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는 줄거리를 따라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다. 의미를 붙잡으려는 순간마다 미끄러지고, 소리와 리듬, 이미지가 먼저 관객을 통과한다. 설명은 뒤로 밀리고, 감각이 앞서 나간다.
처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사막 한가운데서 딸을 찾는다는 이유. 그 목적은 인물들을 움직이고, 관객에게도 길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깊어질수록 그 목적은 점점 힘을 잃는다. 딸을 찾는다는 이유는 끝내 아무것도 보호하지 못하고, 그저 버티기 위한 이름처럼 남는다.
에스테반의 죽음은 그 전환점이다. 서로 협력하던 장면 바로 다음에 찾아오는 그 순간은 서사적 준비 없이 현실처럼 들이닥친다. 그 이후 영화의 공기는 분명히 달라진다. 이 세계에는 ‘다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설명 없이 각인된다.
사막의 좁은 길을 보며 천국과 지옥 사이의 ‘시라트’가 저기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지만, 비극은 그 경계가 아니라 평지에서 반복된다. 의미를 기대한 자리마다 영화는 한 발씩 비켜서고, 관객은 확신 없는 상태로 남겨진다.
모두의 춤이 절정을 향해 갈 때, 지뢰가 터진다. 리듬과 음악, 상승하던 몸의 흐름이 아무 예고 없이 끊기고 파열된다. 그 장면은 반전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다. 아름다움은 가장 고조된 순간에 가장 무자비하게 깨질 수 있다는 선언.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언어는 사운드다. 전자음악의 비트는 축제처럼 고조되다가 어느 순간 장송곡처럼 들린다. 애도와 열광, 생존과 소멸이 같은 리듬 안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장송곡을 전자음악의 비트로 듣는 기분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신은 말하지 않는다. 개입하지도 않는다. 있다면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자리다. 그래서 시라트는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보고 난 뒤 남는 것은 줄거리보다 이미지, 대사보다 소리, 의미보다 감각이다.
담담하게 끝나지만, 감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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