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마음은 시끄러운데 주변은 너무나 조용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들 나와 비슷한 무게를 안고 나왔던 걸까. 1920년대에 태어난 엘리트 부부. 똑똑해서 의대까지 갔던 딸이 조현병으로 갑자기 낯설어지고, 무서워졌다. 그 시절 정신병원엔 학대가 심심찮았다고 한다. 딸을 지키려는 마음과, 아픈 딸이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아마 한 몸으로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엘리트일수록 "정상"이라는 틀 밖으로 밀려나는 걸 견디기 어려웠을 테고.비난하고 싶지도, 연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빠르게 발견해 치료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 그런 생각도 스쳤지만, 그건 지금의 시선으로 그때를 재단하는 의미없는 말일 뿐이었다. 그 부부에게는 애초에 그런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열쇠로 가두는 것과,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는 것. 방식은 정반대였지만 기저에 깔린 건 같아 보였다. 감당할 수 없는 걸 마주한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으로 버티는 몸부림.사랑과 부정이 같은 선택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걸, 이 다큐는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오래 남는 건 영화의 엔딩후 나오는데 누나가 감독님께 손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마치 내게 잘가라 이야기 들어줘 고맙다 인사하는 듯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이도, 병력도 의식되지 않았던 감독님 누님. 사진 찍을 때 귀여운 포즈를 하는 걸 보는데, 지나간 세월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부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정답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답"이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낯설어지는 순간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가진 것으로 버틴다. 그 시대엔 그것이 침묵이었고, 부정이었고, 때로는 열쇠였다. 비난도 연민도 아닌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L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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