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를 읽고
600년을 지켜본 나무의 자리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600년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팽나무, 사람들은 그 나무를 ‘할매나무’라 부른다. 『할매』를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도 결국 그 나무였다. 할매나무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의 시간을 모두 통과해온 존재다. 전쟁도, 가난도, 떠남도, 죽음도 그 나무 앞에서는 하나의 풍경처럼 지나간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늙고 사라지지만 나무는 그 자리에 남아 모든 것을 보았다는 사실만을 품고 있다. 이 소설에서 ‘할매’ 역시 그런 존재다. 말수가 적고, 자신의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가족의 시간 속에 묻혀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할매의 삶은 할매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시간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아도, 평가받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오래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의 삶을 자꾸 재단하려 했던 내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늘 묻는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어떤 인생이었는지. 그러나 할매나무 앞에서는 그 모든 질문이 조금 무력해진다. 그 나무는 묻지 않고, 답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할매』는 사람의 삶을 자연의 시간 속에 다시 놓아본다. 인간의 역사는 너무 짧고, 판단은 너무 성급하다는 사실을 팽나무의 침묵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연민을 요구하지 않는다. 불쌍하다고 말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조용히 요청할 뿐이다. 할매나무는 끝까지 남는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도, 기억이 흐릿해진 뒤에도. 그 존재는 말하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나무를 보며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할매』는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읽고 난 뒤, 마치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본 것처럼 마음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한다. 그 자리는 설명으로 채워지지 않고, 판단으로 정리되지도 않는다. 그저 오래 남아 다음 말을 늦추게 만든다.
- L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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