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이
영웅의 죄책감, 그리고 삶으로 돌아오는 길 오래전부터 영웅 서사를 좋아했다. 예전에는 주인공의 화려하고 놀라운 능력에 먼저 시선이 갔다. 강하고, 빠르고,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과업을 완수해 내는 존재.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오디세이〉는 첫 장면부터 압도적이었다. 트로이 목마, 그리고 넓게 펼쳐진 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연출은 내가 알고 있던 고전 신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수었다. 목마 안으로 찔러 넣은 칼에 사람이 베이고, 흘러나온 피를 닦아내는 그 짧고 세밀한 디테일에서부터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다를 것임을 직감했다. 함께 본 일행은 고전적인 대작을 기대했다가 당황했다고 했다. 확실히 영화는 선명할 정도로 현대적인 감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현대성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거대한 신화와 전쟁의 서사 속에서도, 결국 그 중심에 있는 '인간'의 내면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웅들은 때로 지독할 정도로 냉정해 보인다. 마치 목적을 위해 감정을 통제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달랐다. 그에게는 살아남은 자의 무거운 부채의식과 끝내 돌아가지 못한 이들에 대한 깊은 상실감, 죄책감이 있었다. 영웅은 완벽하기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음에도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감당하려 애쓰기에 위대하다. 영웅에게는 그 강함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때로는 거대한 삶의 형벌이 된다. 멈춰버린 듯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노를 젓기 시작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어느 순간 내 인생과 닮아 보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뒤에도 삶은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한동안 멈춰 서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어쨌든 다시 길을 걸어야 한다. 영웅은 모든 것을 완벽히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당해야 할 상처와 죄책감을 껴안은 채 그럼에도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이다. 이제는 그 힘 뒤에 숨은 상처와 책임, 죄책감과 사랑이 보인다.
L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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