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Sign In
🍸

엘시티 이영복과 검사 채동욱 1

부산에서 박연차와 함께 이름난 사업가로 함께 친했던 지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영복 전 청안건설/동방주택 회장, 지금은 그냥 해운대 '엘시티' 회장으로 불린다.
이영복은 1950년 지금의 청주시 청원구에서 태어나 6.25때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부산에서 자랐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다방 보조,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악착같이 모은 돈에 뛰어난 언변과 사회성으로 물장사를 시작했다. 국제호텔 등 부산의 유명 나이트클럽들을 인수해 부산에서 '나이트 재벌'이 됐다.
칠성파와 신20세기파간의 싸움을 다룬 <친구>에서 장동건의 "니가가라 하와이" 대사가 나온 배경이 바로 부산 국제호텔 나이트다.
이영복은 여기 만족하지 못하고 부동산 시행업계에 투신한다.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이화여대를 졸업한 3살 연상의 부인의 머리와 인맥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아파트 분양사업을 하며 작은 성공가도를 달리다, 일약 부산의 부동산 재벌로 도약하는 결정적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부산 '다대만덕지구 개발사업'.
1994년 바닷가 경관보호를 위해 개발이 묶여있던 부산 사하 다대동과 북구 만덕동 일대 임야가 돌연 택지로 용도 변경되는 마법이 일어나고 아파트 4천세대가 지어진다.
이영복은 헐값에 사들인 임야가 아파트 택지가 되는 매직으로 당시 약 1천억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특혜 비리 시비가 일지 않을 수 없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은 "국민신당 이인제가 이영복 돈 먹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예 안할 수는 없는 법.
여론이 심상치 않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이영복은 종적을 감추고 도주한다.
무려 2년동안 도피를 하지만 검찰은 이영복을 '못' 잡았다. 2년 뒤 1999년 여론도 가라앉고, 여러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자기 발로 검찰청에 들어온다. 검찰은 로비자금으로 뿌려진 것으로 의심되는 68억원의 용처를 끝내 밝히지 '못'했다. 곧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검찰이 아무런 성과를 못낸 것은 아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처럼 "이영복 입은 자물통 입"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검찰은 이를 사실로 확인하는 쾌거를 거두었던 것.
이로인해 출소 후 이놈저놈 '자물통'에게 "술 사달라, 돈 달라"는 놈들이 몰려 들었지만 이영복은 싫은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들어줬다고 한다. 이영복은 술을 체질적으로 잘 마시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 소유 오션타워내 주점에 많을땐 하룻밤에 룸을 4-5개씩 잡아놓고 '멀티태스킹 접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정도 접대는 사업 좀 하는 놈들은 누구나 하는거 아니냐. 뭐가 대단하냐고 폄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손대는 땅마다 아파트, 주상복합이 되는 매직이 되는지, 어떻게 2년동안 검찰의 검거망을 피해다니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는지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이영복의 필살기 일부가 밝혀진다. 후술.
부산 다대만덕지구를 개발할때 깎은 산의 토사는 당시 부산 녹산공단에 들어선 르노삼성자동차 공장 매립과 준설에 들어갔다고 한다.
부산의 삼성자동차 부지는 낙동강 하구 모래토사 위에 지어졌다.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 엄청난 콘크리트 파일을 박아 넣어야했기에 부지 조성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런 연유로 부지조성비용이 다른 후보지에 비해 3배이상 들어가는데도 '부산에 공장을 짓는 것을 조건'으로 삼성의 자동차 진출을 허가해 줌으로써 김영삼은 1) 불구대천 원쑤가 된 현대 정주영에 대한 복수, 2) 부산 민심 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다대만덕지구의 토사가 르노삼성 부지 성토에 쓰인 점, 해운대 엘시티 비리사건때 처음 구속된 것이 이건희 회장의 차명회사로 드러난 '삼우 건축사무소 대표'라는 점 등을 볼때 혹자는 이건희 회장과 이영복 회장이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무튼 다대만덕지구 택지개발로 수 천억원을 손에 쥔 이영복은 해운대 바닷가에 '오션타워' 라는 20층짜리 대형건물을 짓는다. 오션타워 20층 꼭대기에는 '오션 스카이 라운지'라는 맥주파는 주점과 '시실리'라는 유흥주점이 있었다.
'시실리'에서는 해운대 밤바다를 바라보며 양주를 빨며 노래도 부를 수 있었다. 시실리 주점의 지배인이자 마담은 '윤초희'란 가명으로 불리웠던 '임정순' 이었다.
임정순은 원래 부산 동래 온천장의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언니였다.
해운대가 본격 개발될 즈음 해운대로 넘어와 이영복 소유 해운대 오션타워 지하에는 대형 유흥주점('오션', '솜' 등으로 이름이 자주 바뀐다)이 있었는데 여기서 일하다가 '시실리'의 대마담이 된 것.
여기서 임정순은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장검사 채동욱을 만난다.
'시실리'에는 해운대를 관할하던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술값이 비쌌기에 평검사들은 시실리 옆에 있던 오션스카이 라운지에서 맥주를 먹다가 술이 좀 오르면, 시실리로 넘어가 "(이른바 애국자들이나) 지청장, 부장들이 킵 해놓은 양주 없냐"고 해서 까 마시고 놀곤 했다곤 한다.
임정순의 이영복의 내연녀(주점에서 일했다면 '지명단골' 정도로 칭하는게 맞다) 로 알려졌던 임정순은 지금은 일개 지방지청 부장에 불과하나 장차 대한민국 검찰총장이 될 채동욱이 서울로 복귀하자 '시실리' 지배인을 그만두고 서울로 따라 올라가, 서초동 교대역 인근에 유흥주점을 차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