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활병

## 관중(과녁에 맞춤)하기 시작하면 활병이 노크를 한다.

소위 활병이라 함은 정신의 문제라고 많이 이야기를 들었다.

곰곰히 따져보면 기초부터 배울 때는 맞추는 것이 아닌 자세에 온전히 신경을 몰두하게 된다.

이렇게 당기는게 맞는지, 이렇게 힘을 줘야 하는지 빼야 하는지 등 거궁(활을 드는 동작)과 동시에

모든 긴장은 오롯이 내 자세로 향한다. 왜냐하면 까딱 잘못하면 내가, 그리고 주변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세를 완성하는 것에 몰두하다보면 자연스레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살이 과녁을 맞추기 시작한다.

올곧이 자세를 만들고 바르게 활을 내었다. 라는 표현으로 말 그대로 잘 쐈을 때, 내가 맞출려고 노려보지 않아도 맞아지게 되는 것이다. 재밌는 현상은 이렇게 맞추기 시작하면 곧 사람의 신체는 그것을 감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대(활쏘기를 하기 위해 서는 곳)에서 모든 감각이 과녁을 향하게 된다. 내 자세에 대한 긴장과 신경은 많이 무뎌지고, 내 감각으로 대체하게 된다.

문제는 지난 이야기에서 가볍게 다뤘듯, 몸의 감각이라는 것은 쉽게 교란을 일으킨다.

오롯이 내 자세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듯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과녁에 몰두하게 되면 자세를 놓치게 된다.

처음으로 오는 것은 '속사'라는 병이다. 내 몸이 완전히 만작(활을 끝까지 다 당기는 것)을 이루지 않았음에도 혹은 이루자마자 화살 시위를 놓게 되는 현상이다. 속사가 오려고 할 때에는 궁사가 다시금 자신의 자세에 집중(근육과 관절 등에 포인트를 지정해놓고, 그것이 이뤄졌는지 체크)하면 금방 교정이 된다.

이 속사가 병으로써 들이닥치게 되면 이제부터는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된다.

내가 쏘고 싶어서 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살을 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자세를 가져가지 못 한다. 심지어는 활시위가 뺨을 때린다던지, 엄지손가락이 다친다던지, 시위를 당기는 깍지손에 문제가 생긴다던지 다양한 부차적인 문제를 유발한다.

혼자서는 이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선생님이 옆에서 지도를 해주셔야 한다. 계속 신경써야 하는 포인트들을 이야기 해주시거나 시간을 세어주시기도 하는 등의 방법을 요청해야 한다.

특히, 활병 중에서 속사병이 왔을 때 궁사의 멘탈이 가장 바스라지기 쉽다. 내 의지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 속에서 자책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5발을 쏘면 4발을 맞추든 평균적으로 3발 이상을 맞추든 잘 쏘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물론 이를 병으로 여기지 않고 그냥 쏘시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일정하게 사법(활쏘기의 자세)에 따라 활을 내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써 활병은 지독히도 무서운 병인 것이다.

## 이 현상은 목표를 바라볼 때도 똑같이 생기는 것 같다.

성장 그 자체에 집중을 할 때는 하나씩 쌓여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나면, 목표 혹은 성공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모든 계획과 방향 그리고 나의 삶이 목표를 향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활병(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번아웃이 대표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전술, 전쟁용 활쏘기가 유실되고 우리에게 이어진 활쏘기는 다같이 '즐기는' 민속놀이로써의 활쏘기이다.

즉, 활쏘기의 과정은 즐기는 것에 있었다. 삶의 과정도 그것이 잘하든 말든 놀이로써의 즐김을 닮아 있는 듯 하다.

삶이 오롯이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나'를 놓치게 되면 무너지게 되는 것 같다.

오기 전이라면 가볍게 휴식과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미 왔다면 주변에서 쓴소리일지언정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금 무너진 것에 대해서 일어나지 못 한다고 스스로 자책할 필요가 없다. 마음의 병이 자리를 잡았다면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기란 힘든 것이 당연하니까.

활쏘기에 스승님이 계시듯, 삶에도 다양한 멘토님들이 존재할수록 우리는 더욱 건강한 삶의 행위를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혼자 부딪혔다. 그리고 배우자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도 내가 아직 주저앉아 있음을 깨닫고 나는 멘토님들을 찾아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재밌는 점은 이 과정이 온전히 활쏘기 취미를 다시 시작하면서 회고하는 과정에서 떠오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사자성어 중 '만류귀종'을 정말 좋아한다. 하나에 몰두하다 무너졌다면 괜찮다. 다른 것에서 재미를 찾아도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너진 그 하나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수 있는 경로를 깨닫거나 배울 수 있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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