내 사람을 지키고, 함께 세상과 맞서 싸우는 데에 쓰기로 결심하면 얼마나 좋나요. 무한하게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리로 함께하다보면 함께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Enjoy the Pendulum 어차피 반복될 업다운에 동요하면 앞으로 찾아올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저 진자 운동일 뿐인걸요. 다름과 무지, 리스크를 즐기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그 다음 스텝을 끝없이 만들어두는 것만이 생존이자 성장의 길입니다. 생존과 성장은 다르지 않습니다. 생존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성장합니다. 생존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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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보다 근성
지능은 조금 모자란 아이 저는 솔직히 머리가 썩 좋지 않습니다. 머리가 정말 좋았다면 지금보다 잘 살았겠죠. 불운이든 역경이든 머리로 이겨내고, 성공의 기회도 머리로 잡았을 겁니다. 어쨌든 운을 이겨낼만큼 머리가 좋지 못했고, 객관적으로 IQ가 높은 편도 아닙니다. 저는 타고난 두뇌회전이 빠른 친구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노력으로 부족한 지능을 채우는 아이 저는 지능보다는 근성으로 살아가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 학원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헌데 웃기게도, 저는 학원 레벨 테스트를 하면 항상 애매한 중위권 반에 꼴찌로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학원을 옮길 즈음에는 가장 어려운 반에서 최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인생이 대체로 그랬습니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1등이었겠지만, 저는 단박에 상위권이거나 1등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중 저는 항상 용의 꼬리를 선택합니다. 꼬리에서 머리로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어딘가의 머리에 있는 것 같다면 더 큰 용의 꼬리에 올라타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현상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새로운 기회가 있을 땐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바보 같은 제안도 하고, 허탈한 제안도 참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 제안을 하기 위해 고민한 과정, 그리고 거절 당하는 경험은 모두 근육이 됩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덜 바보같이, 덜 아프게 거절 당하는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어느 날 아픔에 둔해지고 더 빠르게 발전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성사됩니다. 경험 근육 천재 천재소녀라면서? 맞습니다. 이제 퍼스널 브랜딩에 충분히 세뇌된 것인지 스스로 천재성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두뇌력에서 나오는 천재성은 없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그 사회 생활을 다채롭게, 빡세게, 때로는 기상천외하게 보냈기 때문에 시간과 밀도로 단련된 경험 근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 같은 건 사치고, 연애도 안 했습니다. 지난 일년 반은 거진 매일 밤새며 수백장의 자료 외주, 1천시간이 아득히 넘는 멘토링, 컨설팅과 심사, 수십시간의 강의, 온갖 펀드와 사업 제안, 미숙한 영업, 다른 누군가의 회사의 0 to 0.1을 만들고, 또다른 누군가의 회사의 0.1 to 1을 만들고,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그 모든 경험을 발판삼아 저의 0 to 0.1을 만들며 지냈으니까요. 저는 젊음을 이런 곳에 썼습니다. 월급 받아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늘 '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남들보다 더 정확한 직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더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고, 보기 좋은 자료를 빠르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연습을 아주 많이 했으니까요. 사실 천재성보다 기술이 더 맞는 표현입니다. 저는 기술자입니다. 저는 이 기술에서 자신이 있습니다. 타고난 천재성보다 경험 근육이 튼튼한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악착같이 그 경험 근육을 단련해왔다고 자신합니다. 유지하려면 비슷한 밀도로 계속 단련해야 하는 피곤한 차별화 요소지만 제 진입장벽은 이 악착같음입니다. 자신감, 기세, 그리고 행운 이 자신감의 표출이 사업 초반의 기세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운은 좋은 사람들을 불러모읍니다. 그간 여러 사람에게 빚진 마음을 갚아야 하고, 적잖은 인건비도 지급해야 해서, 다 잘 되어야만 합니다. 모자란 점도 많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일로 가득합니다.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입니다. 서투른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사과하고, 보상하고, 때로는 낭비하면서 언젠가 배우겠죠. 어쨌든 악착같이 합니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발전합니다. 발전하다보면 좋을 일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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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and Take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크게 잃을 가능성이 있어야 큰 걸 얻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가 잃을 것은 없고 얻는 것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익숙한 일도 늘 새롭게 봐야 합니다. '설마 이게 문제가 되겠어'라고 넘겨짚는 지점은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혹은, 생각을 그다지 해본 적 없는 기상천외한 문제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저는 제 시간(현물)이 아닌 현금을 쓰는 것조차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남의 돈이나 시간이 투자로 엮이는 것은 더욱이 꺼립니다. 망해도 혼자 망하고 싶은데, 잘되는 건 혼자서 할 수가 없다는 게 야속합니다. 사업은 참 어렵습니다.
단순해지기
몰입을 하려면 생각이 없어져야 합니다. 오로지 눈앞의 단기 목표만 놓고 달리는 상태가 되어야 몰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해야 할 것보다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면 몰입이 깨집니다. 멀리 있는 것은 그저 즐거운 상상의 영역입니다. 상상력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시간 낭비입니다. 기대에 시간을 쓰지 마세요. 대신, 눈 앞의 일을 잘 하세요. 성공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99%의 몰입과 1%의 상상력입니다. 몰입으로 쌓이는 결과들만이 의미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끝없이 단순해지세요. 생각은 해롭습니다.
없던 일로 하자
용서의 힘 "없던 일로 하자" 저는 살면서 저 이야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있던 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흔적이든 나쁜 흔적이든 시간에 무뎌질 순 있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없던 일로 하자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많은 일들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무슨 일인지 말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지운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 그 시간을 겪었던 나의 모습들, 상대방의 행동, 이런 것들은 절대 저절로 잊어지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일일수록 나를 과거에 붙잡습니다. 과거의 사건에서 얻은 교훈은 이미 내 뼈에 새겨져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성장했기에 사건 자체를 굳이 들춰볼 필요가 없습니다. 사건과 감정과 교훈은 모두 분리되어야 합니다. 교훈은 새기고, 사건은 묻어두고, 감정은 잊어야 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아주 큰 일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잠도 못 자고, 멍하고, 빈 페이지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을 마주하며 이 일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결국 없애기로 선언했습니다.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집에 와서는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저는 눈물이 참 없는 편입니다. 일년에 한번 울까 말까 합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눈물을 쏟은 것은, 과거의 감정들과 이별하기 위해서 소중히 여겼던 과거의 나를 지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짧지 않은 기간의 기억을 영영 되찾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라서 얼얼함과 공허함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언해버렸으니, 곧 없어질 것입니다. 이따금씩 쑤시겠지만, 무뎌지겠지요. 멋진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 이 외에도 많은 일들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옛날 회고 어딘가에 사람을 과거에서 현재로 움직이는 힘은 고통[suffering]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현재에서 미래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입니다. 고통 속에 지내면 겨우 현재에 머무릅니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희망을 느끼고, 밝은 면을 봐야 합니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수단은 용서입니다. 용서의 힘은 위대합니다. 완전한 용서는 심연을 탈출하는 유일한 동아줄입니다. Look on the bright side 사람이 빠르게 성장하려면 아픕니다. 감정의 성장통이지요.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처리하려보면, 아직 소화되지 못한 과거의 찌꺼기들이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키곤 합니다. 2025년 상반기는 대체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의 잔재가 뒤얽혔고, 새로운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건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정체 모를 복잡한 감정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덩어리였는데 감정이 가장 복잡했던 기간을 삭제하면서 사건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사건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으면 잘못된 기대를 만들고 판단을 흐립니다. 요만큼 성장했으니 앞으로는 비슷한 실수를 덜 하겠지요. 이제 한없이 밝은 빛을 볼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제 미래에는 대단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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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박장군
3년 전, 저를 박 장군이라고 부르던 친구가 있습니다. 왜 장군이라고 놀리냐고 하니, 너는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무척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그 친구는 사람에 대한 예지력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임직원들과 함께 회사라는 자산을 만들어가는 건 큰일입니다. 작은 회사이지만, 임직원들은 하루의 1/3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과 마음이 모여, 이곳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통해 회사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발전합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로 회사가 다채로워지는 것이 신기하고 또 감사하기도 합니다. 장군의 기개 저는 키가 작고 조그마한, 외로운 사람입니다. 가진 것이 많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대단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업적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아직 평범하지만 큰일을 도모하고 싶은, 생각 많은 사람이지요. 왜소한 저를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내 사람들입니다. 나를 믿고 따라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저는 장군이 되어 전장에 나설 수 있고, 전장에서는 나를 옹호해주는 사람들의 조력이 있기에 수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를 쟁취하여 본진으로 돌아올 때의 기쁨은 이루어말할 수 없습니다. 토양이 척박한 곳에 국기를 내린 터라, 인근 영토를 자꾸 침범하여 전투를 해야 합니다. 전장에서 승리를 거둬야 우리 구성원들의 커리어와 행복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전장은 늘 낯섭니다. 매 전장의 판도가 다르고, 그 흐름을 예측하려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냥 매 순간의 기운을 느끼며, 그 순간의 교훈들을 기억하며, 매 순간에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 뿐입니다. 전투 경험이 늘면 더 많은 순간을 몸이 기억하게 되고, 그 기억들을 우리는 '노련함'이라고 부릅니다. 불협화음의 위대함 전장에는 두 가지 리더쉽이 있습니다. 앞을 보며 미친듯이 내달리는 공격형 무장(武將)들이 있고, 후방을 지키는 방어적인 지략가들이 있습니다. 두 성향은 소통하기 어렵지만 조화를 찾으면 제국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저 말고도 전투를 치르는 노련한 경력직 장수가 있습니다. 장군이 아니기에 활약에 제약이 있을 것이라 미안하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판을 짜면서 전투들을 일으켜 맹렬하게 치르고 오는 것을 보면 훌륭한 장수를 두어 뿌듯하고, 작은 국가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고생이 고맙습니다. 성향상 저는 전략형 제갈량에 가깝고, 그는 돌진형 장비같은 사람입니다. 저와는 다른 방향의 전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이 회사라는 영토를 넓힌다는 단 한 가지 목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략의 수싸움에서의 교훈, 그리고 무장의 맹렬한 전투에서의 교훈을 한 곳에 함께 자산화한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우리는 시시각각 다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가시밭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하기에 우리의 조합은 귀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의 다름을 품고자 노력합니다. 우리의 다름이 만나는 지점이 생긴다면 되려 서로의 달란트가 희석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혹은 둘도 없이 귀한 성장을 이루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불협화음이 만들어낼 위대함이 기대됩니다. 우리는 함께 피 튀기는 전장을 헤치며, 제국을 만들어가는 중이거든요. 실제로 우리 회사에는 키가 큰 장정들이 많습니다. 같이 다니면 물리적으로도 든든합니다. 아, 물론 장정들만 저를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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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과 무심, 그리고 사랑
진심 속에 무심이, 무심 속에 진심이 있다고 합니다. 진실된 마음은 곧 비어있는 것과 같다. 진심의 칼날 저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필요한 도움을 최선을 다해 주는 것, 함께 있는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일보다 우선순위로 두는 것. 그게 제가 진심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가진 게 별 것 없지만, 주는 것입니다. 뭔가에 마음을 쏟다보면, 기대하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해도 기대가 생깁니다. 저 사람도 나를 이만큼 생각해주지 않을까,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 같은 소통되지 않은 기대가 은연 중에 슬금슬금 자랍니다. 참 야속합니다. 그 기대라는 것은 왜 생기는 걸까요. 사실 사람 본성이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이익을 버리는 이상한 선택을 합니다. 때때로 그것을 '투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대가가 없어보이는 뭔가를 받을 때 조심해야하는 만큼, 줄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를 주는 기버(giver)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대가 정말 없을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칼을 쥐어줄 때, 배려랍시고 칼날을 내 손으로 쥐고, 손잡이를 상대에게 쥐어주면, 결국 내 손에서 피가 납니다. 상대방에게 날이 잘 든, 좋은 칼을 최선의 배려를 하며 주려고 하다보면 그 칼날은 나를 베어버립니다. 상처는 아픕니다. 마음을 담아서 뭔가를 주고 받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마음이 담기면 상방만큼 하방도 큽니다. 주면서 기쁜 만큼, 받으면서 기쁜 만큼, 어딘가에 불행함이 꼭 따라오게 됩니다. 무심의 재발견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무심해야 합니다. 감정을 없애야 합니다. 주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받을 기대도 없으면 됩니다. 헌데 그러면 관계를 왜 맺냐구요? 자꾸 의미를 부여하면 안됩니다. 별로 관심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관심 같은 감정은 기대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저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필요에 의해 무언가가 오갈 때, 아쉬움이 있다면 미련 없이 거절할 수 있고, 손색이 없다면 승낙하면 됩니다. 대단히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대단히 나쁜 감정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미워하는 것도 힘든 감정입니다. 내가 힘들지 않아야 타인과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문제 없이 지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면 감정을 빼면 됩니다. 그다지 좋은 감정 없이 관계가 흘러가다가,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고 관계를 끊어낼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일수도 있습니다. 존재의 불편함 저에게 참 무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만 다가가려고 하면 부던히 도망갑니다. 저의 존재는 그 사람을 불편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완전히 회피하지 않는 것이 기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무심함은 거리를 멀리 두어서 관계가 부서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한 진심의 표현이었던 걸까요. 쓰다보니 문득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 슬픕니다. 알고 있었지만 이기적이게도 인정하기 싫었던 현실이기도 합니다. 내가 없다면 행복할 텐데요. 이런 슬픔과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감정이 됩니다. 진심으로 위한다면 멈춰야 하는 생각, 덜어내야 하는 감정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건 이런 뜻인가봅니다. 주관의 개입 없이, 감정의 투영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가장 무심하게, 나와 무관하게 두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우주에 개입해서, 함께 더 멋진 우주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은 어린 날의 착각 짙은 잘못된 낭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한 가지라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사랑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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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의 근황
벌써 6월입니다. 한 해가 곧 절반 저무네요. 1월쯤의 제가 상상했던 올해의 모습과는 한가지 빼고는 아무것도 예상대로 흘러간 일이 없습니다. 한 가지 지켜진 일이라면, 저를 믿고 보필해주는 한 사람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대와 실망 기대가 크면 실망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여러가지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던 연초의 저는 그것을 동력삼아 실망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걷고 있었나봅니다. 기대처럼 잘 마무리된 일이 정말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일은 항상 지연되고, 지연되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지연되고, 그러다가 또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대체 이 커다랗고 복잡한 일들에 매듭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듭을 지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실을 끊어버리는 것이 답인 걸까요. 간절히 바랄수록 판단이 흐려집니다. 아쉽지 않고 쿨해야 협상에서 승리하는데, 스텝이 하나씩 꼬이면서 다음 스텝에 간절해지고, 그래서 더 안 풀리고, 그런 수순의 반복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아마추어 복서의 수습 기간이었습니다. 스포츠처럼 인생도 일도 다 정신력 싸움입니다. 스트로크 한 번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꾸준히 묵묵하게 순간순간을 잘 판단하여 경기 하나를 잘 마치면 됩니다. 승리에도 패배에도 뜻은 없습니다. 결과는 현상일 뿐입니다. 되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좋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선물처럼 찾아온 새로운 관계들이지요. 기존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도 했고, 아예 새로운 관계들도 어디선가 나타났습니다. 우연 저는 그래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행운이나 성공은 우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행과 실패도 우연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엇을 우연이라고 부를지 의미를 부여하면 안됩니다. 그냥 이런 일이 나를 찾아왔어, 우연인가봐, 하고 말아야 합니다. 사실 우연은 너무 많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에 좋은 장치입니다. 신뢰 무조건적인 신뢰는 없습니다. 항상 건강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서로 그 경계를 잘 지키고 존중할 때 신뢰는 견고해집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우주에서 온,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적용되는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경계는 조금씩 넓어지기도, 가끔은 좁아지기도 합니다. 신뢰가 줄어든 틈에는 의심이 싹트는데, 그 싹을 뽑아서 다시 신뢰의 영역으로 넓히는 것은 부던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전면적 신뢰의 상실이 아니라, 신뢰가 조금 줄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적절한 약속과 규칙은 신뢰를 강화하고, 관계를 성숙시키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거래의 시작은 신뢰에 기반해야 하는데, 굉장히 깊은 신뢰, 혹은 신뢰가 부족하다면 신뢰를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파격적인 투자가 있어야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모로 체감했습니다. 사랑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픈 마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때, 저는 '사랑'이라고 느끼곤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챙기고 싶을까? 왜 자꾸 신경 쓰일까? 아, 사랑하는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집이 되어주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 삶이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표현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역할과, 필요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힘든 순간에 기댈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사랑을 정의하면 사랑과 후원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랑에 즐거운 감정보다 힘든 감정이 더 얽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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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의 근황
2024년 5월의 근황을 블로그에 남겼었네요. 2025년 5월의 근황도 기념으로 남겨봅니다. 작년의 5월은 페이퍼워크로 바빴고 다시는 그렇게 바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네요. 일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때보다 더 바쁘게 지내지만 어느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자아의 성장을 거친 것 같습니다. 인생 창업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진짜로 '창업'을 했습니다. 제가 대표인 회사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프리랜싱을 겸하는 직장인이었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창업을 오랫동안 준비하거나 꿈꾼게 아니었습니다. 2월에 몇가지 충동과, 사연들이 겹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헌데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창업했어야 하는 팔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사회생활 7년차라니, 스스로 소름돋지만, 사실 웬만한 직장인들이 슬슬 창업하는 연차이기도 합니다. ability-to-product fit을 찾는 데에 첫 2개월을 썼고, 이제는 어느정도 product의 형태를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원래도 사무실에 붙어있지 못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했고, 개인적으로 세일즈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긴 합니다. Think-Do-Learn-Iterate 저는 생각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Think에서 Do로 잘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심사역 시절에는 거창한 아이템을 떠올리는 것이 습관이었고, 본업으로 인해 Do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보니, 생각만 둥둥 떠다녔습니다. 오히려 이 많은 생각들을 나 대신 잘 실행하는 창업팀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인프라와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사업은 하고 싶은데 리스크는 지기 싫은 안일한 생각이었던 거죠. 린 스타트업 방법론 같은 것을 떠나서 그냥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사업인 것 같습니다. 작게 시작해서, 반응을 보고, 감을 잡고, 그 다음 번에도 작게 또 해보고, ... 이러면서 일을 키울 확신을 얻을 때까지 반복하면 됩니다. 초기 단계의 사업은 비용을 덜 쓰면서 유의미한 시장 검증을 여러번 해내려는 싸움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수요를 잘 만나면 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아니면 망하기도 합니다. 행운도 실력입니다. 찾아왔을 때 알아보는 것도 실력, 그 행운을 감당해내는 운영 시스템이나 조직을 키우거나, 그 순간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는 것도 실력입니다. 사업은 행운과 실력이 다 필요합니다. 그간 스타트업은 성장율로 정의된다고 이야기해왔는데, 사실 잘 된 사업을 사람들이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스타트업이 되고 싶네요. 프리랜서에서 팀으로 무엇보다도 이제 진짜 사업을 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채용을 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자그마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고, 먹여살려야 할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어깨가 조금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늘 거의 혼자 일해왔습니다. 프리랜싱을 할 때도, 심사역을 할 때도, 그 전에 증권사를 다닐 때도, 저를 매니징하는 사람도 없었고, 제가 매니징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에게 리더쉽을 어필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늘 시스템 속에서 자기 이익에 맞게끔 동기부여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협업에 무척 서툰 사람인데, 고마운 보좌진 덕분에 협업과 위임, 매니징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 모난 점을 품어주면서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어서 행복합니다. 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좋은 사람들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4월에는 두 명이었던 세렌디스트를 연말에는 열 명으로 키우는 것이 올해의 목표입니다. 사람을 참 어려워했는데, 대표도 직업이고 리더쉽도 연습입니다. 결국 구성원들이 지속가능하게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자 고민하다보면 좋은 시스템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일 무서웠던 펀딩, 정면돌파 저는 나이 30살에 펀딩을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누가 나를 믿고 돈을 맡길 수 있을까, 같은 의심인거죠. 실행으로 옮기기 전의 의심은 쓸데없는 걱정이고, 항상 처음이 가장 어렵습니다. 일단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시작을 어떻게든 하기만 하면, 뭔가 배우고, 그 다음 실행을 어떻게 해야할지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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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 Why not, rather than Why
주로 투자를 하다가, 사업을 하려니, 두뇌를 다른 방식으로 가동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투자는 Why에 집착한다면, 사업은 Why not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투자는 10가지 투자 대상 선택지를 만들어놓고 굳이 이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일입니다. 정말 매력적이지 않으면 '굳이'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안이 많으니까요. 사업은 투자에 비해 실행으로 옮기기에 개연성이 좋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사결정을 실행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 그리고 인적/물적 리소스가 투입됩니다. 사업가도 마찬가지로 '굳이' 이 사업을 해야하는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사업을 할 때에는, 의사결정의 시작이 Why가 아닌 Why not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Why에서 생각이 시작하면, 하지 말아야 할 100가지 이유를 떠올리다가 그 와중에 1가지 해야 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Why not에서 생각이 시작하면, 1가지 해야 할 이유가 먼저 보이고 나머지 100가지 해야하지 않을 이유가 뒤따라옵니다. 새로운 리스크를 지는 실행의 동기가 약해지면 사업은 불씨가 꺼져버립니다. 고객과 시장과 산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도를 하지 않을 때 사업은 망합니다.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조직은 죽습니다. 큰 일은 늘 작은 아이디어와 미약한 실행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Why와 Why not의 밸런스도 필요합니다. 조직에는 항상 Why not을 장려하면서, 가끔 리더쉽의 Why가 이를 보완해줘야 합니다. 조직원들이 모두 Why를 고민하면, 아무것도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합니다. 조직원들이 실행하고 시도할 수 있게 장려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교훈을 바탕으로 리더쉽은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할지 판단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들의 의지가 위축되지 않고 넉넉하게 추진할 수 있는 여건과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조직 문화가 갖춰진 회사, 그리고 결국 모두가 대체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스스로 게을러지지 말자는 채찍질을 장황하게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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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생각 한 가닥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나요? 이제 이 슬래시페이지 블로그는 종종 구독자분들을 향한 편지를 올리는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곱씹어서 쓰는 인사이트류의 글들은 모두 회사 블로그에 공유될 예정이거든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저는 요즘 홀로서기를 준비 중입니다. 회사 정체성을 만들며, (가장 소중한) 고객사들 챙기고, 제가 완전한 무(無)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분들을 챙기고, 투자도 챙기고, 아이고, 요일과 낮밤이 분간이 안가는 생활이 벌써 몇달 째입니다. 여러 장의 명함을 가지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체가 불분명하고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그 입장이 되고 나니 역시 잘 알지 못하면서 감히 남의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저를 비슷한 눈초리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두달 정도의 시간은 인생에서 차원이 다른 밀도의 시간이었습니다. 늘 낮지 않은 밀도로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온전한 몰입이 만드는 속도를 처음으로 경험해봤습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고민들을 통해 생각과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 인생에 한번쯤은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잘 됐으면 좋겠지만, 꼭 잘될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정말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잘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더 강하게 말했다가 틀릴까봐 무서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업은 틀림의 연속입니다. 매일 틀리고, 새로운 문제에 맞닥뜨리고, 조금은 허둥대며 실마리를 찾아서 결국은 해결해내는 것이 사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 끝없는 업사이드와 다운사이드 사이에서 넘실대는 이 생활에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지녔는데, 여기에 리스크를 숨 쉬듯이 감내하는, 혹은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갖추게 된다면 사업 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경험을 통해 노련함을 익혀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대체로 거의 무조건적인 응원이 필요합니다. 시작의 모습은 미약하지만, 창대한 꿈을 꾸며 현재와의 괴리를 채워나가는 일에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얼마나 의심하고 담금질 하겠어요. 종종 비난 아닌 비난을 들을 때도 있지만, 그러려니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는 쇼앤프루브할 일입니다. 좋은 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고객을 설득하다보면 언젠가 제가 하는 일의 의미가 전달되겠지요. 피드백은 정말 귀하고 꼭 필요합니다. 제3자의 피드백은 많은 고민을 덜어내고 더 빠른 실행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은 속도 빼면 시체입니다. 하지만 고객 만족을 등한시해서도 안됩니다. '적당히'를 직감으로 잘 알고, 본능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수습할 수 있을 속도로 달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저는 70억 인구의 일상을 바꿀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한없이 영세한 자영업자입니다. 온 인류를 향한, 달로 쏘아올릴만한 전 우주적인 임팩트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로 3년 안에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을 정의하고 그 목표를 향하는 사람입니다. 사람 자체가 능력이든 그릇이든 별로 대단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손에 잡힐 것도 같은 목표들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기회 한개 더 잡아보려고, 마저 새벽을 지새러 가보겠습니다. Hasta lu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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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금전적인 채무는 아니고, 마음의 빚입니다. 요즘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뢰로 쌓아올린 마음의 빚 문득 제가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아왔다고 느꼈습니다. 그간 해온 고생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때로는 형편 없는 제안을 선뜻 수락해주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저를 적극적으로 소개해주시기도 합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하는 일은 소개자의 사회적 신용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소개를 정말 소중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자격을 갖추고 신뢰를 쌓아서, 저와 교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이 신뢰의 네트워크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싶어요. 스스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을 포장하는 게 사실이지만서도, 저는 진심으로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기도 해요. 자신의 사회적 신용을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가진 것들을 저라는 사람에게 사용해준 사람들에게 많은 마음의 빚을 졌어요. 물론,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해본적 없는 경험을 해봤다고 한 적 없고,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고 하지 않고, 책임질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선을 곧잘 긋습니다. 신뢰의 기본은 정직입니다. 적어도 비즈니스에 있어서 정직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꿈이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제 열정과 꿈은, 아직은 별 볼일 없는 저를 때때로 좀 더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하나봅니다. 동상이몽에서 동반자로 동반자가 생겼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같은 꿈을 꿨는데, 한동안은 표현법이 달랐지만,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는 정말 싱크를 맞출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요. 앓아누울 만큼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내달리고, 아낌없이 두뇌와 손목과 성대를 내어주고, 저에게 없는 경험과 능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릅니다. 일이 벅차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설명하지도 말고 아무 말이라도 하라고, 뭐든 다 도와주겠다는 사람이라니요. 오랜 기간 가까이에서 서로의 성장기를 봐왔기 때문에 능력치에 대한 믿음과 인간적 의리를 확인한 것 같아요. 우리의 신의(信義)가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오래오래 고마운 사람으로 곁에 남아주세요. 천냥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나에게 쏟아주는 체력과 마음을 갚아야 하거든요. 이루고 싶었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점점 더 커질 빚더미 원래 사업은 빚더미에 앉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신뢰, 소개와 정성을 통해 사업은 초기에 기반을 다집니다. 이 빚을 잊지 않고, 지금 빌린 사회적 신용을 기반 삼아 잘 성장해서, 더욱 의미 있는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산을 통해 갚고 싶어요. 지금 저에게 사용한 사회적 리소스들이 소모되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회수되도록 성장하고 싶어요. 아직은 더 많은 빚을 져야할 것 같아요. 그렇게 지는 빚으로 단단한 사업의 기반을 다져서, 멋드러지게 성장해서 보답할게요. 마음을 빌려주시는 모든 분들 늘 감사합니다. 함께 하는 성공 성공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주변이 잘 되면서 나도 함께 잘 되기 때문에 늘 기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머리가 비상하지 못해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저도,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이 잘 될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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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향하는 2024년의 회고록
2023년 회고록을 쓰던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2024년 회고록을 쓰고 있네요. 작년 회고록 속 계획한 올해와, 실제 올해를 비교해보니 역시 인생은 예측하기 어렵고, 내면의 변화는 천천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2024년은 유달리 쓰나미 같은 한 해였습니다. 아홉수의 징크스인걸까요? 동양에서는 아홉수의 해에 액운이 따르고 이듬해에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고 하는데, 올해 징한 액운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액운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들과 소중한 인연들도 생겼지만, 아무튼 지독한 액운이 끼어있긴 했습니다. 상처 작지 않은 사기를 몇번 당했습니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는 아니고, 배신이랄까요. 의리, 신뢰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들먹이며 적잖은 기간동안 저와 교류하며 저를 이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용 당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유무형의 투자에 대한 약속된 보상이 있었고, 약속이 당연히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대가에 부합하도록 저는 진심을 다해 열심히 인풋을 넣었는데, 대가는 보잘 것 없이 어겨지곤 했습니다. 사회적 자본 저는 그동안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춰진 집단에서 주로 교류해왔습니다. 집단 내의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기본처럼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고 이에 기반한 거래의 기준들이 존재합니다. 이 기준들을 서로 지킬 것이라는 신용과 신뢰가 그 집단의 사회적 자본입니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이너써클의 인원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집단에 맞이하는 이유는 이 사회적 자본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교류하는 사람의 집단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기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단 의식이 희미할수록, 거래 상대방의 규모가 작을수록 이 기준을 정확하게 소통하고 최소한 법적인 보호장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거래하거나, 혹은 거래가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하는데, 저는 이너써클의 편안한 방식에서 벗어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 저는 성선설을 좋아합니다. 좋아할 뿐이지 믿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하는데,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하면 좋은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은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적인 논의입니다. 선악을 떠나서 인간의 본성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뭔가를 얻고 싶어하고, 비용 없이 수익을 내고 싶어하고, 장기적 관점의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단기적인 이익을 당장 취득하려고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본성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매 순간 적용되고 있는지를 깨닫는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카운터파티 리스크 Counterparty Risk 계약서를 써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카운터파티(계약 상대방) 리스크를 헷징하기 위해 위약벌 조항을 계약서에 세세하게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거래 자체를 망가뜨리는 리스크가 생깁니다. 거래에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이런 리스크를 감안해서 거래의 상황을 조율하고 명문화해서 내 몫을 잘 챙기는건 다양한 일과 사람에 대한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무엇을 신뢰해야 거래하는가를 따지기보다도, 사실 사람들은 필요해야 거래합니다. 리스크를 안고도 거래를 해야만 하는 어떤 아쉬움이 있어야 거래가 성사됩니다. 내가 돈을 주는 갑의 입장이든, 돈을 받는 을의 입장이든, 결국 상대방이 거래에 참여해야만 하는 정황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 사회 경험이 한참 모자라고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는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워커홀릭의 허세와 어리석음 성실하게 일하면서 공부 많이 한, 똑똑한 척만 했지, 진짜 현명하게 처신하는 법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누가 뭔가를 약속하면 그러려니 하고 믿어버리기만 했지, 정말 그 사람이 그 약속을 지킬 동인이 충분한지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은 충분히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뒷통수를 맞았던거죠. 실익을 잘 지킬 수 있는 구조를 잘 만들기보다는 솔직히 일하는 행위와 결과물에 대한 자기만족에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도 했어요. 저는 일을 할때는 제 기준에 맞는 결과물을 내야만 하는 편이에요. 70점짜리 결과물을 미련맞게 90점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강박이 있는데, 90점짜리 결과물을 만들고 그냥 자기만족에 의의를 두기에는 제가 쏟은 진심과 겪은 고생의 기간이나 규모가 너무 컸어요. 사실 스스로 워커홀릭이라고 칭하면서 원래 밤새며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미련맞은 짓이었어요. 계속해서 밤을 새는 건 몸도 정신도 힘듭니다. 일의 강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질때는 일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일에서 얻어지는 성과와 보상이 확실하고 충분해야 육신의 극강의 괴로움을 버틸 수 있습니다.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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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창업
2024년은 열심히만 살아왔던, 잔잔한 인생에 파란이 일었던 해였어요. 큰 사기를 당해서 한동안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절망에 빠진 동안 무척 약해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이걸 극복하는 힘은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을 원망하고, 외부에 의존할수록 세상은 나에게 더 큰 절망을 선사했고, 제가 스스로 다시 일어나고자 행동할 땐 새롭고 소중한 인연들을 선물해줬어요. 결국 그 인연들은 내가 더 단단하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었어요. 일종의 자신감이 생겼는데, 스스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닌 것 같구요. 안되는 일은 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아주 많은 시행착오를 감내할 기운을 얻었달까요. 이 자신감을 회복한 뒤에는 정말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경험의 폭을 급격하게 넓힐 수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고객의 문제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특히 고객을 진짜로 만족시키는 좋은 '고객 경험'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값졌던 것 같아요. 직접 고객 접점을 만들며 굴러다니는 경험을 통해, 샌님처럼 하던 투자검토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많이 느꼈어요. 물론 내가 잘 모르는 고객의 사업에 대한 투자검토는 여전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런 방식의 검토가 좋은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과거의 방식을 전면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요. 다만 외부에서 강의할 때 제 입으로 늘 말하던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얘기가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인생을 '창업'했다고 얘기하곤 했어요. 전에는 회사가 그냥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라고, 나는 회사에 종속된 개체가 아니라고 표현할 뿐 이 인생 사업의 정체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어요. 사실 수동적인 회사원의 프레임을 기준으로 그저 달라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이 인생 사업체의 본질이 조금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회사는 개인보다 크기 때문에 질적으로 좋은 경험과 사회적 자산을 비교적 빠르고 쉽게 축적할 수 있는 곳이에요. 일종의 R&D 기관이랄까요. 이렇게 쌓은 값진 자산을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가치로 잘 풀어내는 '사업화'는 다른 역량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뻔한 이야기로 가득해보일 수도 있지만요, 1년 반쯤 전에 어렴풋한 느낌으로 인생 창업은 했는데, 이 인생도 이렇게 조금씩 스타트업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연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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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새벽녘은 쌀쌀한 아침 공기에, 어슴푸레하게 동이 트는 시간입니다. 참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쌀쌀한 공기와 희미한 빛이 참 잘 어울리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출발의 초입에서 우리는 늘 세상의 차가움을 느끼면서도, 어떤 희망을 보며 전진합니다. 새벽녘과 인생의 차이라면, 시간이 흐르면 해가 뜨고 공기가 데워지다가, 해가 지면 다시 차가워지는 사이클은 예측 가능하게 매일 반복되지만,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헌데, 하루를 살아가면서 해가 지고 뜨는 것을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아침 출근길이 추우면 그러려니 하며 외투를 동여매지, 낮에는 따뜻해질거라는 식의 희망적인 생각을 굳이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면면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삶이 참 역동적이지만, 세발짝 뒤에서 여유를 두고 보면 결국 쳇바퀴처럼 실수와 잘못, 그로 인해 촉발되는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며 겪는 성장의 연속입니다. 새 살은 상처에서 돋아나고 상처는 아픕니다. 사람은 관성의 동물이라 자연스럽게 경험의 지평이나 관점이 넓어지지 못합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경험하면 반드시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은 일정 확률로 성장으로 이어지고, 성장은 새로운 기회들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금 춥지만 희망적인 시그널이 있다면, 새벽녘이라고 믿어보려고 합니다. 곧 동이 트고 세상은 다시 환하게 밝혀지겠지만, 딱히 기대하지도 않거니와 실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가 마음이 지쳐버린 것인지, 이젠 그저 쳇바퀴처럼 앞으로 나가는 관성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성을 유지하려면 희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성공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희망으로 고문할 것이 아니라, 그저 희망이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일을 살아가듯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찾아오겠지요.
기시감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데도 언제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 기시감은 조금 생소한 한자어고, 흔히 데자뷰(Déjà vu)라고 하죠. 최근에 여러 고민을 정돈하고 어떤 목표를 정했습니다. 저는 목표가 생기면 집착하고 몰입하는 집요한 사람입니다. 가치있는 목표라고 진정으로 믿게되면, 온종일 그 생각만 합니다. 밥을 먹든, 청소를 하든, 어딘가로 이동하든, 하루의 빈틈을 그 생각으로 꼭꼭 채워버린달까요. 정말 몰입하면 무아지경에 이른다고 합니다. 목표를 이룬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낍니다. 목표를 자꾸 생각하다보니, 목표하는 바에 도달한 양 상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상상을 통해 추진력을 얻지만, 실은 과정을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지, 이 모험에는 얼마나 많은 역경이 걸쳐있을 지 알 방법은 없지만, 짐작컨대 고생스러울 것 같습니다. 목표를 생생하게 그리지만 성공한 모습은 상상에 불과하고 사실 망망대해를 항해중인 장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허공을 휘적거리며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끝없이 헤매는 것이 사실 이 여정의 본질입니다.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힐 때도 있고, 뭔가 잡았는데 생전 처음 느끼는 것이라 분간하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잡힐 듯하다가 놓쳐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할 겁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때는 단서가 없으니 과감하게 움직여보기도 하고, 분간하지 못할 때는 육감을 믿어보고, 단서를 놓쳤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인내심을 가지는, 인생의 현명함을 배우는 여정이기를 바랍니다. 한편으로, 간절함은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서 이용당하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객관적 판단이 어려운 순간이 오기에 나를 진단해줄 지혜로운 주변인을 가까이에 두고, 가끔은 몰입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나를 돌이켜보는 여유도 필요합니다. 몰입과 여유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 또한 이 여정에서 배워야 할 현명함의 일부겠지요. 깊은 마음 속으로는 성공을 가장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삶의 지혜를 통해서만 얻어질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향한 여정이라는 점에도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성공과 자유, 사랑이 종착점에서 모두 만나면 좋으련만, 적어도 과정에서 지혜는 얻을 수 있겠지요. 간절한 만큼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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