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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총각과 최은희 납북사건3

24년 2월 2일 알쓸꼬꼬무
김부선은 '83~'04년까지 대마 3회+히로뽕 2회 등 '마약류 투약'으로 모두 5번 적발, 4번 구속됐다.
흔히 ‘마약류’로 통칭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1) ‘마약’은 양귀비를 기반으로 한 아편(이를 응용 발전시킨 헤로인, 모르핀 등)과 코카인 등을 이르는 명칭으로,
2) 대마(초와 이를 기반으로한 해쉬쉬 등) 와
3) 향정신성약물(히로뽕, 엑스터시 등)과 구별된다.
과거 규율법도 제각각이었으나 지금은 ‘마약류관리법’으로 통합관리 된다.
김부선의 본명은 김근희. 데뷔할때 염해리 란 예명을 썼다.
김부선은 탤런트를 꿈꾸며 무작정 상경해 같은 제주 출신 탤런트 오수미(본명 윤영희), 모델 윤영실 자매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키가 너무 커(174Cm) 남자배우 상대역이 없어 어려울 것”이라며 모델을 권유받는다.
앞서 언급했듯 오수미는 신성일과 염문을 일으켜 엄앵란을 힘들게 했고, 신상옥과는 혼외자 둘을 낳아 최은희와 이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김정일 공화국의 변태적 영화사랑 덕분에 졸지에 과부가 되어 유명 사진작가 김중만과 재혼했지만, 다시 죽은줄 알았던 남편이 되살아 오며 김중만과 이혼한다.
김중만은 신상옥-최은희 커플의 귀환 후 당시 안기부가 개입해 오수미와 강제이혼 시키고 미국으로 강제출국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중만은 '88년 당시 탑모델 이인혜와 3혼(첫번째 부인은 프랑스인). 그 역시 대마사범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엄청나게 고생을했는데, 이후 다시 귀국해 사진작가로 돈을 많이 벌었다.
신상옥과 오수미
김중만은 부친이 의사였는데 돌연 의료봉사를 하겠다며 아프리카에 가족들을 데리고 이주하는 바람에 아프리카에서 크다가 고등학교때 프랑스로 유학을 간 프랑스 국적이었다.
김중만과 오수미
프랑스여자와 아이를 낳고 한국에 돌아와서 같이 살던중인 ‘78년 신상옥 납북으로 과부가 된 오수미를 처음 만났는데,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 라고 했다.
프랑스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용서를 구하니 별 말없이 쿨하게 애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한다. 오수미는 당대 각 분야 최고의 남자들 마음을 죄다 빼앗아 버렸으니 가히 치명적 ‘경국지색’이다. ‘유부남 연쇄 Killer범’은 덤.
오수미는 제주도 ‘비바리’(‘처녀’의 제주방언)로 상경하자마자 그 치명적 외모로 일약 은막의 스타가 됐다.
당대 최고의 배우 신성일, 최고의 감독이자 영화재벌 신상옥과 염분을 낸 것도 모자라,
남편이 북한에 납치(심지어 탈출해 돌아오기까지), 동생 윤영실이 감쪽같이 실종, 본인은 히로뽕을 투약했다 구속,
정권에 의해 강제로 이혼, 본인도 하와이에서 브레이크 파열로 인한 절벽 추락사로 요절한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는 여기까지만 해도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지만, 자신이 스타의 길 + 뽕의 길로 이끌어준 덕에 순식간에 망가진 고향 후배가 나중에 ‘어딘가에 점이 있는 총각 변호사’와 사랑에 빠졌던 바람에 급기야 대선판도까지 흔들어 버리는 '대하 막장소설'을 쓰는데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게 최은희를 납치한 김정일 장군 덕분이다. ‘죽은 제갈량’ 빰 때리는 거대하고도 장구하게 이루어진 김정일의 큰 그림 ‘뽕風’이라 할만하다.
김부선은 '하용수' 패션쇼로 데뷔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훤칠한 키와 이국적 몸매로 단숨에 논노, 조다쉬, 아모레 화장품, 프로스펙스 등 당대 최고 브랜드들의 모델자리를 꿰찬다.
하용수는 탤런트 출신 디자이너로, 영화드라마 의상을 담당하다 나중에는 연예기획자가 되어 최민수, 이미숙, 오연수, 이정재, 주진모 등을 발굴해 데뷔시킨 인물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전두환 동생 전경환에게 빼앗겼다고 알려진 모델겸 패션사업가 '노충량' 등과 패션, 연예, 압구정 카페 사업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후술한다.
이정재-하용수-최민수
하용수는 한때 최고의 연예기획자, 의류재벌로 잘 나갔다. (MZ는 모르지만, X세대는 아는) 의류업체 ‘베이직’을 운영하다 ‘97년 부도를 맞고 빚더미에 안자 미국으로 도망가 한참 뒤 귀국해 은둔의 삶을 살다가 ‘19년 에서야 티비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암투병 근황이 전해졌는데 방송이 나간 다음날 사망했다. 향년 68세.
김부선은 82년 언니들에게 이끌려 신라호텔과 하얏트 호텔 나이트에서 고관대작 자제들과 만나 춤추고 놀다가 마약에 손을 대게 됐다고 했다. * 당시 신라호텔에는 ‘유니버스’, 하얏트에는 ‘카프리스’(현 JJ마호니스) 나이트 클럽이 있었다.
‘JJ마호니스’의 JJ는 이선희의 히트곡 ‘J에게’에서 따와 붙여진 이름이다.
JJ마호니스
홍석현 회장의 자택

한화 3남 김동선이 2010년 유리창 박살 + 여종업원 성추행 + 보안직원 폭행의 3단 콤보를 한 호텔 주점이 바로 ‘JJ마호니스’ 다. *클럽도 아니고, BAR도 아니고, 나이트도 아닌 기기묘묘한 컨셉으로 장수하며, 클럽계의 최고 연장자 되시겠다.
하이얏트 호텔 바로 앞에는 리움미술관, 삼성 아동교육문화센터 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자택 (대지 464평에 건물면적이 631평이나 된다. 파라다이스 전락원 회장 집 등을 사들여 3필지 위에 지어졌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살다가 ‘00년 이사왔다)이 있다.
지대가 높아 하이얏트 호텔 야외 수영장과 JJ마호니스에서 홍 회장 집 등이 보일 법 하지만, 그 사이에 빽빽하게 심어진 높은 나무들이 시야를 차단하고 있어 앞집을 볼 수 없다. 그런데, '19년 하얏트호텔을 인수한 놈들이 이 나무들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함부로 자르다가 홍 회장 측과 갈등을 빚었다.
하이얏트 호텔을 인수한 쌍방울 김성태, KH 배상윤이 인수 초기에 조폭난동이니 하면서 중앙일보에 대차게 까였던게 우연이 아닌 것.
하얏트호텔은 1974년 한일합작회사인 ‘서울미라마관광’ 유한회사가 세운 호텔로 19년 KH그룹이 인수했다 ‘쌍방울, KH 사태’ 등을 겪고 다시 토해내 현재 주인은 ‘JS코퍼레이션’이다.
JS코퍼레이션은 홍재성 회장이 자기 이름을 따 지은 핸드백 제조사로 출발했다. 버버리, 코치, 마이클코어스 등 가방과 GAP, 올드네이비 옷 등을 만 ODM/OEM으로 만드는 회사다.
홍재성 회장은 '버추얼텍', '바른손' 등에 투자해 큰 돈을 번 주식투자자이기도 하다.

‘버추얼텍’이 어떤 회사인지는 이 회사 오너였던 ‘김병진-김호선’ 형제에 대해 앞서 언급한 내용을 찾아보면 된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초록뱀 원영식-KH 배상윤-쌍방울 김성태’ 등도 이들과 무관한 인물들이 아니다. 남부지검 등 검찰비리를 다룬 ‘뉴스타파 죄수와 검사들’로 곤욕을 치른 변호사 박수종, 상상인저축은행 유준원, 원영식 등 수 많은 등장 인물들이 알고보면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 행남자기(스튜디오 썸머) 인수 후 파산 등등 셀 수 없는 기업들과 모두 연관이 있다. 앞서 언급한 제보자X 지현진 관련 내용 참조.
27배 주가상승
지금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장사의신’ 은현장이 ‘후라이드참잘하는집’을 초록뱀(원영식)에 매각한 대가로 초록뱀 계열사 ‘아이오케이’ 지분을 받는 바람에 다시 또 논란이 됐다. 원영식과 김성태는 최근에 겨우 보석으로 나와 조용히 살고 있는데, 장사의신 은현장이 덕분에 또 곤혹스럽게 생겼다.
아무튼 공교롭게 이 일대 땅 주인들이 모두 홍씨다. *라움 미술관 관장 역시 홍씨.
김부선은 원래 83년에도 약을 하다 걸린적이 있는데, “당시 박지만, 삼성가 손자, 보사부 장관의 아들 등 거물 오빠들과 함께 걸렸기 때문에 벌금만 내고 풀려났는데, 이후 청와대 초청행사를 안간 ‘괘씸죄’에 걸려 86년 검찰의 기획수사에 걸려 구속됐다”고 (주장)했다.
삼성가 ‘손자’란 말이 ‘親孫’이라고 하면 당시 중학생이던 이재용은 물론이고, 이창희 장남 이재관 마저 갓 20살이었기에 이병철 장남 이맹희 아들 내지 아니면 外孫들이라고 봐야 한다.
삼성가 손자 이재환 재산홀딩스 회장(전 CJ 부회장)은 지난 ‘21년 비서를 시켜 ‘대마오일(칸나비디올)’을 구매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이재환의 장인어른은 민기식 전 육군참모총장이다. 516때 군단장으로 적극 가담하진 않았지만 反장면- 親박정희 입장을 명확히 해 이후 대장(육참총장)으로 승진, 예편후에도 충주비료 사장, 공화당 의원 등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충주비료(=한국종합화학)는 이승만 말기에 세워진 국영 화학회사로,
롯데정밀화학(한국비료로 삼성이 헌납), 롯데케미칼(호남석유화학), 한화솔루션(한양화학), 남해화학, 무림제지(동해펄프), DL케미칼(대림그룹 호남에틸렌), 한국에탄올(소주원료 주정 만드는 회사), 카프로(효성그룹) 등등 우리나라 화학회사 대부분이 바로 충주비료의 자식(계열사)들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정치자금 조성을 위해 삼성의 사카린 밀수를 획책했다가 걸리자 본인들은 모르쇠 모드로 나가며 삼성을 비호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삼성이 한 짓'이라며 뒤집어 씌웠다.
66년 김두한이 국회대정부 질의에 나온 정일권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에게 똥물을 뒤집어 씌웠다. 구속 + 뱃지박탈
한국비료(현 롯데정밀화학)는 원래 이병철이 만들었다가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사죄로 국가에 헌납했다.
한국비료는 ‘94년 민영화때 삼성이 시세의 3배, 산업은행 예정가보다 1천억을 더 써낸 2천 3백억에 낙찰받아 되찾아 오지만 이미 비료 등 화학이 저 부가가치 사양산업이라 별 재미를 못 보고 롯데에 다시 매각했다. 짜장면이 천원쯤 했던 당시 1천억이면 지금 1조 가까운 돈으로 창업주의 恨을 푼 셈. 삼성동 땅 비싸게 써냈다고 현대차에게 얼레리꼴레리 할 일이 아니다. 당시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삼성이 8조 이상 베팅할 수 있는 금액을 준비했다는 정보가 포착된 상태였다.
아무튼 이병철 회장 입장에서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뺏긴 회사’ 사장을 했던 민기식 딸(민재원)과 손주 이재환이 결혼하며 사돈이 된 것.
CJ 이재현 회장 역시 아들 이선호는 물론이고, 버닝썬 해외 성접대에 동원됐다 수사대상에 올랐지만 이미 히로뽕 투약으로 장흥교도소에 수감중이었던 모델 한승아가 경찰에 ‘자칭 CJ 내연녀’라고 주장하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버닝썬 사건의 대마담 정승연 등의 진술을 종합하면 '지명'손님 정도.
한승아는 골프웨어 Head 등 모델을 했다
드라마 조연 등으로도 출연했지만 화류계에 입문 결국 히로뽕 투약혐의로 구속
사실 이선호의 대마 흡입 역시 박근혜 정부때 진즉에 국정원과 민정수석실에 포착됐었다. 이를 보고 받은 이재현 회장이 ‘선호가 그럴리가 없다’고 무시하며 방치해 화근을 키운 것이다.
김부선은 처음에는 대마초를 피워보라는 제안을 거절했는데, “우리아빠가 대마관리법 만든 사람”이라고 하는 보사부장관 아들 권유에 피게 되었다고 했다.
만약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신현확 총리아들 신철식이다. 왜냐하면 대마관리법은 ‘77년 신현확이 보사부장관 시절 발의해 제정됐고, 신현확의 아들은 신철식 밖에 없다.
신철식은 행시에 합격해, 경제관료로 참여정부에서는 기획예산처(현 기재부) 실장을 하다 국무조정실 차장(차관급)까지 했고, 이후 STX그룹 부회장, 광운대재단 이사장 등을 했다.
대마관리법 제정당시 ‘대마사범’에 대한 최고형이 무려 ‘사형’이어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야당의원들이 “일본은 최고 7년형인데, 사형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반대하자, 신 장관은 “경고의 의미로 원안대로 하자”고 하며 박정희 정권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다툼이 있었다. 나중에 아들이 그 법의 처벌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
신현확은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홍석현과 홍라희의 부친) 홍진기 법무부장관을 소개시켜 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으로 후일 삼성물산 회장,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했다.
서울대병원장을 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한 ‘성상철’이 신현확의 사위다.

10.26 당일 소집된 비상국무회의에서 김재규가 박정희 서거사실을 숨긴채 “대통령 유고다. 김일성이 알면 큰일나니 48시간 동안 보안유지하고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날뛰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 다른 국무위원들은 주눅들어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을 때 고향 선배였던 김재규에게 대차게 “밑도 끝도 없이 무슨 계엄령? 이유를 대라. 직접 두 눈으로 대통령 상태를 확인하겠다”며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달려간 인물이 바로 신현확이다.
확인결과 ‘유고’가 아니라 ‘궐위’ 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쏜 놈이 김재규인진 몰랐다.
김계원은 그 사이 범인이 김재규라 말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신현확이 반발하고 국무위원들이 동요하며 비상계엄 선포가 좌절되는 등 '김재규가 아무런 뒷배없이 사고를 친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그제서야 국방장관 노재현과 참모총장 정승화에게 실토한다.
정승화는 이때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불러 김재규를 “정중히 안가에 모시라”고 했는데,
전두환은 정승화가 ‘대통령 시해범을 모시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승화가 김재규 부름을 받고 시해장소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고? 어쩐지… 이 공범새끼 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신현확이 고향 선배면서 자기를 밀어줬던 김재규에게 주눅들어 대차게 대들지 않았으면 비상계엄 선포되고, 김계원은 입 다물고 역사가 바뀌었을 것.
신현확은 박정희에게도 대차게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다고 한다. 사위 성상철 역시 박근혜 정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있을때 “농민시위때 사망한 백남기 사인이 외상 같은데?” 라고 눈치없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 * 물론 그 외상을 어느쪽에서 제공했는지는 별개의 문제.
아무튼 신현확이 김재규에게 대차게 대들지 않았으면 김계원이 입을 다물며 1980년에,
(김부선의 주장대로라면) 신현확 아들이 “아빠가 보사부장관 시절에” 운운하며 대마초 피우라 안 권했으면 2022년에 대통령 당선자가 바뀌었을지 모른다.
성상철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서울대병원장
10.26 당시 신현확 사위 성상철 소령은 국군수도통합병원 군의관이었다.
성상철은 1026 당일엔 비번이라 박정희가 실려 왔을 땐 병원에 없었고, 나중에 비상호출 받고 들어가서 “박상범 경호과장 엉덩이에 박힌 총알을 빼줬다”고 했다. 박상범은 궁정동 안가에서 중정 요원들의 총격을 받고 꼬박 하루를 기절한채 현장에 그대로 방치 돼 있다 다음날 병원에 후송됐다.
후일 전두환, 노태우까지 경호했고 YS때는 경호실장, 보훈처장까지 한 박상범은 ‘사선의 불사조’로 불리었다.
육영수 여사 시해 당시 연단 앞으로 뛰쳐나와 박정희를 엄호하며 문세광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 속 경호원이 바로 박상범이다.
10.26때 궁정동 안가에서도 총을 4방이나 맞았는데, 2발은 옷만 뚫리고 1발은 탄창에 맞고, 1발은 치명상이 아니라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다.
‘81년 전두환 방미때도 차량전복 사고로 죽을 뻔 했는데, ‘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에서는 테러범들이 ‘애국가’ 연습연주를 진짜 행사가 시작한줄 알고 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뒤늦게 도착한 전두환과 함께 또 목숨을 건졌다.
-박상범은 박정희가 평소 ‘박군 박군’하면서 총애했다고 한다. 술에 만취해 몸을 못 가누면 관저로 업어가곤 했는데 박정희가 등에 업혀선 귀엽다고 “요놈아 요놈아”하면서 장난으로 꿀밤을 때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한테는 진짜로 맞았다. 박지만이 육사생도 시절 주말에 외출나와 어명을 어기고 몰래 궐을 벗어나는 바람에 온 명동을 다 뒤져서 겨우 찾아 데리고 오려는데 박지만이 박상범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나중에 보훈처장을할때 히로뽕 투약으로 ‘사회봉사처분’을 받고 보훈병원에 봉사활동을 온 박지만을 다시 만나 “힘들지만 열심히 살라”고 했다고 한다.
김부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심각한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주장대로라면, 그녀는 ‘불사조의 엉덩이에서 총알 빼준 사람의 처남’과 ‘불사조에게 주먹을 날린 사람’과 약을 같이 한 것.
80년 5월 8일 서울법대생 윤석열은 교내에서 열린 모의재판에서 “신현확 총리에게 사형,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사형 구형은 신현확에게 한 것. 심지어 518 학살 혐의로 사형을 구형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모의재판은 80년 5월 8일에 있었다.
사직구장 관람 논란과 비슷하나 어쨌든 '전두환에게 중형을 구형한 것'은 맞다.
당시 최고 스타 자매 오수미-윤영실이 주인공으로 동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는 미스터리로 점철된 그녀들의 인생의 예고편인듯하면서 '반전의 반전의 반전' 영화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보여주는 일본CF

김부선은 ‘83년엔 봐줘놓곤, ‘86년에 검찰이 자신을 구속시키고 언론에 터뜨린건 ‘청와대 채홍사의 초청을 거절하자 5공정권이 벌인 치졸한 보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부선이 말한 5공 청와대 파티는 ‘27파티’ 모임으로 추정된다. 당시 청와대 직할대였던 (606부대의 후신) ‘27부대’ 영내 안가에서 주최한 대통령 행사에 연예인들이 불려왔다는 증언이 있다.
김부선은 그즈음 알고지내던 영화관 단성사 오너의 아들 이주호 단성사 부사장과 사랑에 빠져 딸까지 가졌다.
종로3가 단성주얼리센터 자리에 단성사가 있었다.
딸 이미소(이루안으로 개명)는 “진을 정리하다 이 후보와 김부선의 사진을 보게 됐는데 그 사진을 찾고 있는 엄마를 보고 고민 끝에 다 폐기해버렸다. 증거 없다고 엄마를 허언증 환자로 몰아가려고 한다.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받은 사실을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 그 자체가 증거다"고 했다.
영화관 단성사는 경영난을 겪다 엠피오(MP3 제조사) 를 거쳐 ‘영안모자’로 주인이 바뀌었다.
김부선은 ‘86년 사건 이후 출소한 뒤 약을 다 끊고 살고 있었는데 ‘88년 이주호가 이혼을 하고 자신과 살겠다고 해 딸까지 낳았는데 이혼도 하지않고, 딸까지 뺏아갔다고 했다. 이주호 권유로 대마초을 했는데, 그가 처와 함께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면서 김부선도 같이 했다고 불어버리는 바람에 검찰에 붙들려 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김부선은 빼앗긴 딸을 찾아 친가를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고아원에 맡겼다”고 해 전국을 돌며 찾아다니던터라 '검찰에 애기 아빠가 구속돼 있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잡혀갔다고 했다.
‘89년 당시 수사검사 박모 검사에게 ‘정의의 칼’을 휘둘러 억울함을 풀어주고 아이를 찾게 해달라고 탄원했는데 박 검사는 오히려 압수한 ‘일본도’를 들이밀며 “정의의 칼 여기있다 김부선”이라며 오히려 자신을 조롱했다고 했다.
한참지난 '04년 대마초로 또 성동구치소에 구속돼 있을때 변호사가 된 박 검사가 성동구치소로 “얘기 좀 하자”고 면회를 왔길래 “고맙다. 당신이 나를 대한민국을 말아 먹는 년처럼 만든 것. 아이 찾으러 간 사람에 칼을 들이대서 고통 준 것, 고맙다”고 퍼부었다고 한다.
당시 김부선은 구속한 검사는 대검 마약과장을 끝으로 옷을 벗고 ‘율촌’을 거쳐 현재는 법무법인 ‘강건’에 있는 박광빈 변호사다. 대북송금의혹 사건 특검보를 했다.
대북송금의혹사건 박광빈 특검보-송두환 특검-김종훈 특검보
김부선은 이후 마약전문 검사도 본인에게 “대마초는 마약 아닌거 나도 알아. 우리가 히로뽕에 맛이 간 애들 구속시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대마 먹이는 거야. 그러면 정신을 차리고 중화를 시켜 주거든. 마약 아닌거 잘 안다”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왜 사회적 지탄을 받으면서 지난 세월을 썩혔을까” 하면서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 하게 됐다고 했다. (히로뽕은 어쩔?)
아무튼 그 뒤 딸도 다시 찾아오고 호구지책으로 유엔빌리지 앞에서 주점 ‘니키타’를 운영했고 장사가 꽤 잘 됐다. * 여러 정재계 인사들을 비롯 이재명, 명계남, 김흥국 등도 단골이었다.
명계남과 김흥국은 그래도 각자 따랐던 보스 ‘노무현-정몽준’이 한때 후보단일화 “할뻔 했었던 사이”였다. 물론 김흥국은 노무현 지지철회파였다. 정몽준이 노무현 지지철회를 선언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쫓아온 노무현이 문전박대를 당했을때 정몽준 집에 김흥국도 있었다.
지금까지 연예인 마약 사건으로는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00년 태광실업 박연차, 영동백화점 김택 등 기업인과 탤런트 전세영, 김영임 등이 구속된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 채동욱 검사는 미스코리아 출신 등 여성 연예인들이 수천만원의 화대를 받고 기업들과 히로뽕을 투약하고 성교를 한 혐의 등으로 9명을 구속했다.

(계속)
당시 김부선은 빼앗긴 딸을 찾아 친가를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고아원에 맡겼다”고 해 전국을 돌며 찾아다니던터라 '검찰에 애기 아빠가 구속돼 있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잡혀갔다고 했다.
‘89년 당시 수사검사 박모 검사에게 ‘정의의 칼’을 휘둘러 억울함을 풀어주고 아이를 찾게 해달라고 탄원했는데 박 검사는 오히려 압수한 ‘일본도’를 들이밀며 “정의의 칼 여기있다 김부선”이라며 오히려 자신을 조롱했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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