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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평 문집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고
옛날 과거에는 제품의 디자인 보다는 기능을 더 중요시 하였다. 덜 고장 나는것, 더 오래 쓸수 있는것 등이 제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하며 여러 제품들이 이 요소들을 전부 소화해낼 수 있게 되자 이제는 기능보다는 오히려 외관의 모습에 더 신경을 쓰며 제품을 선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디자인에서 더 나아가 의미가 있는 디자인이 더 선호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 여러 사물의 디자인을 본다면 단순히 외관을 꾸미는 것이 아닌 제품의 기능과 같은 용도를 나타내는 디자인이 많다. 단순한 외관을 꾸미는 것이 아닌 의미를 담고 있는 디자인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관련된 도서를 찾아 보던 중 [디자인의 디자인] 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디자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저자가 겪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고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다. 여러 장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제 2장 <리디자인-일상의 21세기> 부분이였다. 리디자인은 말 그대로 '다시 디자인 한다' 라는 의미인데 책에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을 초기부터 다시 생각하며 누구나 아는 형태를 통해 디자인의 진짜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을 다시 새로운 시점으로 바라보며 다른 디자인으로써 다시 창작해내는 활동이다. 작가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만이 창조가 아닌 기존에 있던 것을 '미지화' 시키는 것 또한 창조이고 이러한 활동이 디자인을 재정립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여기서 자신이 직접 기획한 리디자인 전시회를 하였을 때를 예로 드는데 이때 다른 여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여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리디자인의 예시로써 사용하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이미 만들어진 작품들이 아닌 저자의 의뢰를 받아 만들어진 작품 또한 존재하였다. 그렇기에 저자의 생각만이 아닌 다른 아티스트들만의 특징이 담긴 작품들 또한 감상할 수 있었기에 이 부분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였다. 이 책에서는 단순한 제품의 디자인만이 아닌 공간의 디자인,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 능력, 디자인의 특성, 디자인의 감각 등 디자인에서의 매우 다양한 요소를 다루고 있다.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해하기 쉬운 말과 한가지 내용을 설명할때 핵심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기에 모든 내용들을 전부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책에서는 실용성 있고 아름다움 디자인 뿐만 아닌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고 재미를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알고있던 디자인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디자인의 개념을 배우게 되었고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과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디자인 감각을 기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것을 추천한다.
  • 김영현
방구석 미술관을 읽고
이 책은 여러 유명 예술가들의 전체적인 인생의 흐름과 이야기,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들과 그가 작품에 어떤 기법을 이용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책에 담겨있는 여러 예술가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예술가의 이야기는 '마르셀 뒤샹' 의 이야기였다. 마르셀 뒤샹은 어린 나이부터 예술가의 꿈을 기르며 당시 1900년대에 유행했던 기법인 입체주의 라는 기법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였는데 자신만의 독창성을 덧붙혀 '움직이는 입체주의'라는 인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카메라로 연속촬영한듯한 모습으로 그려내어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되는데 이 작품이 당시에 입체주의의 형식에 맞지 않는다며 전시를 거부당하게 된다. 이후 자유로운 창작을 억압당한 뒤샹은 '미술계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면서 보수적,폐쇠적인 상태로 새로운 미술을 배척한다.' 라고 생각하여 미술의 전형적인 형식을 아예 거부한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1913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부엌에서 쓰는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고정시켜서 그것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어. (중략) 다른 어떤 생각도 없었어. 그건 그냥 심심풀이였지" 실제로 그는 아무 의미 없는 원래 존재하던 사물들을 이어붙히는 식으로 아무 의미 없는 작품을 만들며 '작품에 꼭 어떤 의미가 있으라는 법이 있나?' 라고 물음을 던지며 미술계를 조롱하였다. 뒤샹은 작품을 창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것은 예술가 뿐만이 아닌 관객또한 함께 하는것이라 생각하며 아무 의미 없는 작품에 관객들이 직접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을 하나의 '생각의 놀이터'로 본 것이다. 이후 이런식으로 원래 존재하던 사물을 작품으로써 재창조 하는 것이 레디메이드 라는 기법으로 불리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고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예술과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가치관과 생각이 정말 진정한 예술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예술을 하는것, 창작 활동을 하는것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해보았는데 전형적인 형식에 묶여 있는것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림을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작품에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예술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압박에도 끝까지 자유로운 창작을 갈망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낸 마르셀 뒤샹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느끼게 되었고 그가 가지고 있던 예술의 가치관 등을 본받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마르셀 뒤샹 말고도 매우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들이 작품을 창작하며 가지고 있던 가치관들도 충분히 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미래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노력으로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만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이 책을 읽어보는것이 좋을 것 같다.
  • 김영현
생존을 위해 도덕성을 버릴 수 밖에 없던 사람들
응칠은 떠돌이 신세로 살아가며 배를 채우기 위해 산에서 송이를 따고 남의 집 암탉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이 있는 마을로 들어서던 도중 성팔이를 만나게 된고 성팔이에게 응오네 밭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성팔이를 의심한다. 원래 성실한 농부였던 응칠은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여 절도를 일삼고 도박에 빠져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꾸는 인물이다. 응칠이가 응오를 찾아 온 것은 빌붙고자 온것이 아니라 너무 힘든 상황에 혈족인 응오를 그리워서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응오 또한 원래는 매우 착실하게 일을 하는 농부였지만 벼를 베어봤자 오히려 세금만 늘어날 뿐 제 손에 떨어지는 것은 없는것을 알아 벼를 베지 않는다. 지주와 김 침판이 벼를 베라고 독촉하여도 "계집이 다 죽게 됐는데 벼는 다 뭐지유우"라는 말 뿐이다. 응칠이는 아까 소식을 전했던 성팔이를 의심하며 수사를 해보지만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 이후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을 하는데 갑자기 한 그림자가 나타나 벼를 훔지는 것을 보았고 바로 몽둥이를 휘둘러 허리께를 내려쳤다. 그리고 도둑의 복면을 벗기자 응칠은 절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도둑이 응칠이의 동생 으옹였던것이다. 응오는 소작료가 부담스러워 자신의 밭의 벼를 자신이 훔치는 말도안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였고 당시 전 국민의 80%가 농민이였음을 감안하면 보편적인 근현대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농민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만무방>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응칠은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봤자 오히려 빚만 늘어나기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그저 버섯을 따 먹거나 도박과 도둘질을 하며 생활한다. 응칠의 동생 응오 또한 작물을 수확해봤자 빚만 늘어나기에 낮에는 아예 일을 하지 않고 밤에 몰래 자신의 밭의 작물을 자기가 도둑질하는 요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보았을때 일제강점기 당시에 일본의 압박과 수탈로 인해 도둑질과 도박과 같은 '남의것을 빼았는' 행위 없이는 끼니를 굶으며 제대로 생활 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비윤리적이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행동을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작물을 자신이 도둑질을 하는 행위를 하겠는가?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으나 일제강점기 시대의 농민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 왔을지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이 소설을 읽으면 일은 안하고 도박과 도둑질만 하는 응칠과 자신의 작물을 자신이 도둑질하는 응오의 행동들이 어리석고 웃기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오히려 손해만 생기고 주변 사람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상황속에서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이 인물들의 행동을 판단할 때는 '왜 그들이 도덕성을 버릴 수 밖에 없었을까' 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내가 응오였다면 저런 상황속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일제강점기 시대 속 농민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았을때 오히려 응오의 행동이 현명하다고 느껴졌고 나또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당시 농민들의 고통만 말하는 것이 아닌 부조리한 사회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묘사한다고도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당시만이 아닌 현재 사회도 우리가 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인지 고민해보고 이러한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영현
냉혹하고 외로운 겨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배경은 서울이며 시대는 1960년대로 산업화가 시작되었을 무렵의 시기이다. 소설은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 로 시작하는데 이는 당대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배경 묘사에서 김승옥 특유의 건조한 문체가 나타남을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산업화가 시작되는 당시의 쓸쓸한 느낌을 보여준다. 이처럼 구체적인 배경 묘사를 함으로써 무관심한 사회의 분위기를 탁월하게 표현하여 소설의 분위기가 잘 와닿는다. 소설에는 3명의 인물 '나','안','사내' 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인물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고졸에 시골 출신인 병사계 직원이며 '안'은 부자집 장남의 대학생이다. 이 둘의 대화중 둘다 공통적인 주제인 꿈틀거리는 것에 대한 주제로 얘기를 하지만 '나'는 만원 버스 안에서 밀착하게 되는 여자의 아랫배에서 꿈틀거림을 느꼈고 '안'은 데모에서 꿈틀거림을 느끼는 것을 통해 서로의 가치관또한 다르다는 것을 옅볼 수 있다. 이중에서 1960년대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사내'이다. '사내'는 돈때문에 아내의 시체를 팔고 고통스러워 하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로 자본주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경제력이 없어 슬픈 한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잘 들어난다. 실제로 당시에는 '사내'같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내가 자살을 한 후에 안이 "그 양반 역시 죽어버렸습니다." , "난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 또한 "역시" 라고 말하는 점을 통해 나와 안은 사내의 자살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안은 이에 대해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말하며 그 둘이 뭘 하던 사내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는 듯이 말한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드는데 <정말로 사내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을까?>이다. 안은 "혼자있기 싫다" 라고 중얼거리는 사내를 무시하고 자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사내에게 "혼자 주무시는게 편하실 거예요" 라고 말하며 각자 방을 쓰며 사내를 홀로 방치하였고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라는 나의 제한을 무시한다. 안은 애초에 사내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 미용실에 난 화재를 구경할때 안은 ["화재 같은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 밤이 미리 봤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저 화재는 김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점을 통해 안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없는 사람이며 사내에 대한 생각도 이와 다를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나 또한 사내를 위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당시 사회의 개인주의 적이고 남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던 사회가 이 사내를 죽게 만든 것이다. 1960년대의 냉혹한 현실과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는 이소설을 통해 우리는 타인에게 공감 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 김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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