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flex 심리학
초등학교 때, 돈 많은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락실에서 지폐를 넣고 바꾼 동전을 조이스틱 옆에 잔뜩 쌓아 놓고 친구들이 가져다가 쓰게 했죠. 나는 그 때 돈을 가져가면서도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돈을 더 달라고 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나고요. 그 땐 몰랐지만 그 친구와 나는 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돈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갔던 애들은 지금도 뻔뻔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을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그 사람은 남에게 돈을 나눠 주는게 별로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이를 경험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남에게 쉽게 선행을 베풀 가능성이 큽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남에게 돈 몇 푼 주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상태를 본인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단히 어렵다고 봅니다. 뇌가 이미 다 자라고 나면 이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됩니다. 한국인들을 관찰해 보면, 돈을 나눠주는 것에도 반드시 어떠한 보상을 기대합니다. 겉으로 아무리 자선 행동인 것 같아도 머릿속으로는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죠.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이걸 해줄테니 무엇을 해달라고 정식으로 요구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서양에서는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이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발달했습니다. 요즘 흔히 쓰는 flex라는 단어의 기원을 보면 흑인들이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내가 이 만큼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해방적 상징성이 강합니다. 흑인 문화도 어느 정도 자본주의의 천박함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돈 자랑을 할 때 쪼잔하게 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내가 잘났으니 베푼다는 마인드로 느껴집니다. 초등학생 때 내 친구가 쿨하게 친구들 오락을 시켜준 것처럼요. 한국인은 돈을 자랑하는 방법에 있어서, '내가 이 만큼 돈이 있으니 약오르지?'라는 심리가 99.9999% 라고 봅니다. 말그대로 자랑을 위한 자랑이죠. 그리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이런 방식의 flex를 하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할 리가 없죠. 겉으로만 떠받들어주는 척 할 뿐입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시기하면서 늙어갑니다. 심지어는 돈으로 베푸는 사람을 더 등쳐먹을 궁리를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flex를 한다는게 오히려 더 위험해 보입니다. 내가 뉴질랜드에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 때였습니다.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해서 숙소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제과점에서 빵을 돌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굉장히 머뭇거리면서 그 빵 하나도 받기 어려워 했습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공짜로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자식이 잘나서 어쩌구, 남편이 얼마를 벌어서 어쩌구, 사촌이 의사라서 어쩌구 등등.. 이 때 자랑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뭐라도 돌리면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기 시작합니다. 자랑이 공짜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시죠. 이게 그나마 개선된 한국식 flex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인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가난해서 공짜를 너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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