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1] Day-8 쿠라시키/倉敷
오노미치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히로시마현을 떠나는 날이다. 나흘간 묵었던 B&B潮風를 떠나려니 기분이 묘했다. 야마구치씨와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 이제 구글 지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동네가 눈에 익기시작했는데 떠나야한다니 허무하기도 했다. 야마구치씨에게도 좋은 기억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공용 거실에 있는 방명록도 작성하고 예비로 가져왔던 자동차 번호판도 선물(?)로 남겨두었다. 진심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B&B潮風를 방문하고 싶다. 여유만 된다면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싶을 정도다. 오노미치의 마지막 일정은 우연히 어제 숙소에 도착한 오츠카씨 부부 중 아내분과 함께 하게되었다. 남편 오츠카씨는 오늘 무카이시마와 근처 섬들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내 오츠카씨는 오노미치 근처를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는데 내가 오노미치시립미술관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보였다. 원래부터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했던 아내 오츠카씨는 길치였기 때문에(지도를 읽지 못한다고 한다.) 혹시 자동차를 얻어탈 수 있는지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아내 오츠카씨는 69살이다!) 오노미치시립미술관은 센코지 공원(센코지절과 그 주변의 공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노미치시립미술관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이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대해서 잘 알고있진 못하지만(성산일출봉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건물과 콘크리트를 좋아한다 정도?) 괜히 시립미술과의 외관을 조금 눈여겨 보게 되었다. 역시 콘크리트와 유리된 외벽이 눈에 띄었다. 시립미술관의 전시는 Landskap(나중에 찾아보니 말레이어로 풍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오노미치의 폐가를 주제로 한 전시였다. 일본 목조 주택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우리 시골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집에 사는 사람과 사람의 친구 고양이(?)의 유골도 전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없어 전시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간간히 오츠카씨의 쉬운 일본어 설명을 들으며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끝까지 관람했다. 오노미치는 고양이 마을로 유명하다고 해서인지 전시 끝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물건도 잔뜩 볼 수 있었다. (나는 오노미치에서 고양이를 본 적이 없지만...) 미술관을 나와서 오츠카 씨와 헤어지기 전에 센코지 공원의 전망대에 올라 오노미치 시내를 구경했다. 오노미치 중심지와 내가 지난 나흘을 보낸 무카이시마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노미치시는 일본에서 "레트로"한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하는데 전망대를 통해 본 오노미치시는 한 눈에 봐도 옛날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노미치시를 색깔로 표현하라고 하면 오래된 나무의 고동색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그만큼 오래된 목조 건물이 많았다.) 경적을 울리며 오노미치시를 지나가는 화물열차를 보면서 100년 전의 오노미치시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츠카씨와는 전망대 구경까지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원래 오츠카시는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지도를 읽지 못해 길을 잃을까봐 좀 무서워하셔서 공원 아래의 오노미치 상점가까지는 차로 바래다 드렸다. 한국차를 타고 왔다갔다한 경험이 꽤 재밌었던 모양인지 떠나는 나를 배웅(?)하면서 연신 카메라에 셔터를 누르셨다.(사진은 나중에 오츠카씨에게 메일로 받았다) 오츠카씨와 헤어지고는 오늘 목적지인 쿠라시키로 향했다. 쿠라시키로 가는 길에 잠시 정비(사실 밀린 기록을 정리)하고자 후쿠야마에 있는 스타벅스(주차장이 있고, 인터넷이 있고, 콘센트가 있는 최고의 장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구글 지도에서 한적해보이는 스타벅스를 선택했는데 재밌게도 스타벅스 안에 키보드와 기타가 있었고 키보드와 기타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드립커피와 먹을 것을 시키고 잠시 앉아있었더니 연주가 시작됐다. 한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관경이라서 재밌게 보았다. 중간 중간 연주에 실수가 있는 것을 보면 100% 프로는 아닌 모양이었지만 스타벅스의 색깔과 잘 어울리는 연주라고 생각했다.(아는 곡들도 몇곡 연주했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연주 중간에 멤버 중에 한 명인듯한 사람이 설문조사를 위한 종이를 나누어주었다. 내용은 크리스마스에 듣고 싶은 곡을 적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멤버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한 번 스타벅스에서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연주가 모두 끝나자 설문지를 나눠준 멤버가 다시 설문지를 걷어갔다. 나는 타이타닉 OST라고 적은 종이를 냈다. 쿠라시키로 이동하면서는 점점 논들이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의 지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쿠라시키(倉敷)의 쿠라(倉)가 곳간이라는 뜻이니까 일본의 곡창 지대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쿠라시키에는 4시쯤 되어 도착했는데 이른 노을과 논에서 자라는 벼가 겹쳐 쿠라시키는 노오란 느낌이었다. 쿠라시키에서는 비칸(美観)지구라는 곳을 구경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근처에 차를 세우고 비칸(美観)지구로 향했다. 비칸지구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지 않아서(기대가 적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칸지구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대극에 나올 법한 일본의 옛날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비칸지구를 흐르는 강과 버드나무, 일본의 과거 건물들이 서로 잘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교토의 기온을 많이 방문해봤지만 기온이 주는 분위기와는 또 달랐다. 교토가 (내 느낌상) 시대 정치극의 배경 같은 느낌이라면 비칸지구는 시대 로맨스물의 배경 같은 느낌이었다. 비칸지구 안에는 오하라 미술관이라는 그리스 스타일의 미술관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곳은 시간이 부족해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줄지어있는 목조 건물들을 지나 만난 그리스식 석조 미술관의 모습이 신기하게도 그렇게 이질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을 따라(?) 아이비스퀘어라는 곳에 들어가봤다. 이름처럼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벽과 건물을 휘감고 있는 덩굴줄기들이 잔뜩 보였다. 입구에서 덩굴 정원(?)을 지나자 빨간건물이 보였는데 짧은 일본어로 건물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과거 방적소였던 모양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중정(中庭)이 있었는데 중정에서 옥토버페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커다랗게 들리는 음악소리와 춤추는 호객꾼들(?)의 모습들이 눈에 보였다. 너무너무너무 참여하고 싶었지만 차를 가지고 돌아가야하는터라 맥주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칸지구를 한바퀴 더 산책하고 쿠라시키역 상점가에서 카레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에 있었다. 주차가 되는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 아무래도 대부분 숙소가 시골에 있었다. 오늘 숙소는 흰백발에 멋드러지게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와 유쾌해보이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흥미롭게도 김치를 드시고 계셨다. 할머니가 유쾌한 것에 비해 할아버지는 좀 낯을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적고 보니 오늘도 꽤 긴 하루를 보냈다.(이제 2주째인데 더 열심히 다녀야할 것 같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