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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의 잡다한 생각

새벽네시 co-founder / 공동대표 김경은입니다.
최대한 무작위의 다양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글쓰기의 목표입니다.
'앞으로 어떤 연으로 이어질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은 만남들에서도 늘 놀랍고 귀한 무언가가 싹트더라고요.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
어떤 문장은 평생 뇌리에 박힙니다. (제 뇌의 유익균들은 (뇌에도 미생물이 있겠죠?) 그런 문장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옥한 문장을 뇌의 양식 삼아 주기적으로 채워주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때 전공 교수님 중 sarcasm 이 일품인 분이 계셨습니다. 교수님의 고급 유머에 우리 모두 깔깔댔지만 수업이 끝나고 흩어질 때면 '교수님, 또 이 모든 게 우습다며 신랄하게 까셨군.' 하고 뒤늦게 타격이 찾아오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앎’에 대한 짧은 문장을 꺼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안다는 것은 행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여 행하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느 때처럼 대상모를 풍자와 함께 금새 지나간 문장인데 저는 수업이 끝나고 학식을 먹으면서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이후 몇 년간 수시로 밥을 먹을 때, 길을 걸을 때 그 문장을 떠올립니다. 가슴 속에 큰 짐인지, 구멍인지를 남겨두신 셈이죠. 안다고 믿지만 행하지 않는 진실이 있을 때 앎을 자문하게 된 겁니다. 칼질을 잘못하면 손가락 다칠 것을 알 듯, 삶은 언젠가 끝남을 알 듯, 1에 1이 더해지면 2가 됨을 (좋은 예시가 아닐지도…) 알 듯이 그 앎과 같은 방식으로, 장사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풀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혼자가 아닌 팀일 때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관련하여 김동호 대표님의 글에서 와닿는 부분도 발췌해둡니다. 결국 앎은 말해지고, 행동되어야지만 실현될 겁니다: • 나아가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자질을 꼽자면 1)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아는 것(to know where you’re going.), 2) 그것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all of life is about convincing people to do what you want),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3) 솔선수범(the most effective way is to do what you want people to do lead by example.)입니다. 번외로 교수님이 또 다른 수업 시간에는 “가위 한 자루”의 은유를 말씀하셨던 것 또한 재밌습니다.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삶 전체를 지배할 때 가위 한 자루를 처음 가져본 마냥 모든 보이는 것을 그 가위로 자르고/재단하고 다닌다고요. 즉 나의 앎이 꼭 진실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둘 모두 극복할수도 떨쳐낼수도 없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주제들입니다.
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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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없이, 그러나 담대하게 - 스타트업이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
"허세없음" 새벽네시에는 "허세없음" 이라는 이름의 Core Value가 존재합니다. 이 Core Value의 핵심은 외부의 무언가가 동력이 되게끔 하지 않고, "profitable business" 라는 비즈니스의 본질에 맞는 방식, 그 중에서도 우리 스스로 납득/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나아가자, 는 내용에 있습니다. 이 "허세없음"은 이제까지 새벽네시가 굵직한 선택을 내리는 데 (그 이름을 갖기 전부터도)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아왔습니다. (설립자인 경은솔의 개인적인 신념과 밀접하기 때문이겠죠.) SaaS vs. Service / (대규모의) Venture funded vs. Bootstraping 하여 저희는 갖고 있는 자원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안전한 플레이를 해왔고, 새로운 시도에 앞서서는 정확히 계산기를 두들겨보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희가 만들고 있는 마케팅 SaaS Handy에 대한 전략 수립 과정인데요. Handy는 애초에 1) 상상이 아닌, 실무적으로 가장 효용이 있다고 판단되는 영역을 대체하기 위한 기획으로 출발했으며 2) 국내외 SaaS 동향을 살펴봤을 때 단독 비즈니스모델로 서는 것이 매출상 impact 가 크지 않겠다는 판단이 더해지고 나서는 새벽네시의 Universe에서 '수익'에 기여할 수 있는 가볍지만 확실한 효용을 주는 리드 마그넷 (저희는 '트래픽'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습니다)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방향성에서 수정이 있었습니다. 이 2번의 믿음은 또 다른 저희 식의 "허세없음"의 사례인 새벽네시의 cashflow 관련 지향점과도 이어집니다. 새벽네시는 VC 의 자본 기반으로 비용을 써가면서 성장해나가는 기업이 아니라 bootstraping 으로 수익을 내면서 성장하는 기업이 되리라는 판단을 갖고 있습니다. 돈을 쓰는 법과 돈을 버는 법은 명확히 다르고 이 후자에 대한 자신감이 서기 전까지 전자를 먼저 익히는 건 저희에게 독이 되리라는 판단이 있었죠. 지난 1.5년의 궤적, 그러니까 흑자를 지속적으로 내면서도 그 흑자가 성장해온 궤적은, 이 판단은 저희 조직 내부의 안정성을 더해줬을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시장 상으로도 유효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향성에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 는 믿음을 넘어서 SaaS와 같은 특정한 트렌드 자체가 end-goal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말해 트렌드에 따른 형식을 먼저 정해두고 그 뒤에 '비즈니스'를 세우는 것이 비즈니스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믿음도 전제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한 Hype가 이전 대비 가라앉으면서 서비스 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오가는 것 같아요. "Go"? 옳았던 판단만 뽑아내서 살펴보면 그렇고, 대신에 새벽네시에 부재했던 것은 No Go ("하지 않는다") 는 원칙과 지향은 있으나 역으로 Go 가 모호했음이라 자평합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 있지만/해왔지만 어쩌면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접근을 하고 있었던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소프트웨어건 서비스건 이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거대 트렌드로서 Gen AI가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저희 팀이 이 트렌드를 우리의 코어 비즈니스와 연결지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또는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적인 회고를 할 기회가 최근 여럿 있었습니다. 꼭 Gen AI에 한정해서가 아니더라도 이 Go가 명확지 못해 조직 내부에서는 세밀하게 겪고 있는 혼란들이 있었고요. 이와 관련해서 지난 금요일 타운홀에서 조직에 전했던 글의 초두가 아래와 같습니다: 오늘은 새벽네시가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Apple 發 개인정보보호 이슈 (ATT) 가 2020년 쯤 수면 위로 올라왔고 강제적용이 된 것은 21년 4월이었습니다. 새벽네시는 22년 6월에 정식 설립, 동년도 9월에 co-founder로 제가 full-time 합류를 시작하며 비즈니스를 본격화해나갔습니다. 22년 연말까지 저와 은솔님이 주목하던 첫 번째 vision은 데이터 (or 문제로서는 Data-silo) 였습니다. 이 vision은 마케팅에 있어 개인정보보호 이슈로 발생할 pain point 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무적인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OpenAI 發 생성형 AI 트렌드, 더 정확하게는 Chat GPT 열풍 이전에 ‘뤼튼’을 처음 접하게 된 건 22년 7월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 전인 23년경 4월에 저는 AI를 현업에 마케팅 적용하는 것과 관련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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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bborn Visionaries vs. Pigheaded Fools - 직관 훈련
지난 글과 궤를 같이하는 고민을 이어가다가 생각이 일단락되어 링크드인에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그나저나 상민님의 리드로 슬아예지님과 함께 하고 있는 ‘매일 짧게나마 습관 만들기-챌린지’에서 알게된 바, 저는 경어로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편하더군요. 이젠 경어로 쓰려고요.) 링크드인 매체 특성상 글이 길어졌을 때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해 덧붙이고 싶던 사족은 블로그에 남겨봅니다. 최근 팀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실제로 ‘직관’이란 표현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런 함축적인 용어는 개념에 대한 상이한 이해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혼선을 낳곤 합니다. 하여 간단하게나마 직관에 대한 제 버전의 현 소결을 적어두고 싶었어요. (이건 철학에서 다루는 직관 개념과는 꽤 차이가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팀에서 사용할법한 ‘직관’에 대한 소결 정도입니다.) 직관은 몹시(!) 차갑게 벼려진 논리의 한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 논리 과정이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 정도가 직관 이외의 논리 영역들과의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직관이 아닌 논리의 영역들은 대개 인풋 → 눈에 보이는 논리 과정을 거쳐 → 인풋에 대응하는 아웃풋이 나오는 식이라면 직관은 대개의 논리 과정을 뛰어넘고 더 빠르게 아웃풋에 도착하도록 합니다. 즉 “직접적인” 판단으로 보이는 것이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라는 문장이 쓰이는 용례가 대표적이네요. 이때 제가 직관을 ‘차갑게 벼려진 논리’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러합니다: 낱낱이 논리 알고리즘을 구성하지 않고도 “쉽게” 결론을 내리게해주는 도구로서 직관이 훌륭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수많은 알고리즘 또는 인풋 데이터들이 미리 상당 부분 존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풋 데이터를 넣는 당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그 인풋을 특정한 아웃풋으로 처리하기 위한 이성의 훈련이 마치 매일 벼린 칼처럼 꾸준히 이뤄졌어야 직관이 작동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정보를 넣었을 때 그에 대해 새삼스레 ‘판단’하고 ‘추론’하는 등의 논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매끈히 삽시간에, 하여 심지어는 논리 영역을 거치지 않은 것처럼 결론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좋은 직관의 힘입니다. 그러나 종종 직관을 직감과 헷갈리는 사례를 봅니다. 직감 또한 여러 논리적 경험치를 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직관과 유사하지만 결국 직감이란 몇 가지 정보 또는 논리가 비어있더라도 그대로 판단을 내리겠다는 선언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반대로 (제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직관은 아직 몇몇 정보와 논리가 언어화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이성을 메인디쉬로 삼는 판단기제인 듯해요. 직감도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의 어느 시점부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만 저는 아직 거기엔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직관이라는 미명 하에 실은 직감에 가까운, 무논리의 뜨거운(?) 의사결정을 내리는 광경을 제 안팎에서 목도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앞으로도 있을 거고요. 열기가 잦아들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은 언제건 설레니까요) 논리가 고개를 들었을 때면, 이미 의사결정은 내려졌고 팀은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을 겁니다. 변덕을 부리는 훼방꾼이 되지 않고 싶다는 생각때문에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는 이야기를 꺼내기 망설여집니다. 아직 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이 눈을 떠 빨간불이라는 신호를 열심히 보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관된 자아를 보유하고 싶다는 자존심때문에, 또는 이 고민이 실행을 저해하리라는 (사실상 이미 주객전도의) 우려때문에 최초의 오판을 바로잡는 데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맙니다. 그러고보면 역설적으로 이 시점에 왔을 때 직관은 제 역할을 못할 확률이 크죠. 오히려 매몰비용을 의식하다보니 낱낱이 스스로 설명하고 납득이 되어야지만 (= 필요한 비용의 최대치를 쓰고 나서야) 재고의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
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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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주를 만들고 부수기
반복적으로 머리를 쿵 치는 주제가 있다. 조직은 바삐 돌아가지만 분명 어딘가 비어있다는 불안 → 아니, 바쁘다고는 한들 우리가 과연 정말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 고민을 명료화해볼까 vs. 과도하게 반복되는 고민 자체가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라면? → 견딜 수 없어 명료화 → 고민을 통해 만들어지는 변화를 체감하며 고민의 타당함을 인정 → 실행 중심의 안정기 → 다시 1단계로 잡념처럼 떠오르는 고민이 아니라 의미있는 수준으로 이 고민을 팀과 함께 풀어낸 건 창업을 하고 9개월 쯤이 지났을 때였다. 23년 5-7월 경의 새벽네시의 첫 타운홀/새바시 (새벽네시를 바꾸는 워크샵 😉) 였고, 그때 우리는 ‘사업의 성공은 돈 되는 것’이라는 중요한 본질을 함께 짚어냈다. 그로부터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23년 12월 새바시에서 우리는 ‘돈 되는 universe & 그에 이바지하는 유기적인 조직 (unit 체제) 을 만들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 새바시를 계기로 타운홀은 정례화되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3주차 타운홀에서 (’위 phase 구분상 실행 중심의 안정기’로 접어들 때) 아래 글을 썼었다. 그리고 2개월 정도가 지난 내일의 4월 1주차 타운홀을 위해서는 또 다시 ‘아니 우리 진짜 잘하고 있나요’의 고민을 공유할 예정.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는 1월 3주차 타운홀의 글의 일부 발췌 & 지금의 생각을 덧댄 (Italic 처리) 버전으로의 수정: 누군가 정답을 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고정 불변의 정답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해봐야 한다. 마케팅에 대해 우리가 늘 이렇게 고객사들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비즈니스라는 게 대단한 경영, 전략, 비전만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하기 방식, HR, 조직문화, 모두 그렇습니다. 누가 잘했다고 우리에게 그 방법이 필히 정답은 아니고, 또 누가 못했다고 우리에게 그 방법이 필히 오답은 아닙니다. 그러니 계속 배우고 계속 의심하면서 ‘특정한’ 방식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건 작은 우주를 짓고 부수는 과정을 아주 빠른 템포로 계속 반복하는 것이라 참 어렵고 괴로운데 이게 없이는 영영 잘못된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단 하다”보면 여러가지 질문이 끼어듭니다. 사소한 질문도 아니고 아주 주요한 질문들이요.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가 복잡다단히 상호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로 Objective - Key results - Initiatives 전체가 수많은 가설로 얽혀 있다는 점을 잊지맙시다. 따라서 이번의 실패가 무엇의 실패인지 발라낼 수 었이야 합니다. 부분에 대한 결론을 전체 아이템에 대한 결론으로 비약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방향 또한 유의해야 합니다.) 요컨대 이 질문들은 우리의 경로를 수정하게 할지언정 멈추게 해서는 안됩니다: “바닷물을 끓이지 마세요” 모듈화가 될까? 트래픽이 될까? → 필요한 질문이고 동시에 이 질문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안될 가능성은 어떻게 점칠 수 있나요? 아예 니즈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니즈는 존재하지만 솔루션이 잘못 연결되었다? 니즈는 존재하지만 GTM 상 타겟을 잘못 찾았다? BM 구조상의 오류로 수익화에서 실패했다? 현재의 전략에 이 성패 변수들이 고려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산식을 알아낼 수 있나요? 중요한 건 팔아보기 전까지 “진짜” 인사이트는 없습니다. 그냥 파는 게 아니라 목표와 그에 따른 가설이 명확하면 팔고 나서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실행합시다! 대신 우리의 집요함이 우리를 속이지 않도록 그걸 되돌아보는 기점을 미리 찍어둡시다. 반대로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정말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너무 큰 확신으로 일단 해보는 것에서 의의를 찾고 계시다면 그건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목표를 이해하고 정확히 조준할 것, 그게 아니라면 실행은 무의미합니다.
경은
일은 전쟁이 아닙니다.
지난 번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상을 봤다. 감동은 엄청났다. 37 signals (aka basecamp) 의 co-founder, Jason Fried의 인터뷰. JF는 통념상의 스타트업이 하지 않는/심지어는 금기시할 법한 이야기들에 거침이 없다. (그의 결과가 validate 하니까!) 그러면서도 놀라울 것 없다고 서두서부터 거듭 강조한다. 이 세상의 95%의 비즈니스는 그가 말하는 이 새로울 바 없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으며, 37 Signals 또한 그 중 하나일 뿐이고, 더 나아가서는 방식이야 95% 와 5% 중 어디에 속하건 이토록 당연한 비즈니스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만이 비즈니스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답이라는 이야기를 2시간 꼬박 반복해서 설명하는 데 여전히 지루할 새가 없다. 🥹 이야기할 꼭지야 너무 많지만 이 글에서는 핵심만 다뤄본다면: 비즈니스의 본질은 궁극적으로는 '돈을 쓰는 것보다 많이 버는 것' 이다. we don't talk about things that don't really matter so much, like revenues dont really matter cause you can go broke generating a lot of money. We just want to make more money than we spend, have good healthy margins which allow us to experiment, and play, and not be afraid to do things that may not work, and just enjoy ourselves. 이 본질을 충실히 습득하는 데 있어 JF가 가장 유효하다 주장하는 방식이 bootstraping. 작은 팀: 돈을 버는 것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돈을 쓰는 것은 통제할 수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작은 팀에서부터 시작하고 profitable한 구조를 검증하며 팀은 키워나가야 한다. 작은 자금: (작은 팀과 자연히 연결되는데) 자금이 충분히 있다면 자연히 돈을 버는 법보다 돈을 쓰는 법을 배운다. 어느 한 순간에 새로운 걸 깨닫게 될 수 없다. 처음부터 돈을 벌어온 기업만이 돈을 버는 법을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여 JF는 누군가 자기에게 덜컥 큰 돈, 큰 팀을 맡긴다면 대체 그것을 어떻게 써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사업은 어렵고 복잡성은 그 난이도를 훨씬 더 높일 뿐이다. The reason I think it's great for entrepreneurs to start bootstrapping is because they just have more practice making money, and they get better, and better, and better at the fundamental skill you need to have ultimately to run a successful business, which is to make money. 돈도 없고 규모도 작은 팀으로서 실행력을 갖추고 종래에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에 일관된 몇 가지 원칙이 언급된다. 절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올해 말까지 우리는" 등으로 시작하는 약속을 특히나 경계하라고 거듭 강조한다. (ㅋㅋㅋ) 예컨대 모든 비즈니스를 "6주" 단위로 생각한다는 제언이 아주 인상적이다: Every six weeks, we rethink what we’re going to do next. We’re very much an in-the-now company, making it up as we go.
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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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을 걸고 계신가요?
일을 하다보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유난히 그런 시기에는 일터 안팎의 매순간 긴장감이 들숨날숨에 배어있다. 유머는 희박해지고 고로 웃는 일도 더 적다.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해도 온통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그럴 때의 나는 마치 소위 말하는 '사활'을 건,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 생로병사가 있다지만 유독 스타트업에는 그 존망을 가로지르는 '결정적' 순간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만 같다. 느껴지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망하고 나서 "아 그때였구나, 우리의 결정적 순간" 하고 알아차린다면 영 소용이 없을테니 늘 사활을 걸듯 임해야 살아남은 현재와 근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치열한 순간들의 연속에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사활을 걸듯이 임했을 때 과연 정말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나?" 이 생각에 이른 것은 학창시절 스스로의 일화로부터다. 나는 도시 곳곳의 중학교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만큼은 공부들 열심히 했다는 학생들이 모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는 입학 전 겨울방학부터 미리 입교하여 다함께 입학 시험을 준비해야 했는데 채 서로를 알기도 전에 겁을 잔뜩 먹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불확실성에서 비롯한 불안과 싸우기 위해 다들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모두가 은근한 기대와 자부심을 잔뜩 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기들의 속내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그들이 아묻따 시험 공부에 온전히 매진하고 있는지 매일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모든 긴장되는 과정을 동기들은 어찌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더 넓은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터무니없이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처음 받아보는 성적표를 마주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 어색한 동기들과 반강제로 입학 성적을 공유하는 순간에 억지로 괜찮은 척 웃어보일 수나 있을까? 이런 가능성은 늘 현재를 압도했다. 집중을 위해서라도 생각의 일단락이 필요했는데 고심 끝에 나는 일단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그러면서도 확률적으로 리스크가 더 높을 때는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전략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받으면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자평할지를 정해두었는데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100여명의 입학생 중 대략 80등 안에 들면 된다는 소결을 내렸을 것이다. 이후 입학 시험 결과 나는 30등 정도를 했다. 갓 17살이 된 모두의 온갖 희노애락이 오가는 교실에서 나는 아마 제일 기뻐했던 이들 중 하나였다. "80등일 줄만 알았는데 내가 30등이라니!" 입학 이후 수많은 시험이 더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시험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는 저런 식의 (상대적으로 낮은) 기대치를 철저히 유지했는데, 이전의 결과에 따라 점진적인 상향조정이 약간씩 따랐을 뿐이었다. 결과는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은 결과를 내는 사람이, 정량적으로는 졸업할 무렵 자타 가리지 않고 예상치 못한 전교 1등이 되어있었다. 학업 성적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는 가장 탁월하다는 증표를 받은 셈이다. 비슷한 패턴은 중학교, 대학에서도 되풀이되었던 바 있다. (그나저나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그 나름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도 몇 해가 지났는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떠들다니 - 하고 너무 우스워하지만은 말아 주시길... 유치한만큼 직관적인 이야기도 있다고 믿어보며…) 물론 후회없이 열심히 한 시기였다. 그러나 매일의 결과 자체에 사활을 걸며 일희일비한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여 나는 이 일화를 "낮은 기대치를 갖고도 장기적으로 훌륭한 결과에 도달하는 법" 으로 요약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는 회복탄력성과 탁월함과 관련한 사소한 tactic이 내포되어 있다. 대개 회복탄력성이나 탁월함 같은 것들은 바꾸기 어려운 성향, 또는 삶과 함께 축적된 묵은 습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성향 또는 습관만큼이나 1) 환경 (훌륭한 input) 2) 그리고 유치한 수준으로 사소한 tactic 이 끼칠 수 있는 영향 역시 꽤 크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치열히 몰입하면서도 심신이 지치는 빈도가 덜했고 지칠지언정 금새 일상으로 돌아왔고 (회복탄력성) 또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탁월함) 얻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방법론의 핵심은 이렇다: 당장의 결과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기대치가 낮다는 의미는 이 뜻이다. 더 큰 궤적상 문제가 없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결과는 이전보다 현재 더 나아졌다는 측면에서만 집중한다. 그렇다면 문제 없다! 대신 결과보다는 방법에 집중한다. 기대치와 실제 결과 간의 갭이 얼마나 크고 작았는지, 그걸 가르는 핵심을 고민한다.
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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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과 마케팅 '업'은 다릅니다.
최근 AI에 대해 재미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PD 1명, 변호사 1명, 로스쿨 재학생 1명, 디자이너 1명, 그리고 창업가 1인 구성의 모임에서 진행되었다. Open AI의 Sora가 주제의 발단이 되어 각자 분야에서의 AI 관련 잡학을 끌어모아 긴 논의 끝에 다음의 질문만이 남았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무엇인가? 특정한 업무 영역을 대체하는 것만으로 곧 ‘업’의 대체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맞닥뜨리게 된다. ‘업’의 본질은 ‘업’을 이루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업무 영역 또는 그 내용에 대한 것과는 다르다. 예컨대 AI 변호사를 떠올려본다. 변호사와 같이 면허를 기반으로 하는 공인 전문직은 그 qualification 에서 요구하는 지식이 명시적으로 범주화되어 있다. 따라서 공인 교과서 대신 암묵지로 전문성이 구성되는 비전문직 (예컨대 컨설턴트) 에 비해 AI를 통해 그 지식을 모방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변호사의 자격을 얻기 위해 학습해야하는 지식의 범위, 특정한 지식의 옳고 그름 판단 등을 생각해본다면. 그런데 이 지식을 갖추었다고 하여 변호사 업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변호사의 업무영역 중 송무는 특히나 사실 판단 이후의 다양한 이해관계 및 그 역학을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기업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은 (사내/사외) 변호사는 기업의 결정에 대해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는 법리해석뿐만 아니라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는 단순해석 이상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하지 않을성 싶다. 이때 사실관계에 대해 표면 위로 드러난 정보 외에도 사내 정치 역학이라던지, 기업 외부의 이해관계자의 입김이라던지를 (적고보니 대개는 relationship-based의 무언가에 국한될지도?) 고려해서 종합적인 전망을 가지고 Pros & Cons를 판단할 것인데 이 역할을 소위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한 모범생 AI 변호사가 수행하기는 어려울 테다. AI의 학습능력과 성장속도 때문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화시키기 곤란한 정보들이 실제로는 더 많이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기업과 관련하여 변호사 ‘업’의 핵심은 중립적이고 ‘기계적’인 (이 단어 또한 재고해야할 때가 금새 올지도…)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결정에 대해 공식적인 authorization을 부여하는 역할, 가장 안전하게 risk를 진단하거나 나아가 조정하는 역할에 가깝다. 나는 이 두 역할 간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 내용은 변호사에만 해당하는 바는 아니다. 모임에서는 참여한 전원의 직업을 이 관점에서 살펴보았고 꽤 유사한 결론, 그러니까 드러난 직무 skill 과 실제 ‘업’의 본질 간 차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근미래의 AI는 특정한 업무 영역을 대체할 수는 있겠으나 그 ‘업’의 본질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요점이다. AI가 알고리즘화 하기 난감한 무작위의 정보/지식 바탕의 의사결정이 현업에서는 훨씬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정보/지식을 알고리즘의 재료로 input 하는 것조차 꺼려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아직까지의 인간-AI 관계 지형상 AI 에게 risk를 의탁한다는 것 자체가 감정적인 허들이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 에 대해 이야기할 때 AI 를 통해 얼마나 많은 업무가 대체될 수 있냐는 방향에만 집중해서는 놓치는 지점이 생긴다는 의미다. 나 또한 AI의 가능성에 매일 압도되고 있고, 그 실무적 유용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아직까지 (또는 예상보다 꽤 오랫동안) AI가 돋보이는 구간은 롱테일하게 쪼개진 세밀한 단위의 업무들에 대해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서는 업무단위 뿐만 아니라 AI가 실질적으로 대체하게 되는 비즈니스 또한 유사한 현상을 보일 것같다.)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해 1+1 만으로 2가 되지는 않으니 2+a를 만드는 각종 ‘업’들의 종합예술(?)에 대해서만큼은 AI가 여러모로 갈 길이 멀다. 새벽네시는 현재 마케팅을 재료로 비즈니스의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마케팅의 본질은 제품/서비스 외부에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위 관점으로 돌아와 마케팅 ‘업’의 본질을 고민해보면 이는 마케팅 자체의 본질과는 차이가 있다. 변호사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할 때의 이 ‘업’의 본질은 비즈니스 성장에 대해 ‘확신’을 드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risk’에 대한 (반드시 법적 형태가 아니더라도 정서적/관계적으로) 연대책임을 뜻하기도 하고. 이 지점을 꽤 첨예한 수준으로 이해하는 데 창업 이래 꼬박 1년 정도가 걸렸다. (물론 실무자로 일하던 주니어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 격차는 아득할만큼 더하다. 돌아보건대 그렇게 놓친 수많은 기회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이 깨달음은 새벽네시의 현재 Core Value 중 하나인 “허세없음”을 짚어내는 데에 근간이 되었다.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적어도 그걸 찾아내려는 시도) 없이는 길을 잃기 쉽상이다. 실무적인 의사결정 레벨로 이 깨달음을 옮겨와보면, 가장 주되게는 우리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특정한 형태여야 한다는 믿음을 폐기했다. (product 와 service 를 다루는 관점과 관련해서 흥미롭게 살펴봤던 건 퀄트릭스와 서베이 몽키의 사례다. 이견의 여지는 다양할 수 있겠으나 여전히 이 글은 강력 추천!) 더 좁게는 마케터를 완전 대체한다는 목표의 마케팅 product를 상상하는 것보다 마케터의 손/발을 생생히 덜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따라서 마케터 또는 마케팅 비즈니스는 그 ‘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를 그려보기로 했다. 나아가 앞선 모든 이야기는 결국 ‘업’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AI 및 AI를 활용하는 공급자가 아니라 고객의 사이드로 생각의 전환이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고객지향이라는 가치의 외연을 훨씬 넓혀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세일즈부터 오퍼레이션까지 고객의 UX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고객이 무언가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그 말 아래에 있는 (숨긴 또는 고객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
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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