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Sign In
💉

박연차의 히로뽕과 채동욱 검사1

240207 알쓸꼬꼬무 1
‘92년 서울지검 특수부 채동욱 검사는 태광실업 대표 박연차, 장자그룹 2세 이정식, 영동백화점 대표 김택, 노량진청과수산 부사장 겸 모델 노충량, 여성배우 전세연 등을 히로뽕 투약 혐의로 잇따라 구속했다.
박연차와 이정식은 둘 다 도망가서 수배됐다가 나중에 붙잡혔다.
심지어 박연차는 수배가 내려져 도주중이던 해운대 한국콘도(현재 엘시티 자리에 있었다)에서 부산 태양관광호텔(현 부산진역앞 프라임 호텔) 대표 조일수와 같이 약을 빨고 '네 마누라를 강간했니 안했니' 하면서 술병을 깨고 둘이 싸우는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붙잡혔다.
(당시 언론기사)
[사진] 여배우들과 「백색환각파티」를 벌인 혐의로 수배중인 朴淵次씨가 20일 밤 해운대구 한국콘도에서 난동을 부린 후 환각상태에서 웃옷을 벗은 채 잠을 자다 경찰에 검거됐다.
도피중에도 호텔서 「환각행각」 1주일 이상이나 해운대 활개 : 1990-02-21
20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박연차(44) 조일수씨(45)와 20세기 폭력조직대부 김영준씨(60) 술집마담호스티스 등 코카인 상습복용자 일당 7명 중 5명이 검거됨으로써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호텔술집을 무대로한 부산 재력가들의 「백색환각 섹스파티」가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조씨 등은 코카인 중독자로선 부산에서는 처음 검거됐다. (중략)
국졸의 학력으로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건실한 기업체를 키워낸 朴씨가 히로뽕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도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朴씨는 출장명목으로 자주 외국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거기서 히로뽕 환각파티를 벌이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朴씨는 美교포사회에서 심한 지탄을 받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朴씨는 히로뽕을 흡입할 경우 주로 코킹수법(빨대를 이용해 코로 흡입)을 사용해왔는데 여자들과 함께 있을 경우에는 빳빳한 미화 100달러짜리 지폐를 둘둘 말아서 빨대로 사용하는 등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를 즐겨왔다고 한다. 朴씨는 중독증세가 심해지면서 점잖은 공식석상에서마저 여자손님들을 마치 술집 접대부처럼 대하는 등 추태를 벌여 타락한 호색가의 면면을 곧잘 드러냈다는 것. 이밖에 이날 사건으로 朴씨가 수배 중임에도 불구, 고급호텔 등에 묵으면서 해운대 일대를 1주일이상이나 버젓이 돌아다닌 사실이 드러나 경찰수사망의 허점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朴씨는 수배직후 3일간 양산 모사찰에 묵었다가 지난주초부터 해운대하얏트호텔과 한국콘도호텔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등 활보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기간은 연쇄방화사건과 샛별룸살롱 살인범 조경수의 부산잠입설로 경찰이 온통 비상방범근무활동을 펴고 있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 호텔과 콘도에는 한번도 임검을 하지않았다. 朴씨는 이날 조씨를 해운대하얏트 호텔사우나장에서 만난 후 曺씨의 승용차를 이용, 해운대 일대를 놀러 다녔으나 한번도 검문을 당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날 朴씨와 曺씨가 자기들끼리 난동을 부려 호텔직원이 신고를 할 때까지 1주일이상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인을 코앞에 두고도 못 잡고 있었던 것이다...
(권양숙이 이런 인간에게 수십억을 빌리고도 무사하리라고 기대했다면 그건 이루어지기 힘든 꿈)
당시 수사기관들은 이렇게 피의자들을 굴비처럼 엮어 온 뒤 카메라 기자들을 불러 지금으로썬 상상할 수 없는 '대국민 개망신주기'를 하곤 했다. 모자이크고 나발이고 본인이 손으로 안 가리면 얼굴은 물론이고, 구속영장 등 서류에 적시된 주소, 생년월일 등이 그대로 전국 뉴스로 나갔다.
태광실업은 ‘기차표’ 고무신으로 출발(동양고무)한 ‘화승’으로부터 일감을 받아 나이키 등 신발 OEM을 해서 급성장한 회사다. 이름만 같을뿐 이호진의 '태광그룹'과는 무관하다.
태광실업은 지금은 'TKG 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부산, 김해 등에 있던 공장을 '94년 베트남 등으로 이전해 연간 수천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한다.
베트남에 화력발전소 등을 짓는 등 엄청난 투자와 일자리 창출 + @ 로 박연차는 베트남에서 '국빈 대접'을 받았다. 베트남 '명예 총영사'이기도 했다.
같이 뽕을 한 이정식의 '장자 그룹'은 ‘일자표’로 유명한 연탄 만드는 회사였다.
빨간색 주방고무 장갑을 만든 말표 태화고무를 비롯 프로스펙스의 '왕자표' 국제고무, 범표 삼화고무, '화승 르까프'가 된 기차표 동양고무, 진양고무 등 고무, 신발 관련 기업들 대부분이 부산에서 출발한 기업들이다. 그래서 지금 지자체들이 고추 아가씨니 하는 '특산품 아가씨'를 선발하듯 과거엔 부산의 특산품인 "신발 아가씨"가 있었다.
90년 당시 서울사람들은 '영동 백화점 오너 김택'은 알았지만, 부산의 일자표 연탄 이정수나 태광실업 박연차는 잘 몰랐다.
'영동'은 영등포 동쪽지역을 말한다. 당시는 '강의 남쪽'엔 '영등포'에만 시가지가 있었고, 나머지는 여름이면 물에 잠기는 언덕 위아래 논밭들이 있던 지금의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따위는 죄다 그냥 하나의 '영동(永東)' 일뿐이었다.
홍수나면 물에 잠기고 울퉁불퉁해서 사람 살 곳이 못되던 땅의 미래를 알아본게 바로 영동백화점 김택 대표의 부친 '해청산업' 김형목 회장이었다.
개발 전 허허벌판이던 강남의 모습.
강남구청역 일대 청담동, 삼성동 땅 수만평이 해청 김형목 회장의 소유였다.
오른쪽은 과거 영동백화점이 있었던 논현동 119번지 '더피나클 타워'
김형목은 6-70년대에 "서울 강남 땅 절반을 가지고 있다" , "김형목 땅을 밟지 않곤 서울을 못 들어간다"고 불리었던 인물로, 강남개발이 본격화 되기전 일찌감치 같은 이북 출신 사업들과 함께 '장한평농지조합' 등을 만들어 땅을 사들였다. 당시엔 지금 평당 4-5억을 호가하는 삼성동, 논현동 상업용지들도 천원~2천원 했다.
지금 강남구청 자리도 김형목이 국가에 헌납한 땅이다.
영동백화점은 강남구청역 1번출구에 있었다.
경영난으로 나산그룹에 넘어가 나산백화점이 됐으나 나산마저 부도가 나자 신세계백화점이 '영동점'으로 빌려 운영을 했고, 건물균열이 발견되어 사용정지되는 등으로 10여년간 흉물로 방치 돼 있었다.
나산 이후 주인이 리먼브러더스 등으로 바뀌었다가 리먼마저 08년 금융위기로 파산하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주인들이 부도를 겪게되는 '흠좀무'한 땅이다. 지금은 KB국민은행 소유의 오피스 건물(더피나클타워)이 됐다.
'영동고등학교'도 김형목이 설립한 학교다. 엄청난 가치의 부동산과 자본으로 출발했지만 김택은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 했다. 김택은 약만한게 아니라, 내기골프 등 도박도 즐겨했다고 한다.
과거 한때 반짝 인기를 끌었던 '크라제버거'가 김택 소유였다.

석회석과 연탄으로 부를 일군 장자그룹 역시 마찬가지. 가뜩이나 사양산업인데 2세 이정식까지 저 모양인지라, 연극배우 출신이었던 부인 나혜령(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장)까지 나서서 살려보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망했다. 나혜령 여경총 회장도 결국 뇌종양으로 사망.
하지만 태광실업은 달랐다. 이후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 현지 화력발전소 사업 진출, 노무현 정부때 ‘농협’이 주인인 남해화학의 알짜 자회사 ‘휴켐스’ 등을 인수하는 등 다각화에도 성공하고 나름 계속 잘 나갔다. '박연차 게이트'가 없었으면 엄청나게 더 성장했을지 모른다.
태광실업은 '태광그룹' (이호진)과는 사명만 같지 전혀 무관하다. 태광실업은 나이키, 필라, 르까프 등 신발 OEM 제조해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우리나라에 과거 고무신의 양대산맥이 '왕자표', '기차표'가 있었는데
왕자표 고무신은 결국 재계 7위까지 올라간 국제그룹이 되었지만 전두환에게 찍혀 한방에 몰랐했다. 지금 포스코 차기 회장 유력 후보인 권영수 전 LG부회장이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사위다.
기차표는 르까프 등을 만든 ‘화승’이 된다. 당시엔 OEM을 줬던 화승보다 하청업체 태광실업이 이제는 훨씬 더 큰 기업이 됐다. 화승은 IMF 파고를 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K-SWISS, 르까프, 월드컵, 허쉬퍼피, 머렐 등이 화승의 브랜드들.
호남출신이면서 부산에서 사업을 해 나름의 '한'이 있었던 강금원이 '지역주의 타파'라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던 '바보 노무현'의 정치철학에 동감해 후원을 했다면, 박연차의 정치후원은 '아묻따' 식이었다.
넘치는 돈을 주체할 수 없었던 박연차는 넘치는 돈으로 여자연예인들과 뽕만 한게 아니었다. 정치인들 후원은 물론이고 부산에 발령 난 검사, 경찰들에게 ‘아묻따’ 식으로 술 사주고, 용돈을 주기도 했다. *아묻따 =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부산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로 친했던 박연차와 동방주택(지금은 엘씨티 회장으로 불리는) 회장 이영복과 부산에 발령받아 왔던 채동욱 검사 등의 악몽은 이미 그 일이 있기 십 수년전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르다.
농협 소유 남해화학의 알짜 자회사 휴켐스 매각,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현대차 양재 본사 매각 등 농협과 중앙회장 정대근 관련된 비리 의혹에는 노건평, 박연차 등 노무현의 주변 인물들이 있었다. 노건평이 매각에 개입해 구속됐던 세종증권에 지분을 넣어놨던 박연차는 1백억원 이상을 벌었다.
현재 기아 로고가 달린 서관 건물이 농협이 IMF전에 본사로 쓰려고 지은 건물이다.
'왕자의 난'으로 급히 분리를 해서 나와야 해 사옥이 급했던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가 이를 매수해 옆에 같은 모양의 동관을 지은 것
노무현의 표현 그대로 “모진놈 옆에 있다 날벼락을 맞았던 기업인”으로 박연차 외에도 창신섬유 회장 강금원 등이 있었지만 박연차는 그 화려한 삶이 강금원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었다.
창신섬유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번쯤 다 덮고 잤던 적이있는 이 ‘군용담요’를 만들어 성공한 기업이다.
박연차는 검찰이 아들 신병카드를 꺼내자 모두 불어버린 반면, 강금원은 송인배, 안희정 등 측근들까지 시그너스CC 고문 등 월급을 주며 의리를 지켰다. 박연차의 진술로 난데없이 반기문도 날벼락을 맞았다.
박연차와 이정식은 둘 다 도망가서 수배됐다가 잡혔다. 심지어 박연차는 수배 와중에도 부산 해운대 한국콘도(현 한화리조트 해운대 티볼리)에서 뽕, 코카인 등을 한 뒤 술병을 깨고 사람을 찌르는 등 난동을 부리다가 잡혔다.

이때 박연차 구속지휘를 했던 검사가 당시 동부지청 민유태 검사다.

이후 검사장이 된 민유태는 '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서 박연차에게 해외출장비 만달러를 받은게 드러나 옷을 벗었다.
박연차와 이정식, 김택 등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회당 당시 5백~1천만원의 지금으로 치면 5천~1억에 가까운 화대를 주고 함께 뽕을 맞고 그걸 했다. 강남 뉴월드호텔, 부산 조선비치 호텔 등.
뉴월드 → 라마다 서울 → 라미드 서울
부산 조선비치 → 웨스틴조선(신세계)
‘삼성동 라마다 서울’ 호텔이 과거 ‘뉴월드 호텔’ 이었다. '19년 몇년전에도 주변 유흥업소 성매매 장소로 한 층을 통째 제공했다가 영업정지를 먹는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재작년 문을 닫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