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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7] Day-4 히로시마/ 広島
Amond
오늘은 히로시마런(?)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혹시 몰라 가방에 런닝화를 들고왔지만 피곤함을 핑계로 런닝을 미뤄오다가 나흘째 아침이 되서야 런닝을 하기로 했다. (당연히) 어떤 코스로 뛰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Strava를 깔아왔는데 드디어 써먹었다. 7시 30분쯤 숙소를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등교시간이 이른 모양이었다. 흰색과 빨간색 모자를 쓰고 등교를 하는 초등학생들과 삼삼오오 무리지어가는 중학생도 보이고, 자전거를 탄 고등학생들이 줄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5km정도 달렸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아침을 피부로 체험한 것 같아서 재밌었다. 등교하던 아이들은 이 시간에 뛰고 있는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던 것 같기도 하다.
런닝으로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한 후에는 어제 실패했던 미야지마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바보 같은데 어제 승용차용 페리가 있는 것을 보고 일단 자동차를 가지고 미야지마 터미널로 향했다. 당당하게 창구에 차를 가지고 미야지마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자 직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관광 온거냐고 미야지마 안에는 주차장이 없다고 말했다. 어쩔수 없이 미야지마 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미야지마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주차장도 터미널 주차장 말고 주변에 사설 주차장에 세울 걸 그랬다... 훨씬 싼데...)
10시가 넘어서 탄 페리는 미야지마로 바로가는 것이 아니라 미야지마의 상징인 물 위의 토리이 방향으로 가깝게 지나가는 페리였다. 오래 전부터 이 커다란 토리이를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물 위에 떠있는 거대한 토리이가 신비롭게 느껴졌다. 사실 토리이와 이츠쿠시마신사(물 위에 지어진 신사)가 있는 곳은 간조 때는 바닥이 드러날 만큼 얕은 곳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그걸 알고 봐도 멋졌다.
페리에서 본 토리이(영상)
미야지마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건 사슴이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편의점에서 야끼소바빵을 하나 사서 도착하자마자 선착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 먹었는데 저기 멀리서 사람들과 놀고 있던 사슴이 내게 다가와 미친듯이 내 소중한 식량을 빼앗으려 했다.(아쉽게도 이 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지 못했다.) 처음엔 다리로 열심히 밀어내다가 커다란 뿔에 다칠수도 있겠다 싶어서 자리를 빠져나왔다. 사슴에게 진 것 같아서 분하긴 했다.
미야지마에는 수학여행온 학생들과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현지 가이드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30% 정도 밖에 못알아듣긴 했지만 일본인 가이드의 이야기를 엿들어가며 이츠쿠시마신사로 이동했다. 미야지마는 일본3경 중에 하나인데 가이드에게 듣기로는(더블체크가 필요하지만) 토리이와 신사 때문이 아니라 바다와 소나무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2경은 마쓰시마의 어딘가와 교토의 어딘가라고 했다. 이번 2개월 간의 여행에서 혹시 들를 수 있다면 들러봐야겠다.
이츠쿠시마신사에 대한 내 평가는 "와 이거 안 숭배하고 배겨?" 였다. 날씨가 좋았던 탓도 있었겠지만 물 위에 지어진 거대한 토리를 신사 안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신사 자체도 물위에 떠있어서 용궁같은 느낌을 줬다. (실제로 용궁을 본따 만든 건 시모노세키에서 본 아카마신궁이지만...) 신토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신사 방문한 일본인들이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곳을 신성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도 더러 신토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이츠쿠시마신사 말고도 미야지마에는 신사와 절이 엄청나게 많았다. 잠시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로는 미야지마의 생김새가 천국과 같아서 신사와 절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야지마 안을 돌아다니는 내내 주변에서 석탑들을 계속 볼 수 있었고 조금만 걷다 눈을 돌려보면 크고 작은 신사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어가 짧아, 심지어 대부분 멋지게 쓴 한문으로 쓰여있었기 때문에 어떤 신사인지는 알 수 없어서 아쉬웠다. 나는 미야지마를 관광을 위해 조성된 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야지마에 사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페리에 차를 태울 수 있었겠지만...) 미야지마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미야지마를 떠나면서 일본에서의 첫 기념품을 샀다. 노스페이스스러운 디자인에 The North Face가 아닌 The Shikano Face라고 쓰여져있고 사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다.(Shika가 일본어로 사슴이다.) 미야지마에서 처음 만난 사슴놈(!!!)이 생각나기도 하고 원래부터 노스페이스 티쳐츠가 많으니 좋은 기념품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은 미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만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린 걸 보고 고맙게도 먼저 연락을 해줘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했는데 친절하게도 히로시마 원폭돔과 평화공원 근처를 소개해주겠다고했다. 히로시마 중심지 근처는 주차비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통해 이동하기로 했다. 운전을 하며 자주 만났던 노상전차 히로덴 정류장이 숙소 근처에 있어 히로덴을 타고 이동했다. 처음엔 막연히 지하철 역같은 것일거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준비없이 갔는데 히로덴은 지하철보다는 버스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역이라고는 부르지만 개찰구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교통카드를 가진 사람들은 그냥 오는 전철에 탑승하면 끝이었다. 문제는 내게 교통카드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전철이 오기전까지 역 주변을 둘러보자 "현금을 내는 사람은 이 티켓을 뽑으세요"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티켓을 뽑아 챙겼다. 티켓이라고 해봤자 내가 어디서 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역의 도장이 찍혀있는 것 뿐이었다. 내릴 때는 티켓을 내면서 현금을 내면 오케이였다. (딱 맞게 220엔을 내면 됐는데, 300엔을 내려고하니 기관사 아저씨가 기겁을 하며 나를 말렸다)
친구보다 조금 일찍 원폭 돔에 도착하여 원폭돔을 둘러봤다. 원폭돔 근처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특히 원폭돔 앞에는 다시 피해자를 위한 물이 놓여져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원자폭탄이 폭발했을 때 그 불길과 열기에 많은 사람들이 물을 찾고 심지어 강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원폭돔은 반정도 날아가긴 했지만 형태는 꽤 잘 유지하고 있었다. 원자폭탄이 머리 위(상공 600m)에서 터진 탓에 그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폭돔 주변의 가이드들은 원폭돔의 보존이 다시는 전쟁에 원자폭탄이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계속해서 설명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으로 조금만 나가보면 사사키 사다코 상이 있다. 사사키 사다코의 이야기는 어렸을 때(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원자폭탄에서는 살아남았지만 그 여파로 백혈병에 걸려 병을 극복하기 위해 종이학을 접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난 소녀의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있는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 이야기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전쟁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있든 누가 시작하고 어떻게 끝을 내든지 간에 전쟁에 희생되는 민간인은 보호되어야할 것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따위로 무지막지한 결정들이 내려지곤 하지만 "대"도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개인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쟁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내가 다녔던 회사는 구조조정을 했는데 회사 차원에서는 당연히도 합리적인 결정이겠지만 합리적인 결정에 따라 직장을 잃은 개인은 결국 희생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결정에 일조한 입장으로서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
평화공원 근처와 히로시마성을 슬쩍 둘러보고 드디어! 저녁식사를 먹으러 이동했다. 저녁식사는 히로시마의 명물(?) 오코노미야키와 철판요리였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오사카식과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오사카식은 내용물이 모두 섞어 굽는 반면에 히로시마식은 밀가루, 야채, 내용물, 계란 등을 한층한층 따로 쌓는다. 그리고 히로시마식에는 소바 면도 들어간다!! 물론 굉장히 맛있었다. 철판 요리도 좋아하고 원래부터 야키소바를 좋아했는데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는 좋아하는 재료를 다 때려넣은 음식이었다. 평소에는 굴을 좋아하지 않지만 히로시마의 또 다른 명물인 굴이 들어간 오코노미야키도 함께 먹었다. 생각해보니 히로시마 바다 위에 떠있던(?) 정체 모를 것들은 굴을 키우는 양식장인 것 같았다. 짧은 지식으로 철판요리는 오사카!라고만 생각했는데 히로시마의 정갈한 철판요리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느낌이다.
오코노미야키와 맥주를 먹으며 친구들과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 다녀온지 벌써 8~9년이 되었고 히로시마에 사는 친구들은 사실 그 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다. 아주 종종 인스타그램을 통해 댓글을 남기거나 하는 정도 였다. 어학연수 시절엔 내가 나이가 많은 편이고 일본 친구들은 대부분 갓 20살이 된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이번에 만났을 때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이번에 만난 친구 두 명 모두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고 있었다. 문득 내가 많은 것을 미루고 여행을 온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래도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어학연수 시절 이야기를 하며 내가 알던 친구들의 얼굴이 보여서 반갑기도 했다. 저녁 식사 내내 옛날 이야기 그리고 옛날과 달라진(20kg 증량한) 나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먼저 연락해주고 밥도 사준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나도 한국에 외국 친구들이 왔을 때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지원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벅찬 느낌인 것 같다.
히로시마에서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일은 오노미치(尾道)라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여기에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슬쩍 찾아봐야겠다.
Translated by DeepL
今日は広島ラン(?)で一日を始めた。 万が一に備えてランニングシューズをカバンに入れてきたが、疲れを理由にランニングを延期し、4日目の朝になってからランニングをすることにした。 (当然のことながら)どのコースで走ればいいのかわからなかったのでStravaを敷いたが、ようやく使ってみた。7時30分頃に宿を出て走り始めました。早い時間でしたが、登校する学生がたくさんいました。どうやら韓国より登校時間が早いようだ。白と赤の帽子をかぶって登校する小学生や、三々五々歩いている中学生も見られ、自転車に乗った高校生が次々と通り過ぎるのを見ながら5kmほど走った。意図したわけではないが、日本の朝を肌で感じたようで面白かった。 登校中の子供たちは、この時間に走っている私を不思議な目で見ていたような気がする。
ランニングで爽やかな朝を迎えた後は、昨日失敗した宮島に行くことにしました。今考えるとちょっと馬鹿みたいですが、昨日乗用車用のフェリーがあるのを見て、とりあえず車を持って宮島ターミナルに向かいました。 堂々と窓口に車を持って宮島に入るにはどうすればいいのかと尋ねると、職員は困った顔で観光に来たのか、宮島には駐車場がないと言いました。仕方なく、宮島ターミナル駐車場に車を停め、宮島に向かうフェリーに乗った。 (駐車場もターミナル駐車場ではなく、周辺の民間駐車場に停めればよかった...もっと安かったのに...。)
10時過ぎに乗ったフェリーは宮島に直接行くのではなく、宮島のシンボルである水上の鳥居の方向に近くを通るフェリーでした。ずっと前からこの大きな鳥居を見たいと思っていたのですが、実際に目で見ると、水上に浮かぶ巨大な鳥居が神秘的に感じられました。実は鳥居と厳島神社(水の上に建つ神社)がある場所は、干潮時には底が見えるほど浅い場所に建てられているそうですが、それを知ってから見ても素敵でした。
フェリーから見た鳥居(動画)
宮島に到着して最初に出迎えてくれたのは鹿? 朝を食べなかったので、コンビニで焼きそばパンを買ってきて、到着後すぐに船着き場近くのベンチに座って食べたのですが、そこへ遠くで人と遊んでいた鹿が近づいてきて、狂ったように私の大切な食料を奪おうとしました。 (残念ながらこのシーンを写真や映像に収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最初は足で必死に押しのけましたが、大きな角で怪我をするかもしれないと思い、席を外しました。鹿に負けたようで悔しかった。
宮島には修学旅行で来た学生や団体観光客が多く、現地ガイドがたくさんいて、30%くらいしか聞き取れませんでしたが、日本人ガイドの話を聞きながら厳島神社に移動しました。宮島は日本三景の一つですが、ガイドさんに聞いたところ(ダブルチェックが必要ですが)、鳥居や神社のためではなく、海と松の木のためだそうです。他の2つは松島のどこか、京都のどこかだそうです。今回の2ヶ月間の旅行で、もし立ち寄ることができれば、立ち寄ってみようと思います。
嚴島神社に対する私の評価は「うわー、これ参拝しないのかよ」でした。天気が良かったせいもあるのでしょうが、水の上に建てられた巨大な鳥居を神社のどこからでも見ることができ、神社自体も水の上に浮かんでいて龍宮城のような印象を受けました。 (実際に龍宮城を模して作られたのは下関で見た赤間神宮ですが...) 神道そのものに対する理解度が低いので、神社を訪れた日本人がどんな気持ちで何を祈っているのかはわかりませんでしたが、この場所を神聖視していることは確かでした。私自身も、なんとなく新東についての疑問が湧いてきました。
厳島神社以外にも、宮島にはたくさんの神社やお寺がありました。ちょっとネットで調べてみると、宮島の形が天国のようなので、神社やお寺をたくさん建てたそうです。そのせいか、宮島の中を歩いている間中、周りから石塔をずっと見ることができ、少し歩いた後に目を向けると、大小の神社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ました。日本語が短くて、しかもほとんど漢字で書かれていたので、どの神社なのかわからなかったのが残念でした。私は宮島を観光のために造られた島だと思っていたのですが、宮島に住んでいる人もかなりいるようでした。(だからフェリーに車を乗せる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が...)宮島に住んでいる人はどんな仕事をしているのか気になりました。
宮島を離れ、日本での最初のお土産を買いました。ノースフェイスらしいデザインにThe North FaceではなくThe Shikano Faceと書かれていて、鹿の顔が描かれたTシャツです。宮島で初めて出会った鹿の奴(!!!)を思い出したし、もともとノースフェイスのTシャツが多いので、良いお土産になると思いました。
そして今日はアメリカで語学留学の時に出会った友達に会うことにしました。インスタグラムのストーリーを投稿したのを見て、ありがたいことに先に連絡をくれたので、一緒に夕食を食べることにしたのですが、親切にも広島原爆ドームと平和公園の近くを紹介してくれるとのことでした。広島の中心部付近は駐車料金が高いという話を聞いて、今回は公共交通機関で移動することにしました。運転中によく目にする路面電車の広電の停留所が宿の近くにあったので、広電に乗って移動しました。最初は漠然と地下鉄の駅みたいなものだと思って何の準備もせずに行ったのですが、広電は地下鉄というよりバスに近い概念でした。駅と言っても改札があるわけではなく、交通カードを持っている人はそのまま来る電車に乗ればいいのです。問題は私が交通カードを持っていないことだったのですが、電車が来るまで駅周辺を見回すと「現金でお支払いの方はこのチケットを引いてください」という文言を見つけ、チケットを引いて取りました。チケットと言っても、どこで乗ったか確認できるように駅のスタンプが押されているだけのものだった。降りるときは、チケットを出しながら現金を払えばOKだった(ちょうど220円でよかったのだが、300円払おうとしたら、機関士のおじさんがびっくりして私を止めた)。
友人より少し早く原爆ドームに到着し、原爆ドームを見学した。原爆ドームの近くには重い雰囲気が漂っていて、特に原爆ドームの前には原爆の犠牲者のための水が置かれていて目を引いた。原爆が爆発したとき、その炎と熱で多くの人が水を求めて川に飛び込んだそうですが、彼らのためのものだそうです。原爆ドームは半分ほど吹き飛ばされていたが、形はよく残っていた。原爆が頭上(上空600m)で爆発したため、その構造を維持できたのだという。原爆ドーム周辺のガイドさんは、原爆ドームの保存が二度と戦争に原爆が使われないことを願う気持ちであることを何度も説明してくれました。広島平和公園に少し出ると、佐々木貞子像がある。佐々木貞子の話は、子供の頃(小学生の時か中学生の時)に本で読んだことがある。原爆は生き延びたが、その余波で白血病にかかり、病気を克服するために折り鶴を折ったが、結局亡くなった少女の話である。
皮肉なことに、平和公園を見学している今もロシアとウクライナは戦争中であり、イスラエルとハマスの紛争の話が聞こえてきます。戦争がどんな名分を持っていようとも、誰が始めようとも、どのように終わらせようとも、戦争で犠牲になる民間人は保護されるべきだろう。大のための小の犠牲などという無茶苦茶な決定が下されることがあるが、「大」もその裏側を見ると個人で構成されてい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戦争だけでなく、会社でもそうだ。最近、私が勤めていた会社は構造調整を行いましたが、会社としては当然のことながら合理的な決定ですが、合理的な決定によって職を失った個人は結局犠牲になったと言えます(決定に貢献した立場としての極めて個人的な意見です)。
平和公園周辺と広島城を軽く見て、いよいよ!夕食を食べに移動した。夕食は広島名物(?)のお好み焼きと鉄板料理でした。以前はよく知らなかったのですが、大阪式と広島式のお好み焼きは違うそうです。大阪式は中身を全部混ぜて焼くのに対し、広島式は小麦粉、野菜、中身、卵などを一段ずつ重ねて焼きます。そして広島式には蕎麦の麺も入っている!!もちろんとても美味しかった。私は鉄板料理も好きだし、もともと焼きそばが好きなのですが、広島風お好み焼きは好きな具材が全部入った食べ物でした。普段は牡蠣が苦手なのですが、広島のもう一つの名物である牡蠣が入ったお好み焼きも一緒に食べました。そういえば、広島の海に浮かんでいた(?)正体不明のものは、牡蠣を育てる養殖場のようでした。短い知識で鉄板料理は大阪!と思っていたのですが、広島の洗練された鉄板料理に少し惹かれる感じです。
お好み焼きとビールを食べながら、友達と今までどう生きてきたのか、そして今何をしているのかについて話しました。アメリカに行ってからもう8~9年経ちましたが、広島に住んでいる友達は実はその間会う機会がありませんでした。よくインスタグラムでコメントを残したりする程度でした。留学時代は私が年上の方で、日本の友達はほとんどが20歳になったばかりの若い友達だったのですが、今回会った時は大人になっていました。よくある話ですが、今回会った友達は二人とも結婚して子供もいました。ふと、私は多くのことを後回しにして旅行に来たんだなと改めて思いました。 でも、話の合間に留学時代の話をしたり、知り合いの顔が見られて嬉しかったりもしました。夕食の間中、昔の話と昔と変わった(20kg増量した)自分の姿を話しながら時間を過ごしました。 かなり長い時間が経ちましたが、先に連絡してご飯を買ってくれた友達に本当に感謝しました。私も韓国に外国人の友達が来た時に支援を惜しまなかったが、支援を受けるのはまた違った感慨深いものがあるようだ。
広島での日程はこれで終了することにした。明日は尾道というところに移動するのですが、ここで何ができるのか、ちょっと調べてみようと思います。
/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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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1] Day-8 쿠라시키/倉敷
오노미치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히로시마현을 떠나는 날이다. 나흘간 묵었던 B&B潮風를 떠나려니 기분이 묘했다. 야마구치씨와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 이제 구글 지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동네가 눈에 익기시작했는데 떠나야한다니 허무하기도 했다. 야마구치씨에게도 좋은 기억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공용 거실에 있는 방명록도 작성하고 예비로 가져왔던 자동차 번호판도 선물(?)로 남겨두었다. 진심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B&B潮風를 방문하고 싶다. 여유만 된다면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싶을 정도다. 오노미치의 마지막 일정은 우연히 어제 숙소에 도착한 오츠카씨 부부 중 아내분과 함께 하게되었다. 남편 오츠카씨는 오늘 무카이시마와 근처 섬들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내 오츠카씨는 오노미치 근처를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는데 내가 오노미치시립미술관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보였다. 원래부터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했던 아내 오츠카씨는 길치였기 때문에(지도를 읽지 못한다고 한다.) 혹시 자동차를 얻어탈 수 있는지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아내 오츠카씨는 69살이다!) 오노미치시립미술관은 센코지 공원(센코지절과 그 주변의 공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노미치시립미술관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이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대해서 잘 알고있진 못하지만(성산일출봉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건물과 콘크리트를 좋아한다 정도?) 괜히 시립미술과의 외관을 조금 눈여겨 보게 되었다. 역시 콘크리트와 유리된 외벽이 눈에 띄었다. 시립미술관의 전시는 Landskap(나중에 찾아보니 말레이어로 풍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오노미치의 폐가를 주제로 한 전시였다. 일본 목조 주택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우리 시골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집에 사는 사람과 사람의 친구 고양이(?)의 유골도 전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없어 전시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간간히 오츠카씨의 쉬운 일본어 설명을 들으며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끝까지 관람했다. 오노미치는 고양이 마을로 유명하다고 해서인지 전시 끝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물건도 잔뜩 볼 수 있었다. (나는 오노미치에서 고양이를 본 적이 없지만...) 미술관을 나와서 오츠카 씨와 헤어지기 전에 센코지 공원의 전망대에 올라 오노미치 시내를 구경했다. 오노미치 중심지와 내가 지난 나흘을 보낸 무카이시마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노미치시는 일본에서 "레트로"한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하는데 전망대를 통해 본 오노미치시는 한 눈에 봐도 옛날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노미치시를 색깔로 표현하라고 하면 오래된 나무의 고동색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그만큼 오래된 목조 건물이 많았다.) 경적을 울리며 오노미치시를 지나가는 화물열차를 보면서 100년 전의 오노미치시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츠카씨와는 전망대 구경까지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원래 오츠카시는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지도를 읽지 못해 길을 잃을까봐 좀 무서워하셔서 공원 아래의 오노미치 상점가까지는 차로 바래다 드렸다. 한국차를 타고 왔다갔다한 경험이 꽤 재밌었던 모양인지 떠나는 나를 배웅(?)하면서 연신 카메라에 셔터를 누르셨다.(사진은 나중에 오츠카씨에게 메일로 받았다) 오츠카씨와 헤어지고는 오늘 목적지인 쿠라시키로 향했다. 쿠라시키로 가는 길에 잠시 정비(사실 밀린 기록을 정리)하고자 후쿠야마에 있는 스타벅스(주차장이 있고, 인터넷이 있고, 콘센트가 있는 최고의 장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구글 지도에서 한적해보이는 스타벅스를 선택했는데 재밌게도 스타벅스 안에 키보드와 기타가 있었고 키보드와 기타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익숙하게 드립커피와 먹을 것을 시키고 잠시 앉아있었더니 연주가 시작됐다. 한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관경이라서 재밌게 보았다. 중간 중간 연주에 실수가 있는 것을 보면 100% 프로는 아닌 모양이었지만 스타벅스의 색깔과 잘 어울리는 연주라고 생각했다.(아는 곡들도 몇곡 연주했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연주 중간에 멤버 중에 한 명인듯한 사람이 설문조사를 위한 종이를 나누어주었다. 내용은 크리스마스에 듣고 싶은 곡을 적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멤버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시 한 번 스타벅스에서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연주가 모두 끝나자 설문지를 나눠준 멤버가 다시 설문지를 걷어갔다. 나는 타이타닉 OST라고 적은 종이를 냈다. 쿠라시키로 이동하면서는 점점 논들이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의 지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쿠라시키(倉敷)의 쿠라(倉)가 곳간이라는 뜻이니까 일본의 곡창 지대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쿠라시키에는 4시쯤 되어 도착했는데 이른 노을과 논에서 자라는 벼가 겹쳐 쿠라시키는 노오란 느낌이었다. 쿠라시키에서는 비칸(美観)지구라는 곳을 구경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근처에 차를 세우고 비칸(美観)지구로 향했다. 비칸지구에 대해서 많이 찾아보지 않아서(기대가 적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칸지구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대극에 나올 법한 일본의 옛날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비칸지구를 흐르는 강과 버드나무, 일본의 과거 건물들이 서로 잘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교토의 기온을 많이 방문해봤지만 기온이 주는 분위기와는 또 달랐다. 교토가 (내 느낌상) 시대 정치극의 배경 같은 느낌이라면 비칸지구는 시대 로맨스물의 배경 같은 느낌이었다. 비칸지구 안에는 오하라 미술관이라는 그리스 스타일의 미술관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곳은 시간이 부족해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줄지어있는 목조 건물들을 지나 만난 그리스식 석조 미술관의 모습이 신기하게도 그렇게 이질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을 따라(?) 아이비스퀘어라는 곳에 들어가봤다. 이름처럼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벽과 건물을 휘감고 있는 덩굴줄기들이 잔뜩 보였다. 입구에서 덩굴 정원(?)을 지나자 빨간건물이 보였는데 짧은 일본어로 건물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니 과거 방적소였던 모양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중정(中庭)이 있었는데 중정에서 옥토버페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커다랗게 들리는 음악소리와 춤추는 호객꾼들(?)의 모습들이 눈에 보였다. 너무너무너무 참여하고 싶었지만 차를 가지고 돌아가야하는터라 맥주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칸지구를 한바퀴 더 산책하고 쿠라시키역 상점가에서 카레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에 있었다. 주차가 되는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 아무래도 대부분 숙소가 시골에 있었다. 오늘 숙소는 흰백발에 멋드러지게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와 유쾌해보이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흥미롭게도 김치를 드시고 계셨다. 할머니가 유쾌한 것에 비해 할아버지는 좀 낯을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적고 보니 오늘도 꽤 긴 하루를 보냈다.(이제 2주째인데 더 열심히 다녀야할 것 같긴하다.)
[23.10.19~20] Day-6, 7 오노미치/尾道
*여행기를 미루지 않고 작성하는게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23.10.19] 내가 묵고 있는 B&B 潮風는 아침을 준다!!! 숙소의 주인 야마구치(山口)씨가 일본식(밥)이나 서양식(빵) 중에 원하는 타입의 아침을 만들어주시는데 나는 도착한 날 밥을 선택해서 정말 오랜만에(한국에 있을 때 포함) 아침으로 밥을 먹었다. 진정한 의미의 일본 가정식 덕분에 산뜻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야마구치씨가 짚 앞에 빵집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셔서 함께 빵집에가 치킨 샌드위치와 단팥빵, 가게에서 직접 만든 진저에일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금요일까지 이틀간은 일하는 날로 정했기 때문에 오전은 빵과 진저에일과 함께 숙소의 거실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의 바로 옆에 중학교가 있어서 수업소리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냈다. 음악실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나 운동장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일본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해야할 일을 정리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비소식이 있어서 내일은 밖을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후 시간은 저 멀리 다리를 건너 시코쿠 이마바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일하기로 했다. 오늘 다리를 건너면 혼슈(일본의 본섬)과 시코쿠(혼슈 아래의 섬)을 연결하는 다리 3개를 모두 건너볼 수 있기 때문에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루트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오노미치에서의 사흘은 여행에만 시간을 쓸수는 없어서 포기하고 자동차로 눈팅정도 하기로 했다. 시코쿠까지 고속도로를 따라 4개의 섬을 더 건너야 반대편의 이마바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노미치와 시코쿠를 연결하는 섬에는 조선소가 굉장히 많았다. 다리를 건너면서 크고 작은 선박을 만들고 있는 조선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널 때 마다 양쪽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유만 있었다면 나도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체력이 받쳐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다를 건너 이마바리시에 도착했는데... 예상 외로 출혈이 컸다... 구글 맵으로 톨비를 확인했을 때는 2,500엔 정도 였는데 실제로 내가 내야하는 톨비는 4,600엔 정도가 됐다.(왕복으로 따지면 9만원이 넘는다... 🥲) 시모노세키에서 히로시마로 넘어올 때 3,800엔 정도 톨비가 아까워서 국도로 왔는데(좋은 경험이었지만...) 두배가 넘는 돈을 왕복 2시간이 안되는 거리에 써버린게 속이 쓰렸다. 그래도 멋진 경치를 구경했으니까!! 라고 생각하고 잊기로 했다. 잊기로 했다. 잊기로 했다... 오후에는 바다 건너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다 숙소로 돌아와 다시 남은 일들을 정리했다. 거실에서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새로운 손님은 후쿠다(福田) 씨라는 74세 할아버지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탄탄한 체격과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숙소 주인 야마구치씨가 내가 한국에서 와서 일본 여행 중이라고 이야기하자 후쿠다씨가 한국에 갔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었다. 후쿠다씨가 갔던 한국은 올림픽 전의 80년대 한국이었다. 후쿠다씨가 기억하고 있는 한국, 한국인 그리고 달라진 한국, 한국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생활양식이나 남북관계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후쿠다씨와는 목욕 후에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기로 했다. 이자카야에서 사시미와 함께 일본주를 마시며 후쿠다씨와 남은 이야기를 잔뜩 나누었다. 조금은 취한 후쿠다씨가 처음 봤을 때부터 얼굴이 밝아 나를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해줬다. 내가 그럼 이제 형님(アニキ: 아니키)이라고 부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자 자기는 형님이라고 불리는 건 오버니까 삼촌?(オジキ: 오지상+아니키)라고 부르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70살이 넘는 할아버지와 이렇게 술마시며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일본의 노인(70대가 노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70살은 잘 모르겠지만 10년 후 나의 아버지가 70살이 되었을 때는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23.10.20] 오늘 아침은 후쿠다 오지키가 빵으로 정했기 때문에 빵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토스트와 쨈 그리고 베이컨과 오믈렛이 함께 나왔다. 어제먹은 일본식 아침과는 또 다른 정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계란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믈렛이 나와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고 후쿠다 오지키가 자신의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도쿄(본가)나 시즈오카(개인 집?)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일기예보 한 것처럼 아침부터 바람이 꽤 불고 조금씩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숙소에만 있을 생각으로 이른 아침부터 거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쭉 숙소에 있었더니 오늘은 야마구치씨가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해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은 차를 타고 섬을 벗어나 오노미치 시가지에 있는 중화요리를 먹기로 했다. 오노미치시는 에도시대(17, 19세기)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오래된 도시의 느낌이 물씬 났다. 오래된 목조 건물과 꼬불꼬불한 골목들이 오래된 도시스러웠다. 이치라꾸(一楽)라는 중화요리점에서 야마구치씨는 중화소바(라멘), 나는 탄탄멘 세트(탄탄멘 + 치마키)를 먹었다. 치마키는 대나무 잎으로 싼 주먹밥이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맛있었다.) 라멘을 먹고 잠시 케이크집에 들러 커피와 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우리 엄마랑도 이렇게 둘이 돌아다닌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뜬금없이 야마구치씨한테 효도하는 것 같아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야마구치씨도 아들 얘기를 하면서 아들이랑은 이런 곳 잘 못온다고 하는 걸보면 아들이 어려운 것(?)도 전세계 공통인가보다.
[23.10.18] Day-5 오노미치/尾道
아침에 일어나 료칸에서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고 오노미치로 떠나기로 했다. 이곳 주인과는 처음 체크인할 때부터 거의 이야기한적도 없고 뭔가 응대해주지 않아(?)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체크아웃할까하다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스미마셍~"하고 체크아웃을 알렸다. 체크인한 이후로는 처음보는 주인이 짧게(아니,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체크아웃을 했다. 이 료칸 주인 히사야씨는 상당히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지금은 40살인 히사야씨는 24살에 일본을 떠나 3년간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와 료칸을 시작했다고 한다. 코로나 전까지는 료칸과 이베이를 함께 운영하며 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료칸도 이베이도 수입이 뚝 끊겨 지금은 인생의 다음 먹거리를 찾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히사야씨가 찾은 다음 먹거리는 부동산과 전기설비였다. 부동산은 료칸과의 합도 좋고 혼자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다고하고, 전기설비는 점점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인프라들이 전환되고 있지만 점검이라던지 설비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시작한 히사야씨는 촘촘히 계획된 2027년까지의 계획표를 보여줬는데, 2027년까지 부동산과 전기설비 회사를 만들기 위해 따야하는 자격증과 학습 계획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내가 료칸에 묵는 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오는 일요일 2023년에 계획한 마지막 시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자신은 도쿄보다 히로시마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든지 다른 료칸을 400만엔에 사서 3,000만엔에 판다든지하는 히사야씨의 근황을 듣고 료칸을 빠져나왔다.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천에 옮겨가는 모습이 꽤 멋져보였다. 오늘 계획은 진짜 별 것 없다. 일본에 도착한 이후로 가장 단순한 날이다!! 오전에는 오노미치로 이동하고(2시간 정도?) 오후에는 오노미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려고한다. 그 후에 6시에 맞춰 숙소에 체크인하면 오늘 일정은 끝이다. 여행 중이지만 할 것들이 잔뜩 있어서 일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볼까도 했는데 역시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에는 스타벅스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히로시마에서 오노미치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달렸던 곳보다는 새롭지 않은 길이었다. 일본의 자동차 도로에 꽤 익숙해지기도 했고 내륙에 있는 바이패스(자동차 전용도로 비슷한...)로 이동해서 멋진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오노미치에 다다르자 다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혼슈의 남쪽 해안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탓에 바다를 거의 매일 한 번씩은 보고있긴하지만 산길을 지나 만나는 바다는 항상 반갑다. 스타벅스는 드라이브 쓰루였는데 넓직한 주차장이 함께 있어 여유-롭게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부터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보다 드립커피(한국에서 아이스커피 또는 오늘의 커피)를 선호해서 드립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직원이 영수증을 보여 무언가 설명하기에 들어보니 드립커피를 주문하면 다음 드립커피는 조금 더 싼 가격에 주문할 수 있다고 했다!!(개꿀!!) 드립커피가 아니라 카페미스트를 교차해서 추가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전세계 어딜가도 스타벅스"인 맛에 가기 때문에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할 일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한국말이 들려 주변을 둘러보니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니폼에 쓰여져있는 회사이름을 찾아보니 한국의 조선회사에서 오노미치에 출장온 직원들인 것 같았다. 3시가 지나갈 무렵부터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예측)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관찰해보면 서로 화장을 해주고 있는 여고생들도 있었고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도쿄나 오사카, 교토에서 스타벅스를 꽤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는 처음이었다.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음 숙소의 주인에게 6시에 도착할 것이라고 이야기해놨기 때문에 5시 30분쯤 스타벅스를 나섰다. 다음 숙소는 오노미치 시에서도 무카이시마라는 섬 안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다리를 건너 이동해야했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 바다 근처로 가자 조선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문열린 공장 안에서는 만들고 있는 배의 모습도 보였고 커다란 배를 만들기 위한 크레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노미치시는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인데 이 섬들을 모두 건너면 시코쿠로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시코쿠는 다음주에 갈 거다!) 퇴근시간인 모양인지 조금 막히긴 했지만 너무 늦지 않게 숙소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나올법한 2층짜리 가정집이었다. 1층 공용거실에서 주인 할머니 야마구치씨가 도착하자마자 녹차와 쿠키를 내주었다. 녹차를 마시며 또 조잘조잘 이번 여행 이야기를 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살쪘다는 이야기를 제일 좋아하셨다. 이제 살쪄서 무릎도 아프고 달리는 것도 어려워요라는 말에 유난히 빵 터지셨다. 지금까지 이 숙소를 거쳐간 특이한 사람들 이야기도 해주시고 주변에 볼거리나 저녁 먹기 좋은 식당도 소개해주셨다. 저녁은 야마구치씨가 소개해준 라멘을 먹기로 했다. 소개해준 라멘집은 굳은 철문으로 닫혀있어 들어가도 되나 싶었지만 용기를 내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불을 끄고 티비를 보고 계셔서 영업 중이냐고 물어보니 영업 중이라고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라멘집은 정말 오래된 가게였다. 촌스러운 벨벳 쇼파에 테이블이 늘어서 있고 바테이블이 있었는데 라멘집이라고 써있지 않았다면 가라오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뭔가 이 분위기에서는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라멘과 교자, 생맥주를 함께 시켰다. 라멘은 맑은 국물에 차슈가 하나 올라가 있는 기본 라멘이었고 교자는 직접 만든 수제 교자였다. 이곳의 분위기와 너무 잘어울리는 음식이었고 수제 교자가 특히 맛있었다. 라멘집의 주인 아저씨와도 한국에서 왔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곧 들어온 4인 가족 손님과도 일본여행이라던지 한국, 서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일본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초보 수준의 일본어긴 하지만 원하는 말을 듣고 또 할 수 있어서 여행과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더 풍부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와 라멘집 할아버지에게 근처에 여러곳을 추천받았는데 내일은 세토대교를 건널지 자전거를 타볼지 고민이 된다. 🫠🫠🫠 Translated by DeepL 朝起きて旅館でざっと荷物をまとめて尾道へ向かうことにした。ここの主人とは最初のチェックイン時からほとんど話したこともなく、何か対応してくれないので(?)、話さずにすぐにチェックアウトしようかと思ったのですが、礼儀に反するような気がして「すみませ〜ん」とチェックアウトを告げました。チェックインして以来、初対面のオーナーと短い(いや、かなり長い)会話をしてチェックアウトをした。 この旅館の主人、久弥さんはなかなか面白い人だった。現在40歳のヒサヤさんは、24歳で日本を離れ、3年間世界一周をして帰ってきて旅館を始めたそうです。COVID-19までは旅館とイーベイを一緒に経営し、かなり稼いでいたそうですが、COVID-19以降、旅館もイーベイも収入が途絶え、今は人生の次の食べ物を見つけるために勉強しているそうです。ヒサヤさんが次に見つけたのは、不動産と電気設備でした。不動産は旅館との相性も良く、一人で始められる仕事だと思い始めたそうで、電気設備はどんどん化石燃料から電気へインフラが移行していますが、点検や設備に携わる人の数は減っているのでチャンスがあると考えているそうです。話を始めた久弥さんは、2027年までの綿密に計画された2027年までの計画表を見せたが、2027年までに不動産と電気設備会社を作るために取得しなければならない資格や学習計画がびっしりと書かれていた。私が旅館に泊まっている間、顔を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も、来る日曜日に2023年に予定している最後の試験があるからだった。 その他、自分は東京より広島の方が似合うとか、他の旅館を400万円で買って3,000万円で売ったとか、ヒサヤさんの近況を聞いて旅館を後にした。確信を持って未来を具体的に計画し、実践に移していく姿がとても素敵に見え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