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늘 피곤했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무거웠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바쁜 것도 아닌데 왜 이토록 지치고 허한 걸까. 그 피로는 단순한 육체의 고단함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무력감처럼 느껴졌다.
『백기사 신드롬』을 읽으며 나는 이 피곤함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나의 피로는, ‘도와야만 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내가 힘들어도 먼저 웃으며 안부를 묻고, 혼자 울면서도 누군가의 짐을 함께 짊어졌던 시간들. 그 모든 감정노동이 내 안에 쌓이고 쌓여, 피로라는 이름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움은 기꺼이 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해야만 하는 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조차, “그래, 괜찮아. 내가 할게.”라는 말이 입에서 먼저 나왔다. 상대는 고마워했지만, 정작 나는 점점 말라갔다. 감정의 수분이 빠져나가듯, 내 마음은 건조해져 있었다.
피로를 마주한 지금,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지친 건 당연해. 너는 너무 오랫동안, 네 몫이 아닌 짐까지도 짊어졌잖아.”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도와야만 괜찮은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고, 내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내 마음이 피로하다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도 스스로를 용서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연습하며,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회복이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