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사유

매일
3.5 차원 생각을 붙잡아 둡니다.
15. 배우자와 대화
즐거운 이야기는 과거부터 오늘,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져도 좋다. 아쉬운 이야기는 과거로 가면 싸운다. 아쉬운 이야기는 오늘로 오면 서운하다. 아쉬운 이야기는 그래서 미래로 보내야 한다. 배우자로 불리는 이유 여럿 실패를 경험하면서 나의 나약함이 무기가 되었던 것 같다. 최근 아내와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지만, 소중한 순간들로 자주 마찰이 일었다. 서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화를 한다고 했는데, 정신차려보니 그게 또 하나의 아쉬움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진지하게 대화를 신청해왔다. 간만의 저녁 산책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늘 생각과 사려가 깊은 아내의 진솔한 고민의 흔적은 나에게 깨달음을 전해준다. "우리가 예전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자주 다투게 되는 것 같아. 앞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그래서 어떻게 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해보면 어떨까?" 머리가 틔였다. 서운한 것은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되려 꼬이게 하면 안 된다.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전에도', '나한테는', '그랬었잖아' 등의 과거 표현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풀리는 방법이 아니라 꼬임 속으로 더 꾀여들어 가는 행태만 보였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자', '이런 부분이 서운\아쉬워 ~, 그러니 우리 이제는 이렇게 해볼까?' 등의 대화는 꽁한 마음을 다독여줬다. 무엇인가 변화의 기대를 유발하기 때문일까?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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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떤 광고 문구
'무임승차'는 나쁜 것...? 내 기억 속에서는 '무임승차'는 벌금형이고,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으로 배웠다. 대학교 조별 과제에서도 'Free Rider'라 칭하는 무임승차, 또는 버스 타기로 불리는 행위는 사회적 합의에 반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카피라이팅에서는 짧지만 강력한 hooking point 를 중요시 하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에도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보자마자 부정적 인식이 떠오르는 단어를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로써 언급한다는 것은 어떤 의도일까 싶다. 세대 간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현 시대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할 사람들에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는 것일까? 현행 제도에 대한 관심이 아닌, 복지의 대상에 대한 불합리성만 떠올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간단하게는 '승차지원' 이라는 단어로 접근했다면 좋았을 듯 싶다. 그래서 3번...? "120 누르고 3번 누르세요!" 대상이 되는 분들께 이 문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앞과 뒤의 숫자 표현 구조가 다르니까, 혼동이 온다. 3번 누르세요는 3번을 눌리라고 하는 것일까, 3번 눌리라는 것일까.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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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자기 위한 호흡법
오롯이 안으로 집중해보는 호흡법 걱정이 인형이 필요할 만큼 불안의 시기를 보내니 주변 친구들이 요가를 해보는 것을 권유한다. 하고 나면 개운하고, 꿀잠도 잘 수 있다고 하니 해봐야겠다 싶으면서도 비용적 장벽을 핑계로 미루게 된다. 무엇이든 의욕을 낼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Youtube 지식인사이드 채널에서 김주환 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을 보게 되었다. 눈을 감을 필요도, 목탁을 두들길 필요도, 혹은 스트레칭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오롯이 외부로 쏟아지는 신경을 모아서 '나'를 오롯이 지켜보고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다. 잠이 안 올 때면 호흡법을 떠올리면서 잠들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물론 수면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내 몸 속 근육 감각에 집중하던 순간이었다. 코로 숨을 들이마셔도 1분에 가깝게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인체는 신비로웠다. 나만의 호흡 명상법을 깨달았던 것 같다. 보통은 호흡이 가슴께에서 멈춘다. 그러다보면 횡경막이 잘 안 쓰이게 되고 굳으면서 호흡이 얕아진다고 필라테스를 하면서 배웠다. 복식호흡이랍시고, 무작정 아랫배로 횡경막을 당겨 마시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할 경우 금방 공기가 차면서 횡경막이 땡땡해지는 통증도 함께 한다. 그래서 불편하고 지속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안 되었다. 잠에 들지 못 하는 날에는 내가 좋아하는 무협지 속의 내용들을 상상하면서, 최대한 코로 들어간 숨이 어디로 움직여지는지 그 감각을 느껴보고자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심박수를 늦추기 위해서 호흡을 강제적으로 천천히 하는 법을 배웠는데, 호흡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입으로 흡기를 행하는게 유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도 길게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무협지 속 인물들은 코로 숨을 들이마셔서 기라는 것을 몸에 가둔다고 했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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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짧은 글 (5)
39살의 신인상, jellyroll youtube short에 우연한 알고리즘으로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2023 CMA Awards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그의 나이는 39살이었다. 래퍼에서 컨트리 아티스트로 파격적인 전향과 행보를 보인 후의 결실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I don't know where you're in your life or what you're going through But I wanna tell you to keep going baby. I wanna tell you success is on the other side of it. I wanna tell you it's gonna be okay. I wanna tell you that the windshield is bigger than the rear view mirror for a reason. Because what's in front of you is so much more important than what's behind you. "차창의 앞유리가 룸미러 보다 큰 이유는 내 앞에 펼쳐질 것들이 내가 지나온 것들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거의 실패에 더 많은 신경이 쏟아져 있는 내가 운전대가 불안정한 건 당연한 이야기 같다. 처음 운전대를 잡고 어디든 떠날 수 있던 그 자유의 즐거움을 떠올리면서 다시금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막막함으로 보는 것이 아닌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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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짧은 글(4)
'아름'답다. (출처: 작성자 서몽) "15세기 석보상절에 나오는 아름답다는 내 가치관에 부합되는 것이 마음에 든다. →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보기 좋다. 이런식의 변천을 거쳐 지금의 아름답다라는 말을 썼습니다." 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표기 산문 자료이다. 아름답다의 아름의 유래를 보다보면, 선조들의 낭만과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아름답다 = '나' 답다" 본질적으로 나를 찾은 사람들이 빛나보인 이유는 아름다워서 였구나 싶다.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하는 "몹글"을 통해 매일 글쓰기로 나다움을 한스푼 휘저어보고 있는 중인데, 조금은 나도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 바라본다. 언젠가는 답하고 싶다. 나 다움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에 대해서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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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짧은 글(3)
좋아하는 것 1. 우리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안녕' 하세요. 인사를 배울 때 그게 예의라고 배웠는데, 단어를 바라보면 축복과 배려의 의미임을 배울 수 있다. 편안할 안(安) 편안할 녕(寧) 즉, '안녕하세요'는 대상의 무사-무탈의 나날을 빌어주는 말이다.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힘든 시기에 오늘 하루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2. 삶도 사랑도 아픈 이유가 있다. 사람의 삶에 힘듦이 있는 것도, 사람의 사랑에 아픔이 있는 것도, 위대한 희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에서 삶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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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짧은 글(2)
공백을 여백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다보면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이슈 중간중간에 공백기가 많은데 무엇을 했는지, 왜 생겼는지 그리고 왜 이력이 없는지에 대한 방어 논리와 주장에 대한 근거를 들어야 했다. 이 비어있음이 사회적 인식에서 어떻게 비칠 지 걱정하며 어떻게든 경험과 성장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도전을 하다보면 끝맺음 짓지 못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러다 보면 그 사이의 공백도 생길 수 있고, 사람인지라 지쳐서 그냥 쉴 수도 있다. 살기 위해서 쉬었는데, 하자가 있는, 낙오한 느낌이 들게 되었다.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다 끄집어 내서 문장으로 덮어봤다. 되려 지치기만 하였다. 답이 없다. 'no where'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장난을 좋아해서, 단어를 종종 건들이는 취미가 있다. 언젠가, 'no where'의 공백이 괘씸해서 툭 쳤더니 "now here" 라는 문장으로 바뀌어 졌다. 스페이스바도 쓰기에 따라서 맥락을 엎을 수 있는데, 공백기를 다 채울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여백의 미를 사랑하던 선조들의 지혜에서 내 삶의 휴지기들을 공백기로 두는 것이 아닌 여백으로 두기로 했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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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짧은 글(1)
꿈이란건 멋있어야 할까? 태양의 빛은 화려하다. 태양이 가장 찬란할 때, 태양을 바라보지 않는다. 단지, 부산물에 집중한다. 달과 별의 빛은 은은하다. 때론 보이지 않기도 한다. 지금처럼 인공 조명의 혜택 아래, 때론 슬프기까지 하다. 흥미로운 건, 많은 시상이 많은 감동적인 서사는 달과 별에게서 흘러나왔다. 꿈을 이룬자에게는 찬사가 꿈을 꾸는자에게는 낭만이 그러니, 멋진 꿈보다는 은은히 즐길 수 있는 꿈을 그려보고자 한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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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전 문가입니다.
Professionals, Experts, 혹은 전문가 재밌는 article을 읽었다. John Papazafiropoulos CEO님의 The Subtle Distinction: Professionals vs. Experts 는 우리가 전부 전문가로 해석하는 두 단어에 대한 정의와 그 차이점에 대해 다룬다. Professionals : 전문가 Experts : 전문가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Professionals(앞으로는 줄여서 'Pro'라고 표기) 는 정해져 있는 규정과 규칙 하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해내는 사람(전문가)이다. Experts 는 좀 더 유연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전문가)이다. 마치, 공기업/공무원 vs 스타트업의 느낌이 들었다. 지식의 내재화와 지혜의 표출화 저자의 두 용어에 대한 구분은 흥미로웠고 이색적이었다. 단지, 'pro는 딱딱하고 규정적인 것'에 experts는 우선시 되는 대조를 내 방식대로 이해해보자 한다. 사람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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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피어남
우린 그걸 기적이라고 부른다.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고, 삶이 버겁다면 우리는 어쩌면 아스팔트의 두텁고도 딱딱한 벽을 뚫고 있을지도 모른다. 온갖 화초들의 화려함을 부러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메마른 콘크리트 위에 피어난 새싹은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감동을 전한다. 다소 밋밋해도, 다소 특색이 없어도, 어렵게 피어난 만큼 우리네는 그 자체로 기적이라 불린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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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도망치기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의 명대사. 뒤를 돌아보면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많은 순간에 도망을 선택했다. 그래서 였을까, 석사 졸업에 있어서는 어떻게든 그 끝을 완성시켜보고 싶었다. 최종 발표를 앞에 두고 reject이 된 2번의 경험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포기했다. 잠을 먼저 포기했고, 식도락을 내려놨고, 사람들과의 소통까지 내려놨다. 이번에는 끝까지 가야한다는 스스로의 압박 속에 논문의 why와 how는 사라졌다. 강박 앞에서 고찰은 무용이었고, 두려움 앞에 질문은 이름을 잃었다. 왜 이 논문이 중요한지, 왜 내가 이런 연구를 하는지, 그래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고,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가 있어야 논문이 완성될 수 있음에도 내 이야기 속 논문의 완성 끝 앞에서 남은 것은 '만들어짐' 뿐이었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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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점 후기
영화 1승은 하나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또 하나의 휴식기를 가졌다. 유튜브 숏츠로 기승전결을 다 보여준 1승은 언젠가 꼭 생각이 나면 시청하고 싶던 영화였다. 분명 숏츠로 프리뷰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색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박정민 배우님과 송강호 배우님의 연기 리딩으로 감동을 이끌어낸, 감탄사를 터트릴만한 영화였다. "사람들은 이기고 지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언더독들이 어떻게 갈등하고 도전하는 그러한 과정에 열광하는 거지" "단점이 없으면 장점이 없어진다." 단점은 지우는게 아니다. 외삼촌께서 해주신 말이 기억이 났다. "단점을 채울려고 학원을 가지말고, 장점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 학원/강의/공부를 해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그 대화가 떠올랐다. 송강호 배우께서 감독역으로써 뱉은 대사 하나하나가 곱씹어졌다. 단점을 없애기 위해서, 혹은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들을 쏟았었다. 그럼으로 장점을 더 바라보고, 더 강화하기 위한 시간은 많이 놓쳤다. 빛나는 것은 성공했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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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Motion makes Emotion
행동의 효과 Macbeth effect 를 아시나요? 양심에 가책을 받을 때, 스스로를 씻고자 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 Washing away your sins: Threatened morality and physical cleansing 위 연구에서 재밌는 현상을 다뤘다. 손을 씻는 행위와 도덕적 가책 간의 영향을 다룬 논문인데, 쉽게 풀어내면, 도덕적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손을 씻는 행위가 그를 해소시켜준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 상쾌한 기분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를 수 있고, 광합성을 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단단해질 수 있음은 자명하게 알려져 있다. 이처럼, 행동은 우리의 감정을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또다른 재밌는 연구는 '하품의 전이'현상이다. 하품의 소리 하품하는 행위 만으로도 하품이 전이된다는 것이다. 피곤해서 하품을 할 수 있지만, 하품하는 행위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듯 하품을 하게 된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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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열심,
나도 커피챗 당할 수 있다 1주일 전 '쓰담화'를 통해 알게 된 젊은 열정을 가진 분이 커피 한잔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싶어 어쩌지 싶었다.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곰곰히 생각하다 문득 이런 글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상대방의 판단을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이 분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었을텐데 나의 염려가 그 의사결정의 값어치만큼인가란 생각에 수락했다. 먼 곳에서 오시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사전 준비를 했다. (실은 모든 것은 아내님의 내조였다. 고마워요.) 아이스브레이킹부터 그냥 브레이킹 가볍게 던진다는게 묵직한 직구 스트라이크다. 브랜딩과 마케팅에 관한 관점과 구상하고 있는 사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바로 시작했다. (대화도 두괄식처럼) 실무 경험은 없기에 연구자로서의 관점, 학문을 통해 길렀던 내 견해를 봇짐 뒤집듯 쏟아냈다. 많이 듣고, 좋은 질문을 하고 했던 각오는 커피의 얼음처럼 카페인향과 함께 녹아버렸다. 생각보다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을 타고 쏜살과 같이 퍼져갔다. 부디 내 생각주머니가 그대에게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유용했기를 바라며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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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 글이 글
일단 글은 없어지지 않으니까 1주일에 8편의 논문 읽고, 요약 및 critics 작성하기 1년이면 평균적으로 수백편의 논문을 읽어나갈 수 있다. 그렇게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글들을 읽었고, 생각했고, 인용했다. 많이 읽고, 공부했으니 당연히 성공할 거라 생각했고, 수 번의 졸업논문은 reject 되었다. 내 대학원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러번의 고민과 마찰 끝에 석사 졸업을 내려놓기로 하고선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포트폴리오... 는 없었다. 그리고 지식도 없다. 분명 많은 이야기들을 쌓아왔다. 하지만, 취업 시장 앞에선 나에겐 주어진 글이 없다. 정확히는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처리하다보니 기록을 소홀히 했고, 마무리되지 못 하고 엎어진 논문들의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누군가들이 말하는 포트폴리오로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output)이 없었다. 정확히는 하기는 했는데, 그 형태가 무엇인지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취업 트렌드에서 말하는 "정량적인 성과"는 현재의 나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려운 용어를 써가면서 아는 체는 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쓸 수 있는데요?' 라는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돌아보니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퇴색되어져 가며, 나는 그렇게 정보만 남겨둔 사람이 되었다. 쓰다. 입맛도, 그래서 글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로 늦었을 수도 있다.
  • 권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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