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서평 문집

김광섭 -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음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서평] 이 시를 선택한 이유는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이라는 것을 통하여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 시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1연에서 시인은 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별이 자신을 바라보며 밝게 빛나는 것이 시인과 별이 운명적으로 맺어진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연에서는 점점 밤이 깊어가며 서로를 계속 바라보던 별과 시인들중 별은 점점 더 밝아지며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가고 시인은 점점 짙어지는 어둠으로 모습이 사라지게 되어갑니다. 이후에 별은 새벽이 밝아오면서 모습이 사라지게 될것이고 시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죠. 이것은 밤이라는 짧은 시간대에 생긴 운명적인 인연이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연에서는 이렇게 한순간처럼 느껴진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의문을 던지며 시가 끝나게 됩니다. 이는 그저 짧은 순간의 인연이 그저 헤어짐이라는 것으로 끝나지만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시에서 다루고있는 내용인 밤 이라는 짧은 시간대 동안 우연히 만난 별과 시인, 그리고 두 존재의 헤어짐 이후의 다른 곳에서의 또 다른 만남은 인생이라는 길면서도 짧은 시간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와 같다고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숙명적 존재인 인간에 대해 밤하늘의 빛나는 별과 그 별을 지켜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 시는 불교의 인연설과 천문학적 관점이 담긴 거창한 시 라고 생각합니다.
  • 김영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서평]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선택한 이유는 샤갈의 "나와 마을"에서 받은 깊은 영감을 통해 두 예술작품의 교차점을 탐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더불어 시각 예술의 미적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시를 선택하였습니다. 시인 김춘수는 샤갈의 <나와 마을>이라는 작품에서 관념을 벗어난 순수한 이미지만으로 창작하고자 했습니다. 이 시에는 다양한 사물의 이미지들이 감각적인 언어로 드러나 있는데 특히 "이 마을에 '삼월'에 내리는 '눈'은 '사나이'의 '정맥'을 어루만지고 '날개'를 달고 내려와 마을을 덮으며 '겨울 열매들'을 '올리브빛'으로 물들게 하고 '아낙들'에게 '불'을 지피게 한다." 이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봄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잘 드러나고 마치 봄의 풍경이 현실세계가 아닌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김춘수는 시를 쓸 때 샤갈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색상을 시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샤갈의 "나와 마을"을 보면 붉은색, 올리브색, 파란색 등 여러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겨울밤 마을의 모습을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색들은 김춘수의 시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며 두 작품의 시각적 유사성이 나타납니다.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겨울에서 봄으로의 변화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드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봄의 생명력과 독자에게 힘찬 기운과 희망을 전달합니다.
  • 김영현
최승호 - 울음
뼈다귀가 가죽을 내미는 늙은 것이 털이 빠지고 웅크린 채 홀쭉한 뱃가죽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몰아쉰느 늙은 것이 쇠사슬에 목덜미가 묶인 채 짖어댄다. 짖어댄다. 교회당 종소리가 뎅그렁거리고 유난히 크고 밝은 금성이 번쩍번쩍거리는 새벽에 돌연 늙은 개의 짖음은 음울하고 서러운 늑대의 울음으로 변해 버린다. 시커먼 늑대의 울음이 새벽하늘을 시커멓게 적셔버린 이 시를 선택한 이유는 문학 작품이 특정 예술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가 시를 통해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시적 해석을 즐길 수 있고 단순히 하나의 시적 표현을 넘어서 예술과 문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을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개는 그 자체로 고독과 고통을 형상화한 예술적 상징이다. 자코메티는 개를 뼈만 남은 형상으로 조각하여 그 존재가 마치 고통과 빈곤을 견디며 살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작품에서 개는 단순히 동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궁극적인 고통과 그에 따른 존재의 불완전함을 표현한 상징적 존재다. 자코메티는 개를 통해 인간 존재의 고독과 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절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그 '절박한 형상'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존재론적 불안과 고통을 예술적으로 보여준다. 최승호의 시 울음은 자코메티의 개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 존재의 고독과 고통을 시로써 재구성한 작품이다. 시에서 등장하는 늙은 개는 자코메티의 작품이 지닌 고독한 존재감을 그대로 담고겨 있는데 "뼈다귀가 가죽을 내미는 늙은 것이"라는 첫 구절에서부터 그 개는 쇠사슬에 묶여 있으며 쇠약해져 털이 빠지고 울음조차 힘겹게 내뱉는다. 이 모습은 자코메티의 개처럼 고통에 찬 존재를 상징하지만 그 고통은 개의 고통이 아닌 인간의 고통처럼 느껴진다. 늙은 개의 짖음은 더 이상 단순한 소리가 아니며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의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개는 외롭고 춥고 병들어있다. 뒤에 나오는 "교회당 종소리가 뎅그렁거리고", "유난히 크고 밝은 개의 짖음"은 울음하고 서러워 늑대처럼 슬프게 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늙고 병든 개와 새벽녘 들려오는 종소리는 서로 '절망'과 '희망'을 상징함으로써 이 시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생명성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다. 이 시를 보고서 존재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외에도 예술 작품을 문학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예술 작품에서 느낀 감정을 다른 방법으로 풀어낸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의 내용이 워낙 어렵기에 이 시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 시에게 영감을 준 예술 작품을 탐구하고 함께 문학 작품을 보며 많은 영감을 느낄 수 있었다.
  • 김영현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서평] 처음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저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모순적이라고 느껴졌거든요. 그 의미를 깊게 고민해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 저에게는 이 말의 의미를 찾는것은 매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슬픔을 그저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인식하곤 했는데, 슬픔 속에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숨겨진 더 깊은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우리가 흔히 중요하게 여기는 성취감, 강인함 그리고 눈물과 같은 고통이 더 이상 자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시인이 어느 순간 자신에게 더 이상 특별한 자랑거리가 없다고 느끼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고 힘든 일을 겪고 눈물만 흘리는 것도 부질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 구절에서 시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슬픔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이라는 구절은 타인의 슬픔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고 깊이 공감하는 시인의 감정을 잘 드러냅니다. 이런 공감 능력은 결코 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강인함과 단단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며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진정한 슬픔의 의미인것이죠. 앞서 말했듯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시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슬픔은 단순히 약함을 상징하는 감정이 아니라 그 속에 더 깊고 성숙한 의미가 담긴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시인은 슬픔이 단순히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에서 더 깊이 있는 감정이며 그 슬픔을 통해 우리는 더 큰 공감을 할 수 있고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낸 것이였죠. 이 시를 통해 저는 슬픔이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감정임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경험이기 때문이죠. 시인이 말하는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슬픔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게 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 김영현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서평 ] 이 시를 고른 이유는 이 시가 사랑의 본질과 감정의 깊이를 독특한 상징을 통해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늘과 눈물이라는 이미지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드러내며 사랑의 복잡성과 진솔함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나에게 이 시에 대한 흥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의 제목을 보았을때 말 그대로 시인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는 시인줄 알았다.
  • 김영현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