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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2

Lila
2025년 10월 17일8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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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존재의 기술을 연습하는 방법들

존재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건
안쪽을 자주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늘 움직이고 반응하고 말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존재를 연습한다는 건
‘나를 잘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스치고, 감각이 머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예를 들어,
감정이 올라올 때
그걸 ‘설명’하려 들지 않는 연습.
왜 슬픈지, 왜 화가 나는지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그 감정의 색을 바라보는 연습.
그건 존재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고도 괜찮다고 여기는 시간.
가끔은 판단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택하지 않아도,
정답을 내리지 않아도,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 일.
그렇게 나는
‘결론 없는 시간’과 친해지려 한다.
마음이 불안해도,
지금 이 감정을 바로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해야만 하는 일’ 말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그게 내 마음 어디쯤에서 울리고 있는지를
천천히 느껴본다.
존재의 기술은 무언가를 하려는 몸짓이 아니라,
‘그저 거기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삶.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울리는 마음.
결정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시간이 품고 있는 의미.
나는 매일 그 기술을
아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의 삶은,
늘 연습 중이어도 충분하니까.

17. 침묵과 고요의 가치

소음에 익숙한 세상에서
고요는 어쩌면 가장 낯선 풍경이다.
말이 끊기고, 움직임이 멎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사라질 때,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엔 침묵이 불편했다.
무언가 잘못된 듯한 공기,
어색함을 채우려 애쓰는 내 몸의 반응.
하지만 조금씩 그 침묵을 견디기 시작하자,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는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는 상태였다.
하루를 마치고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창밖에서 아주 멀리 들리는 바람 소리,
냉장고의 작은 진동음,
내 숨소리.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삶은 늘 이렇게 조용히 말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바빠서,
너무 시끄러워서,
그 말을 듣지 못했음을.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는
‘내면이 살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 내면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서서히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도적으로 고요한 시간을 만든다.
음악도 끄고, 핸드폰도 멀리 두고,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처음엔 허전하고,
어딘가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나를 가장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이 되었다.

고요는 나를 나로 회복시킨다.
침묵은 말보다 정확하게 나를 안아준다.
소유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그저 이렇게 ‘존재하는 나’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주는 시간.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난다.

18. 나에게 집중하는 법  – 자아의 중심 찾기

나는 자주 헷갈렸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과
‘나만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전자는 성찰처럼 들리고,
후자는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래도록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어딘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말은 다르게 다가왔다.

진짜로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존재하는 삶의 출발점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에게 집중한다는 건,
세상으로 향하던 시선을 잠시 거두고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이다.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인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디가 단단히 굳어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걸 바라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내가 낯설고,
때로는 내가 싫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조금씩 중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이,
‘나’라는 중심에 닿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용해지는 것이다.
존재 중심의 삶은
나의 중심과 자주 만나는 삶이다.
그 중심은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자라고,
고요 속에서 말을 걸어온다.
그 중심이 또렷해질수록
나는 외부의 조건에 덜 흔들린다.

남들이 뭐라 하든,
지금 이 선택이 옳은지 헷갈리더라도,
내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더 단단해진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는 건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 중심이 있을 때,
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19. 삶의 방식은 선택이다.

살다 보면
삶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원하는 것도 아닌데 하게 되고,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그게 습관이 되고,
어느새 ‘내 삶’이 되어버린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의 질문을 붙들게 되었다.
“지금 이 삶의 방식은 내가 고른 걸까?”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현대인이 얼마나 ‘비의식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지적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방식은
광고, 규범, 타인의 기대,
그리고 무의식적인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그 말을 읽고 나니,
내 일상의 습관들이 전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인지.
존재 중심의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 흐름에서 벗어나
다시 묻고, 다시 골라보는 용기다.

나는 요즘 자주 멈춘다.
일을 선택할 때도, 관계를 유지할 때도,
하루의 리듬을 짤 때도.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나는 정말 이걸 원하나?”
“이건 나에게 의미 있는가?”
“이게 나를 더 살아 있게 만드는가?”
그렇게 질문하고 선택하는 삶은
느리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나를 지키는 힘이 된다.
삶은 결국
무엇을 선택하느냐로 구성된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붙잡고,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를
하루하루 결정해 나가는 일.
나는 완벽한 선택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선택을 했는지는
잊지 않고 싶다.
삶의 방식은
남들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그건 내가
매일매일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20. 나는 존재한다, 고로 충분하다

우리는 늘 어떤 ‘이유’를 가져야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를 잘하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거나,
결과를 보여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존재가 불안해진다.
마치 사라져버릴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그랬다.
인정받아야 안심이 됐고,
계획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루가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 위에 세운 존재는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기에,
나의 존재도 늘 불안정해진다.

에리히 프롬은 존재를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 상태는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쉬었다.
그 한 줄이 오래도록 메어 있던 마음의 매듭을
살짝 풀어준 느낌이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충분하다.’

이 문장은 나에게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어떤 감정이 올라오든,
무엇을 해내지 못했든,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하루는 충분한 하루다.

존재하는 삶은
끊임없는 증명과 성취의 삶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살아가는 삶이다.
나는 지금도 완전히 그 삶을 살고 있진 않다.
하지만 매일 그 문장을
조용히 되새긴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충분하다.’
그 말 안에 머물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21. 가을이라는 계절, 존재라는 사유

가을은 이상한 계절이다.
무언가 끝났다는 기분과
무언가 새로 시작된다는 감각이
같이 찾아오는 시기.
아침과 저녁의 공기가 다르고,
햇살도 묘하게 기울어 있다.
나뭇잎은 색을 바꾸고,
바람은 조금 더 길게 머문다.

이 계절은 우리에게
가만히, 조금은 천천히 살라는 말을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유난히 가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지나왔으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그 사유의 끝에서 늘 떠오르는 건
‘존재’라는 말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존재 중심의 삶은
바로 이 계절의 감각과 닮아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
있는 것을 바라보고,
지나가는 것을 놓아주는 태도.
가을은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조용히 흘려보낸다.
꽃이 지고,
잎이 떨어지고,
햇살이 누그러지는 걸
그저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 보여준다.
나는 그런 가을이 좋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기의 시간을 살아내는 계절.

우리는 자주
삶의 의미를 거창하게 찾는다.
하지만 가을을 보고 있으면
존재하는 삶이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계절이 올 때마다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지금 여기 있는 나,
그 자체로 괜찮아.”

22. 삶을 바꾸는 질문

질문 하나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질문은 방향을 틀게 하고,
어떤 질문은 멈춰 서게 하며,
어떤 질문은 그동안 보지 못한 나를 보게 해준다.
에리히 프롬의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되뇌게 된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질문을 마주하는 건 쉽지 않았다.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보다
버티고 있다는 감각이 더 익숙했던 날들.
‘살아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살아내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날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내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걸까?
누구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는 걸까?
나는 정말 나로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스쳐 지나간 마음들을
잠시 멈춰 세우고,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존재 중심의 삶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삶이다.
그 질문은 삶을 의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을
일상의 작은 틈마다 꺼내본다.
산책 중에도, 문득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볼 때도,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존재하고 있는가?”
그 질문을 자주 꺼낼수록
삶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작은 기쁨이 되어 돌아오고,
잊고 있었던 내 감정들이 조용히 말을 건다.
질문 하나가
삶의 속도를 바꾸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며,
나라는 사람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삶은
어디서부터 달라졌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23. 함께 존재하는 공동체

존재 중심의 삶은
혼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만큼,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람을 평가하거나
정리하거나 이해하려고만 한다.
그래야 관계가 편하다고 느끼고,
불확실함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관계는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로 연결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공간을 꼭 함께 하지 않아도,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해지는 관계가 있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 사회가 경쟁과 소유 중심의 관계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관계마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에게 어떤 가치를 더하는가’로만 측정된다고.
그런 관계 속에서 사람은 점점 피곤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고립되어 간다.
존재 중심의 공동체는 다르다.
이해보다 공감이 우선이고,
조언보다 경청이 중심이다.
누군가가 어떤 모습이든 그냥 함께 있어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나도 그런 공동체 속에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감각을 느꼈다.
말이 막힐 때,
침묵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들.
그들과 있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있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존재 중심의 공동체는
함께 성장하고,
함께 멈추고,
함께 괜찮아지는 공간이다.
그건 화려하지 않지만
참 단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공동체는
더 잘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으니까.

24. 존재로 살아내는 용기

존재 중심의 삶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얼마나 가졌느냐",
"얼마나 앞서 있느냐."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종종 작아지고,
나의 속도와 형태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가 많다.
소유 중심의 세상에서
존재 중심의 삶을 지켜낸다는 건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나 자신으로 살아내겠다는
작고 단단한 용기다.
모두가 빠르게 달릴 때 잠깐 멈춰 서는 용기.
모두가 비교할 때 비교하지 않기로 하는 용기.
모두가 채우려 할 때 비워내기로 결정하는 용기.
그 용기는 조용하지만 결코 작지 않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선택이 내 존재를 지켜주는가?"
그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존재하는 삶이란,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태도,
속도를 늦추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 자세.
그건 타인을 향한 투쟁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책임이다.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바람처럼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흔들리되 사라지지 않는
단단함을 품은 상태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에게
작은 다짐을 건넨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그저, 나로 살아내자."
그 다짐이
이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나를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단 하나의 줄기,
존재의 숨결이다.

25. 바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이 글의 시작은
문득 떠오른 한 문장이었다.
“바람이 되고 싶다.”
그때는 그 말이
그저 무겁고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무엇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저 흐르고, 지나가고, 가볍지만,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누구의 틀이 되지도 않고,
누군가를 억누르지도 않으며,
그저 존재 자체로 충분한 사람.
에리히 프롬이 말한 존재 중심의 삶은
나에게 아주 오래된 갈망의 언어였다.
어쩌면 나는 늘 그 삶을 꿈꿔왔고,
이제야 그것을 이름 붙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쉽게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지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 글을 썼고,
어쩌면 당신에게도
작은 바람 한 줄기를 띄우고 싶었다.
바람이 되고 싶은 나에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말을 건넨다.
“존재하느라 수고했어.
가진 것보다, 해낸 것보다
그저 살아 있는 오늘의 너로 충분해.”
이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더 이상 같은 일상은 아닐 것이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존재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 마음이 언젠가 다시 흔들릴지라도,
나는 또 이 글을 펼쳐보며
다시 다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바람처럼 존재하겠다.”

부록 | 존재하는 삶을 위한 독서와 사유

참고문헌

본 글의 주요 내용과 사유의 뿌리가 된 책들입니다.

1.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홍신문화사
2. 에리히 프롬, 『존재의 기술』, 문예출판사
3.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4. 알랭 드 보통, 『불안』, 은행나무
5.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동서문화사
6. 틱낫한, 『화내지 않는 연습』, 불광출판사
7.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8. 이반 일리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따비
9.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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