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유리창1 - 정지용 시인 정지용은 1902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다.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 시단을 대표했던 인물로 언급된다. 한국시인협회에서도 한국 문학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시인이라 평가받고 있다. 시 초반에, 화자는 유리창을 향해 입김을 분다. 유리창에 김이 서리고, 그 속에는 화자의 죽은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화자는 아이를 보기 위해 몇번이고 입김을 불고, 아이는 화자의 입김과 서리가 사라짐에 의해 몇번이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떄 화자는 두가지 역설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사라졌을 때 남은 유리에 비치는 깜깜한 밤의 모습은 화자의 상실감과 허탈함을 부각시킨다. 화자는 아이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닦기 위해 유리를 닦는다. 유리를 닦는 모습은 애절하면서도 비극적인 화자의 상황을 부각시킨다. 화자는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을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한다. 한국 유명 시인의 작품을 여럿 공부해본 학생이라면, 다양한 문학작품에 관심이 있는 어른이라면, 다음의 구절은 아마도 매우 익숙하게 들릴 것이다. 역설 표현이 사용된 예시 구절로 자주 언급되는 구절이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그저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행위를 외롭다고 한다면 이해가 가지만, 외로우면서도 황홀하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 화자의 처지를 살펴보면 당사자의 마음과 상황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아이를 잃은 상황, 그리고 밤에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유리창의 입김을 통해 아이를 잠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에 동시에 '황홀함'도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