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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자국, 각자의 방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 정을 붙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방을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찾아낸다면 우리는 더 많은 공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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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4평 원룸에서도 S가 꿋꿋이 수집한 것들
김소현 글 나는 초-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살다가 이제 서서히 비워나가고 있는, 미니멀리스트 지망생이다. 8개월 전쯤 혼자 이사를 준비하며 (욕하면서) 이삿짐을 쌌던 경험이 나를 바뀌게 했다! 집도 4평으로 매우 비좁은 관계로, 요즘은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집에 들이고 있다. 또한 물건이 더 이상 쓸데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죄다 갖다버리거나 기부해 버린다. 다음은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3개 이상 가진 품목들이다. 여기서 나의 포기할 수 없는 취향과 취미가 드러난다. 섬유유연제 세 종류의 섬유유연제를 가지고 있다. 스0글의 그린스파클플러스 , 다0니의 실내건조 플러스, 또 다0니의 시트러스&버베나. 나는 시트러스와 머스크 계열의 상쾌하고 뽀송하고 시원한 향기를 좋아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맘에 드는 향기의 섬유유연제를 골라 넣고 세탁기를 돌리고, 세탁이 끝났다는 경쾌한 알림음을 들으며 세탁기 문을 덜컹 열었을 때! 향기가 팡 터지는 순간이 좋다. 집에 베란다가 없다. 그래서 방 안에 제습기를 빵빵하게 켜둔 상태로 빨래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널어두는데, 이렇게 하면 온종일 집에서 상쾌한 향기가 난다. 특히 빨래 널어두고 잠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느낌이 극대화된다. 차 책상에 앉아있을 때 자꾸 과자랑 빵을 까먹게돼서 이런 군것질을 좀 줄여 보고자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다양한 차를 모으게 되었다. 피곤할 때는 상큼한 콤부차! 요즘 콤부차들은 거의 당류가 제로라서 상쾌하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때에는 허브차 티백을 따뜻한 물에 우려 마시고, 달달한 게 땡길 때는 우유를 데워 밀크티나 핫초코를 만든다. 가위 가위를 총 3개 가지고 있다. 하나는 종이를 자를 때나 앞머리 자를 때처럼 일상의 자질구레한 순간에 필요한 가위이고, 하나는 주방에서 음식재료 손질할 때 쓰는 주방가위, 또 하나는 재단가위이다. 옷을 마구 자르고 리폼할 때 쓴다. 재단가위는 일반가위에 비해 압도적으로 원단이 잘 잘린다. 요즘 헌 옷들을 사용해서 실험해 보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재단가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나에게 가위는 꼭 3개가 필요하다. 책들 옷들 걸어두는 헹거 밑에 책들을 둔다. 보통 자기 전에 누워서 책을 읽는데, 마침 이부자리 머리맡 근처에 행거가 있기 때문에, 구조가 아주 딱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바로 근처에 서점이 있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들러서 책을 구경하고 읽는데 소장하고픈 책들이 자꾸 늘어난다. 난 실용서와 수필이 좋다. 생활밀착형으로 공감되는 글이 많고, 유용하고, 글줄 사이에서 저자만의 독특한 감성도 느낄 수 있다. 최근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우울할 땐 뇌과학’.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기분이 들 때에 꼭 펼쳐본다. 오늘도 펼쳐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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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떠오르는 집
전예슬 글 내 태양 내 방에는 나의 태양이 있다. 거의 들지 않는 햇볕을 대변해주듯, 나의 태양은 밤낮으로 밝게 빛난다. 본가에서 나와 산 지 어언 5년 반이 지났다. 처음 3년 동안은 마음 속에 태양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만들 재료가 부족한지 작은 태양이 생길랑말랑. 마음 바깥에 태양을 만들어보려고도 했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으려는 듯하면서도 나의 따뜻한 나무에서 다 자라기도 전에 자꾸 떨 어져 내려갔다. 조용하고도 차가운 방이었다.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나만의 하늘과 나만의 태양이 있는 방으로. 높아서 내가 닿지 않을 수 있는 방으로. 태양빛은 내 몸에 어느새 스며들어 몸 안에 두 번째 작은 태양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 작은 태양이 3년 전처럼 허무하게 없어지지 않도록 태양에 더욱 불을 지핀다. 장작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넣는다. 1. 하얀색 집 나 혼자 남은 집은 그 어느 곳보다도 가장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의 아이 같은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내가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나를 부끄럽게 만든 다. 그래도 집은 하얀색이라서, 본능도 행동도 하얗게 만들어 나의 부끄러움을 흡수해간다. 똑바르게 정리되었던 마음은 집을 나서면 조금씩 휘어진다. 마음은 곡선으로 휘저어지고, 그 흔적들이 중첩되어 직선은 어느새 동그라미로 바뀐다. 동그라미는 선 끝이 서로 묶여 긴장되어 있는 상태의 마음이다. 나는 ‘곡선인간’이 된다. 선 끝으로 닿지 않아 타인을 만나면 절대 상처를 입힐 수 없는(찌를 수 없는) 곡선인간 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긴장되어 있던 마음이 풀려 다시 스르르 직선이 된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내 집에는 보이지 않는 하얀색 가위가 숨어 있다. 예전부터 집에 있는 게 엄청 좋았다가 싫었다가 했다. 싫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밖에 있다 잠만 집에서 잤다. 하얀색 집은 공허한 느낌을 커지게 만들었다. 잡생각이 많아지게도 했다. 어떤게 싫다 좋다… 이런 직선적인 감정이 들게 해서 나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직선적인 감정은 커가면서 타인에게는 숨겼던 감정이다. 계속 곡선의 감정만을 내보였고, 무언가를 합리화시키고, 수습하는 데 애를 썼다. 이유 붙이는 행위를 강요 받아왔고(이 말 마저 합리화하는 말이다.), 그것이 내 깊은 곳 에 자리잡은 결과였다. 내 마음 속에는 여러 색의 곡선의 감정이 섞여있다. 그래도 집은 하얀색이라서, 집에 있는 것만큼은 이유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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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객지생활
김효주 글 당신의 방엔 누가 사나요 라오스 내 방엔 개미도 살고 거미도 살고 도마뱀도 산다 하루도 쓸지 않으면 방 안이나 방 밖이나 다를 것이 없어진다 밤새 개미에게 물어뜯기고 싶지 않다면 쓸고 닦아야한다 언젠가 체념해버릴지도 모르지만 글쎄 지금으로썬 바삐 움직이는 자신이 싫지 않다 싫다한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다 다르고도 다른 이 환경 속에서 ’내 방‘임을 증명하는 것들이 있다 •최고로 아끼는 내 옷들 •짙은 청록색의 매트 •4년가량 함께한 인센스 홀더 •김효주 가 한국의 효주를 이어나가고 있다 반면 악기이자 소품인 베이스는 소중한 취미이지만 과감히 두고왔다 새로운 장소에서 옛 나를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지만 약간의 나를 떼어놓고 그 빈 공간에 새 것을 채워넣자는 다짐이자 도전이었다 모쪼록 이 낯선 집에서도 효주같이 살고자 하고 있다 4개월 뒤 한국에 돌아갈 즈음엔 라오스의 내 방이 더욱 내 방 같아질지도 모르겠다 이곳 모두는 집과 공존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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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차 기숙사생의 기숙사
한채영 글 방은 가장 사적인 장소이다. 두 명이 함께 지내는 기숙사 방에서 매일 아침을 맞는 기숙사생에게도.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숙사 생활 삼 년 차인 나에게는 일단 그렇다. 사적인 장소의 예시 몇 가지를 들어보자면, 첫 번째로는 잔뜩 어질러진 방. 사회적으로는 부러 노출하지 않고, 노출할 수도 없는 행위가 종종 방에서 일어난다. 나는 룸메이트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는 방을 어지르지 않기 위해 신경 쓰지만, 그렇다고 방이 매일 깨끗하지만은 않다. 준비하고 나갈 시간이 부족하거나, 갑자기 택배가 한꺼번에 많이 오거나, 혹은 이런 두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날 때는 가뜩이나 좁은 책상이 쓰레기장처럼 변하기도 해서...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방이 어떤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가장 사적인 장소는 방이 아닐까. 왜 초등학생 때 다른 친구네 집에 놀러 가 친구 방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즐거웠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비단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데서 오는 기쁨뿐만 아니라, 친구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초대받을 만큼 우리가 친하다는 증표를 받은 것 같아 기뻤던 것 같다. 역으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더러운 방 사진을 웃긴 사진인 것처럼 보내는 것도, 일종의 친근함을 표시하는 행위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나를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타고나길 맥시멀리스트로 태어난 나는 좁은 기숙사 방 면적을 알뜰하게 쪼개고 쪼개 물건을 쌓아두고 있다. 맥시멀리스트던, 미니멀리스트던 사람의 방 안에서는 어쨌거나 취향과 관심사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책장 아래 칸에는 다 쓴 일기장과 새로 쓰다 접어둔 일기장과 노트들이, 책장 두 번째 칸에는 미술사 책과 전시 소책자, 전공책이 꽂혀있다. 그리고 티백들과 커피도. 물론 방에 대한 정보만으로는 그 사람을 모두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줄줄 말하는 것보다는 이런 단편적인 사진이 더 나을 때가 있다.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자기소개 대용으로 자신의 방을 소개하자고 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사적인 장소는, 좋아하는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왔을 때는 많은 학생들이 거쳐 가며 꽤 더러워진 회색 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시야 앞이 바로 회색 벽으로 턱 막혀 있으니 가뜩이나 좁은 방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지금은 남들이 남긴 흔적 위에 인상 깊게 보았던 전시회에서 산 사진들을 붙여 놓았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회색 벽을 볼 때보다는 마음이 훨씬 즐겁다. 떼어낼 때 또 다른 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종이테이프를 말아 조심스레 붙여 두었다. 나중에 내가 이 기숙사 방을 떠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자신의 방에 애정을 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또 다른 사진을 붙여놓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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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지망생의 작업실
김도형 글 매년 나만의 ‘올해의 어워즈’를 작성한다. 올해의 인물, 올해의 노래, 올해의 장소 등등. 2년째 내 자취방이 올해의 장소로 선정되었으나 2024년의 올해의 장소는 내 작업실이 될 예정이다. 자취방과 작업실을 동시에 유지한다는 건 여러모로 꽤 무리가 있는 선택이었으나, ‘완벽하게 준비한 뒤 시작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다’라는 아무개의 말을 듣고 일단 저질렀다. 내 작업실은 창이 넓고 층고가 높다. 벽이 많아 작품을 걸기에도 용이하다. 양옆에는 일반 사무실이 들어와 있는데 나는 주로 6시 이후에 작업실을 이용하므로 다른 사람을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1층엔 카페가 있으며 바로 앞에는 안산천이 흐르는 공원도 있다. 아주아주 더러운 내 작업실. 작업실에서는 주로 유화 작업을 한다. 작업실이 생긴 뒤 가장 좋은 점은 내 작업을 여기저기 널어놓을 수 있다는 거다. 작업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왠지 열심히 사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정리는 내일 할 예정이다. 아주아주아주 더러운 내 작업대. 솔직한 모습을 담기 위해 일부러 정리는 하지 않았다.(아니다) 작업은 하기 싫은데 놀고 있는 나를 견딜 수도 없다면 작업실에 앉아 화방 쇼핑을 하면 된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기 싫어 문구점에서 볼펜 쇼핑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도형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입냄새를 신경 쓴다 고양이를 유혹하고 싶어 한다 소화가 잘 안된다 눈이 자주 건조하다 토레타를 좋아한다. 여기서 오답은 5번이다. 토레타를 좋아하지는 않고 편의점에서 행사하길래 사 마셨다. 책상의 탈을 쓴 선반. 비슷한 예로 실내 자전거의 탈을 쓴 빨래대를 들 수 있다. 가끔 식탁의 역할도 수행한다. 매일의 할 일들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나갈 때의 쾌감이 있다. 그런데 침착맨의 말처럼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을 때의 쾌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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