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Sign In

45번째_봉독뉴스_250227_딸이 이걸 왜 하냐고 물었습니다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_봉독뉴스_45호]
샬롬 :)
안녕하세요,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 <봉독>, 봉독지기 김세규 인사드립니다.
드디어 3월이네요!
날씨가 어떻든, 기온이 어떻든, 저는 11월 1일부터 겨울로, 3월 1일부터 봄으로 여깁니다. 물론 3월에도 분명 꽃샘추위가 있을 테고 심지어 봄 눈까지 만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저에게는 3월 1일부터 봄입니다.
○ 심판 같은 겨울 뒤에 오는 봄 같은 회복
전에 안내드린 것처럼, 이번 주 <봉독>은 <에스겔> 39장부터, 마지막 장 48장까지 봉독했습니다 40장부터는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에 대한 회복-환상이, 마치 봄처럼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 뒤에 이어지는 회복을, 심판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성전의 총면적과 내부시설을 밝히 보이셨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난 문들과 안뜰, 안뜰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부속 건물들, 지성소의 골방들 등의 환상인데 ‘있을 사실’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정사실화된 회복이고, 반드시 올 봄으로 말입니다. 마지막 장, 48장에서 ‘거룩하게 바친 땅’에 대한 말씀과 명령으로 <에스겔> 봉독을 마쳤을 때, 긴 겨울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유독 사건 사고 많았던 우리의 긴 겨울을 말씀-봉독으로 지켜 보호해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 중2의 기대
봄방학이었던 중2가 되는 딸 지오가 지난 2주 <봉독>에 함께했습니다. 지오는 나름 기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오는 중학생이 되며 익숙했던 새번역이 아닌 개역개정으로 큐티를 하게 되었는데, 안 그래도 쉽지 않았던 말씀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며 종종 투덜거렸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봉독>이라는 것을 하고, 성경을 천천히 집중해서 읽는다고 하니, 궁금하고 기대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처럼 그렇게 천천히 성경을 거룩하게(?) 읽으면, 정말 성경 내용이 저절로 다 이해가 되나?’
어렵기만 한 성경이 좀 쉬워지려나,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성경이 좀 이해가 되려나, 하는 기대였습니다.
사실 지오와 똑같은 기대를 안고, 저도 45주 전, 작년 4월 <봉독>을 시작했었습니다.
○ “아빠, 읽어도 여전히 모르겠는데 왜 이걸 해?”
지오는 시험(?)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와서 거룩하게(?) 성경을 정성껏 읽는데도 여전히 말씀은 어렵고, 내용은 특별히 쉬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봉독하면 어떤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 성경-내용이 파악되고, 성경-박사가 될 수 있는 조짐 같은 것이 임할 줄 알았는데, 지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게 자기 기대 같지 않았던 두 번의 <봉독>을 마치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읽어도 여전히 모르겠는데 왜 이걸 해?”
○ 봉독은 왜 하지?
지오의 저 질문은 바로 저의 오랜 질문이었습니다.
“봉독은 왜 하지?”
먼저 이 질문은 하나님의 입장이 아닌, 제 입장에서 쏘아 올린 질문입니다. ‘왜’를 품은 질문은, ‘필요-충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필요’는 종종 ‘목표’가 되기도 하는데, 그 ‘필요’나 ‘목표’가 ‘충족’되지 않을 때,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가 제 자신에게 한 이 질문 속 ‘왜’의 중심에는, 지오처럼, ‘성경→내용→파악→이해’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환경에서 정성 다해 봉독하면, 봉독한 성경 내용이 ‘스르륵’ 이해되고 ‘저절로’ 알게 되는 은혜가 임하리라 기대했습니다. 지오와 같았습니다.
○ 하나님은 왜?
봉독해도 <에스겔>은 당연하게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봉독하는 순간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숱합니다.
"그런데, 봉독은 왜 하지?"
‘내용 이해’라는 ‘필요 충족’이 나의 ‘왜’가 향한 목표였습니다. 답이 안 나오니 답답한 마음에 입장을 한 번 바꿔 봤습니다. 하나님 입장으로 말입니다. 봉독한다고 저절로 성경 내용이 파악이 되고, 성경 박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봉독하라고 하신 거지?
○ 봉독의 목적은 봉독 자체이다
이 질문과 씨름하며 봉독했습니다. 봉독하는 순간에도 주님께 물었고, 봉독을 준비할 때도, 봉독을 마친 후에도 물었습니다.
하나님, 봉독 왜 해요? 하나님, 하나님이 봉독에 심어 놓으신 봉독의 뜻과 봉독의 힘을 온전히 알고 싶어요!
45주째 봉독하고 있는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답은 이거였습니다.
봉독의 목적은 봉독 그 자체였습니다.
봉독의 목적은 성경 내용 파악해서 성경-지식인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마음 만나는 말씀-예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봉독은 성경을 읽는 게 아니라, 나의 중심을 말씀에 얹어 하나님께 올리는 행위였습니다.
봉독은 말씀-소리로 나의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을 깨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봉독은, 하나님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고백하고, 나의 중심을 하나님 향해 올리는 행동-예배였습니다.
<봉독>을 마치고, 함께한 봉독자님들에게 이런 제 생각을 잠시 나누었습니다. 왜냐하면, ‘봉독은 왜 하지?’라는 질문은, 지오랑 저에게만 있는 의심(?)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있는 질문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생각이, 저 한켠에서 봉독에 지쳐(?) 핸드폰을 하고 있는 지오 귀에 닿기도 바랐습니다. 지금 당장 아빠의 이 모든 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 오시는 길, 이미 봉독이 시작됩니다
일산에서 오시는 분도 계시고, 서울 여러 끝에서 오시는 분들로 계십니다.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봉독>하기 위해, ‘봉독당’을 향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하시는 순간, 이미 <봉독>은 시작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배자로 일어섰고, 나의 중심을 하나님 중심으로 맞춰 드리려는 예배가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시는 길, 벌써 <봉독>은 시작되었습니다.
○ 새번역, 새마음으로
다음 주는 이제 신약을 먹을 차례입니다. <로마서>입니다. <봉독>에서 두 번째 만나는 <로마서>입니다. 어려울 것 같아, 내용이 잘 파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염려가 되시나요? 그런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여전히 내용까지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을 담아, 이번 <로마서>는 ‘새번역’으로 봉독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강대상용’ ‘특대’ 성경을 구하기 어려워 시도 못한 것도 있었는데, 친구의 도움으로 이 성경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봄입니다.
‘새번역’으로 우리의 새마음을 새롭게 <봉독>에 담아 하나님께 올려 드려 봐요.
사도 바울이 봄 문을, <로마서>로 열어 주십니다.
여러분을 초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