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 💯
나는 원래 숙론 토론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이기려 하기 보다 '왜 그렇지'에서 시작돼 서로를 이해해보려 끊임없는 질문과 설득을 펼쳐왔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부터 가까운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게 그렇게 좋지 않은 성격이라는 걸 깨닫고 입을 닫게 됐다. 물론 가까운 사이에서의 숙론은 매번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겪었을 침묵의 어색함을 알지 않는가?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지만 할 수 있는 말이 더 없는 그런 상황. 또는 할 수 있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또는 놓아둔) 우리 스스로의 기분이나 감정을 생각해보면, 결국 포기다. 말을 해봤자 되지 않을 것이라는 포기의 감정이 나를 뒤덮고 있는 거다. 포기가 용서 내지는 이해라고 착각하는 순간 말들은 멈추고 오해와 감정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숙론은 토론과 포기의 중간 단계같다. 이 대화만을 위한 시간을 쭉 빼서, 아젠다 외에는 사전 정보 없이 본인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숙고하여 의논하는 과정. 포기할 뻔 했을 때 숙고하며 돌이켜보고, 치열하게 토론하다가 다시 숨을 고르고. 비언어를 포함한 진짜 대화만을 위한 완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결과가 별게 아닌 게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숙고하고 논의한 결과, 우리는 평행선이 아니고 조금 대각선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분명히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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