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변화량

###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같다면 그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 p.35

(feat. 일독일행 독서법 - 유근용 지음)

여러 가지의 변화가 있던 날이다. 오늘은

- 내 글에서 무거움을 넘어 다크함이 느껴진다는 피드백

- 작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에서 갭이 크다

- 안경을 쓰다

그래서 지인을 만나러 갔다. 나를 살리러

그냥 이유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내 손에는 '일독일행 독서법'이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잠깐의 이동 간에 읽어보려고 들었던가, 움직이고 싶어서 챙겼던가 싶다.

그동안은 해야하는 내용의 책들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생각보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 앞에 필기가 기록이 먼저 아른거렸기에 맘편히 독서를 진행하지 못 했다.

그저 한 줄 한 줄 읽으며 머리에 담든 가슴에 담든 혹은 맘에 드는 문구를 줄 치면서 기록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책이 손에서 벗어나고, 웹소설이 들어왔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온전히 작가의 그림 속에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왠걸 저자의 전개 방식이 담백해서 쉽게 읽혔다. 아마 큰 의미가 담기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간만에 종이책이 부담없이 읽혀서 재밌었다. 신호등을 지나칠만큼

p.35에 도달했을 때, 나의 서사는 잠시 멈춤을 가졌다.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문장에서 한동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downward 이든 upward 이든 혹은 + 나 - 어디든 나는 움직였구나.

멈춰있다 했지만, 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나아가지 못 했을 뿐 '뒤로'라도 움직이고 있었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점점 더 솔직한 마음을 글에 담게 되었다.

그 속에는 담담함도 있었지만, 억울함도 담겨 있었고, 살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그저 내가 바랬다 착각했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러 나가려는 노력은 그동안 보지 못 했던 '뒤의 나'의 고군분투를 일깨워줬다.

지인을 만나서도 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조언을 구했다. 자신감을 잃었다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려움에 무너지고 있다고 착각했던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 속 나는 신기했다. 그리고 그가 해주는 경험과 이야기들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다.

덕분에 찬란한 시기의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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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기계발과 성공에 미쳐있던 시기가 있었다.

무엇을 해도 자신감이 넘쳤고, 기세 하나로 인사팀장님을 쫒아가서 나란 사람을 PR했다. 심지어 한 은행의 담당자님께서는 맘에 든다고 졸업할 시기에 다시 찾아오라고도 했다.

또 한 은행의 FP님은 이제는 익숙한 커피챗처럼, 지점으로 놀러오라고 하셨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알았다. 은행의 업무는 저녁 6시 이후가 본격적이라는 것을, 밤 9시에도 그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나이의 학생의 패기를 얼마나 좋게 봐주셨으면 밥도, 커피도 사주시면서 본인의 꿈 이야기를 나눠주셨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공 교수님이 아님에도 궁금하면 연락을 드리고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덕분에 다양한 조언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교수님들과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경험도 했다.

군대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무대공포증',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던 내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말하는 것을 즐겼다. 즐기는 사람은 미칠 수 있다라던가, 철저한 준비를 통해 나간 대회마다 수상을 거머쥐었다. 심지어, TEDx라는 강연회를 오거나이징하면서 사장님들께 스폰서십 계약 영업도 다녔다. 샘 오취리를 섭외하기 위해서 지방대생이 몸뚱이 하나 끌고 목동 MBC 사무실까지 찾았다. (물론 사무실도 연락도 다 닿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빛이 났던 것 같다. '기세' 하나로 추가 신청자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직접 여러 커뮤니티를 발품팔면서 설명을 했고 초청을 했다. 더 나아가서 MC로 사회까지 봤다. (내가 어떻게 가능했지...?)

이 시기의 나는 실패하는 것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실패부터 하고, 그 위에 하나씩 덫칠하는 거라 생각했다.

대학원 조차도, 지방대생이 안면도 없는 나의 지도교수님께 장문의 메일을 여러통 보내면서 미팅을 잡고, 1년을 준비해서 입학할 수 있었다. 

많은 부딪힘에 주저앉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실패를 걱정하는게 아니라 실패할 거니까 일단 지르고, 조금 더 앞으로 넘어지는 방법을 강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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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의 나와 많이 다르다. 실패할까 두려워 시작을 하지 못 한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두고 있지만, 나아감을 외면하고 주저앉음 속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가 더 받아들여지지 못 했던 것 같다. 

### 내 머리는 과거의 나를 기억한다. 그렇지만 내 몸과 마음은 현재의 나를 바라본다.

그 괴리 속에서 늘 해내지 못 함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 두려움을 창조하여 불안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알고 있어서 또 죄책감 속으로 이어지는 슬픈 연쇄 사슬을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나에게 책이 (-) 변화량에 대한 수용을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변했다.

변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좋고 나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바라보는 스스로가 서 있을 뿐.

1차원 수직선 위에서는 +와 -는 좋고 나쁨으로 표현되곤 한다.

2차원 평면 상에서 +와 -는 좌표평면계에서의 방향성을 나타낼 뿐이다. 심지어 극좌표계라 불리는 각도상에서는 -가 없다. 몇 도 인지를 나타낼 뿐.

그렇다. 나의 변화는 -가 아니었다. 그저 0(수직선 방향에서 정확히 + 방향)도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동안의 주저앉음과 멈춤이라 착각했던 것은 때론 90도였고, 때론 180도이기도 했던 수많은 나의 변화가 누적된 결과일 것이다.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후진 혹은 유턴하는 것이듯, 내가 넘지 못 했던 벽을 지나서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던 과정이었다.

시간이라는 절대불변의 변화량이 존재하기에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다. 그때의 방식을 똑같이 채택할 수도 없다. 다만, 

### 실패는 하는 것이고, 성공은 되는 것이다.

 라는 철학은 계승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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