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리고 빛

한 호흡의 멈춤 속에서 존재를 듣다.
나의 세계로 가는 초대장
『람타 화이트북』을 처음 만난 것은 저에게 명상을 처음 가르쳐주신 선생님을 통해서 였습니다. “한때 저는 『람타 화이트북』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람타가 겪은 삶의 고통이 마치 저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입니다. 릴라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의 또 다른 이름인 '바람'을 떠올릴 때는 '릴라'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이 말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날 처음 들었던 ‘람타’라는 이름, 그리고 그 책의 무게감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선물로 주신 책장을 펼치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고통 속에서도 그토록 자유로운 말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말, 그는 바람이 되었을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날 이후 조용히 제 안에서 살아 숨 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답을 찾기 위해 애썼고, 어떤 날은 그저 그 질문 안에 머물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는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초대장을 어떻게 펼쳐보았는지를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해설도 설명도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마음의 씨앗이 제 안에서 어떻게 자라났는지를 담은 고백입니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그 씨앗 하나를 건넵니다. 이 초대장은 어쩌면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언젠가 이런 문장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신이었습니다.” 1장.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 문장이 처음 떠오른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주 평범한 오후였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나는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물음은 갑작스럽고도 깊이 있었고,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계속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내 이름, 나이, 직업, 성격, 말투, 기억들… 그 모든 것이 내가 나를 설명하기 위해 늘 사용해온 것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날따라 그 모든 것이 나 같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것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누구지? 그 무렵, 명상 선생님께서 『람타 화이트북』을 건네주셨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조심스레 책장을 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 낯선 어휘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신이었습니다.” “생각이 현실을 만듭니다.” “지금 이 순간이 진짜입니다.” 그 말들을 읽고도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문장보다 깊은 무언가가 가슴을 뚫고 지나간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은 더 이상 머리로 던지는 철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해야 할 진실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여전히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지금, 그 질문을 마음 어딘가에 꺼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초대장을 펼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2장. 의식이라는 이름의 렌즈 ‘의식’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을 때 낯설고 무거웠습니다. 뇌과학인가, 영성인가, 철학인가. 사실 어느 쪽이든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왠지 조금은 어려운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괜히 말을 아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점점, 그 단어가 내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 같은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세상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땐 길가의 나무도 환하게 인사하는 것 같았고, 마음이 어두울 땐 햇살조차 미워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무엇이 진짜였을까요? 나무가 변한 걸까요, 햇살이 바뀐 걸까요? 아니었습니다. 바뀐 건 내가 쓰고 있는 ‘의식의 렌즈’였습니다. 람타는 말했습니다. “의식이 현실을 만든다.” “당신이 어떤 관점으로 이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그 세계가 당신 앞에 펼쳐집니다.” 그 말은 처음엔 너무도 당연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정말 그게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떤 감정에 머물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내가 마주하는 세계의 색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같은 장면을 보고 감사하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원망합니다. 모두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두가 자신의 의식이 만든 현실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현실’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투영된 하나의 결과라는 걸 느꼈습니다. 의식은 어떤 날은 확대경이 되었다가, 어떤 날은 거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늘 거기 있었지만, 나는 그 존재를 이제야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본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렌즈 너머, 어쩌면 내가 정말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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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2
16. 존재의 기술을 연습하는 방법들 존재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건 안쪽을 자주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늘 움직이고 반응하고 말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존재를 연습한다는 건 ‘나를 잘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스치고, 감각이 머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예를 들어, 감정이 올라올 때 그걸 ‘설명’하려 들지 않는 연습. 왜 슬픈지, 왜 화가 나는지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그 감정의 색을 바라보는 연습. 그건 존재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고도 괜찮다고 여기는 시간. 가끔은 판단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택하지 않아도, 정답을 내리지 않아도,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 일. 그렇게 나는 ‘결론 없는 시간’과 친해지려 한다. 마음이 불안해도, 지금 이 감정을 바로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해야만 하는 일’ 말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그게 내 마음 어디쯤에서 울리고 있는지를 천천히 느껴본다. 존재의 기술은 무언가를 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그저 거기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삶.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울리는 마음. 결정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시간이 품고 있는 의미. 나는 매일 그 기술을 아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의 삶은, 늘 연습 중이어도 충분하니까. 17. 침묵과 고요의 가치 소음에 익숙한 세상에서 고요는 어쩌면 가장 낯선 풍경이다. 말이 끊기고, 움직임이 멎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사라질 때,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엔 침묵이 불편했다. 무언가 잘못된 듯한 공기, 어색함을 채우려 애쓰는 내 몸의 반응. 하지만 조금씩 그 침묵을 견디기 시작하자,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는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는 상태였다. 하루를 마치고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창밖에서 아주 멀리 들리는 바람 소리, 냉장고의 작은 진동음, 내 숨소리.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삶은 늘 이렇게 조용히 말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바빠서, 너무 시끄러워서, 그 말을 듣지 못했음을.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는 ‘내면이 살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 내면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서서히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도적으로 고요한 시간을 만든다. 음악도 끄고, 핸드폰도 멀리 두고,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처음엔 허전하고, 어딘가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이 되었다. 고요는 나를 나로 회복시킨다. 침묵은 말보다 정확하게 나를 안아준다. 소유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그저 이렇게 ‘존재하는 나’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주는 시간.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난다. 18. 나에게 집중하는 법 – 자아의 중심 찾기 나는 자주 헷갈렸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과 ‘나만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전자는 성찰처럼 들리고, 후자는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래도록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어딘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말은 다르게 다가왔다. 진짜로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존재하는 삶의 출발점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에게 집중한다는 건, 세상으로 향하던 시선을 잠시 거두고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이다.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인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디가 단단히 굳어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걸 바라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내가 낯설고, 때로는 내가 싫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조금씩 중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이, ‘나’라는 중심에 닿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용해지는 것이다. 존재 중심의 삶은 나의 중심과 자주 만나는 삶이다. 그 중심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자라고, 고요 속에서 말을 걸어온다. 그 중심이 또렷해질수록 나는 외부의 조건에 덜 흔들린다. 남들이 뭐라 하든, 지금 이 선택이 옳은지 헷갈리더라도, 내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더 단단해진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는 건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 중심이 있을 때, 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19. 삶의 방식은 선택이다. 살다 보면 삶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원하는 것도 아닌데 하게 되고,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그게 습관이 되고, 어느새 ‘내 삶’이 되어버린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의 질문을 붙들게 되었다. “지금 이 삶의 방식은 내가 고른 걸까?”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이 얼마나 ‘비의식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지적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방식은 광고, 규범, 타인의 기대, 그리고 무의식적인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그 말을 읽고 나니, 내 일상의 습관들이 전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인지. 존재 중심의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 흐름에서 벗어나 다시 묻고, 다시 골라보는 용기다.
  • Lila
바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1
『바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에리히 프롬을 읽고 다시 생각한 존재하는 삶 목차 1. 존재하는 삶 존재에 대한 첫 질문, “나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 2. 소유의 삶에 익숙한 나 갖고 있어야만 안심이 되는 삶의 패턴들 3. 에리히 프롬의 문장과의 첫 만남 낯선 질문에서 시작된 사유의 시간 4. 소유냐 존재냐 – 두 삶의 태도 프롬이 말하는 삶의 방식 비교 5. 존재의 기술 - 배워야 하는 삶의 방식 존재는 감각이자 연습이다 6.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 내 삶을 돌아보며 관계와 인정 욕구에 기대어온 나 7. 존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여기를 사는 감각과 순간들 8. 소유의 언어 vs 존재의 언어 말의 방식이 바꾸는 삶의 무게 9. 존재하는 사랑 사랑마저 소유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10. ‘있음’의 힘 – 나를 지우지 않는 삶 존재는 사라짐이 아니라 선명함이다 11. 프롬이 읽은 불교와 존재 사성제와 명상적 삶, 동양과 서양의 접점 12. 소비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가지려는 나’에서 ‘살아내는 나’로 13. 존재의 일기 – 있는 그대로의 하루 쓰기 하루를 쓰는 연습, 존재를 기록하는 방법 14. 관계 속 존재 – 상대를 소유하지 않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 15. 소유 중심 사회를 살아가는 법 존재의 가치를 지키는 작지만 현실적인 선택들 16. 존재의 기술을 연습하는 방법들 반복 가능한 작은 실천들로 존재를 훈련하기 17. 침묵과 고요의 가치 멈춤 속에서 만나는 내면의 소리
  • Lila
숨 3
5부 ― 그때의 나를 품을 때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용서되지 않은 순간이 하나쯤 있다. 그때의 말, 그때의 표정, 그때의 나.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 믿지만, 그 조용한 파편들은 여전히 마음 안 어딘가에 남아 나를 향해 속삭인다. “그때의 나를 봐줘.” 용서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일이다. 그때의 나를 품을 때, 나는 비로소 다시 숨 쉬게 된다. 명상의 문 용서는 결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용서해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그건 이미 또 다른 판단이 된다. 용서는 마음이 고요해질 때 자연히 피어나는 꽃이다. 그 꽃은 억지가 아니라, 이해에서 피어난다. “그때의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한 문장이 마음을 녹인다. 용서란 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실천의 문 오늘 하루, ‘그때의 나’를 하나 떠올려보세요. 실수했던 나, 화를 냈던 나, 무너졌던 나. 그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말해봅니다. “그때도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때의 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 말이 눈물로 변하든, 미소로 변하든 괜찮습니다. 그건 연민이 숨을 들이쉬는 순간입니다. 하루의 문장 용서는 결심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순간, 이미 용서는 이루어져 있다. 숨의 여운 연민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나를 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품을 수 있다. 6부 ― 고요는 나의 본래 목소리 모든 여정의 끝에는 침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종착이 아니라 귀향이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듣는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세상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숨소리를. 말을 멈추면, 삶이 말을 건다. 생각이 멈추면, 존재가 피어난다. 그때 들리는 소리 — 그것이 바로 나의 본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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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2
3부 ― 흘러가서 모두를 적시는 향기 사랑은 붙잡는 마음에서 피지 않는다. 사랑은 흘러가는 바람처럼, 그저 지나가며 세상을 적신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을 때, 그 손끝에 “이 사람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깃들면 사랑은 곧 두려움으로 변한다. 하지만 사랑이 ‘나 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임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가 떠나도, 상황이 변해도, 그 향기는 여전히 피어난다. 명상의 문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서 자연히 피어나는 향기다. 사랑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상태로 존재하느냐에 더 가깝다. 마음이 닫히면 사랑은 멈춘다. 마음이 열리면 사랑은 흐른다. 사랑은 억지로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본래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는 일이다. 실천의 문 오늘 하루, 사랑을 표현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따뜻함에 숨을 맞춰보세요. 잠시 눈을 감고 속삭이듯 말해봅니다. “나는 사랑이다.” 누구에게 주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숨쉬는 그 자체가 사랑임을 느껴보세요. 그 순간, 사랑은 모든 곳으로 흘러갑니다. 하루의 문장 사랑은 흘러가서 모두를 적신다. 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숨의 여운 사랑은 향기처럼, 붙잡을 수 없지만 언제나 존재한다. 그대의 한숨조차, 누군가의 꽃잎을 흔들고 있을지 모른다. 4부 ―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쉼
  • Lila
숨 1
목차 프롤로그 ― 들숨의 시작 숨은 생명의 리듬이자 존재의 대화이다. 이 글은 그 숨을 다시 기억하는 여정이다. 1부 ― 고통은 나를 깨우는 문 고통을 바라보는 순간, 고통은 사라진다. 2부 ― 잃은 게 아니라 잊고 있었을 뿐 자유는 이미 있던 나를 기억하는 일이다. 3부 ― 흘러가서 모두를 적시는 향기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향기다. 흘러가서, 모든 것을 적신다. 4부 ―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쉼 신뢰란 누군가를 믿는 일이 아니라 이 순간의 생명을 믿는 일이다. 5부 ― 그때의 나를 품을 때 용서는 결심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연민은 약함이 아니라, 나를 품는 용기다. 6부 ― 고요는 나의 본래 목소리 말이 멈추고, 존재가 말할 때 그대는 이미 깨어 있다. 프롤로그 ― 들숨의 시작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의식하지 못한 채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단순한 호흡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비로소 “숨” 이란 단어가 생명처럼 느껴진다. 숨은 말보다 먼저이고, 생각보다 더 깊다. 숨은 나의 안부이자, 세상의 대답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세상이 멀어진 것 같을 때, 숨을 느껴보라. 그 짧은 리듬 안에 당신이 찾던 평화가 이미 있었다. 1부 ― 고통은 나를 깨우는 문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때로는 상실의 얼굴로, 때로는 관계의 언어로, 또 어떤 날은 내 안의 공허로 온다. 우리는 본능처럼 그 고통을 밀어내려 하지만, 고통은 밀어낼수록 더 깊이 들어온다. 왜냐하면 고통은 벌이 아니라, ‘멈추어 나를 보라’는 초대 이기 때문이다. 명상의 문 고통이 일어날 때, 그 안에는 늘 하나의 생각이 숨어 있다. “이 일은 일어나면 안 돼.” 그 생각이 고통의 뿌리다. 그러나 당신은 그 생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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