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사물들은 매끄러운 비닐민속장판(정서영, 〈–어〉), 차곡차곡 쌓아 올린 A4 용지 더미(박이소, 〈A4를 위한 소조〉), 촉촉한 수분을 뿜어내는 대야, 스펀지와 수건 같은 잡동사니들(이주요, 〈가습기〉), 인생 시기마다 갈아입은 유니폼들(서도호, 〈유니폼/들: 자화상/들: 나의 39년 인생〉), 전시장 벽에 밝은 화면을 투사하는 프로젝터(박진아, 〈프로젝터 테스트〉), 이른 저녁부터 어둠을 밝혀 주는 임시 작업등(양유연, 〈From Early Evening〉), 지점토로 빚은 통닭 두 마리(김범, 〈12개의 조각적 조리법〉), 따뜻하게 데워주는 전자레인지(베르트랑 라비에, 〈FM 400〉), 길게 펼쳐지는 보드라운 카펫(임민욱, 〈알라딘_인터체인지〉),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그물망 항아리(정광호, 〈항아리〉)입니다. 무대에 오른 사물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적 사물이자 생경한 미술 작품입니다. 이들은 때로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악동이면서, 함께 일하고 음식과 온기를 나누는 동료이고, 우리의 은밀한 개인사와 함께 겪어온 시대사를 조잘대는 이야기꾼이고, 때로는 우리 몸을 감싸안고 위로하는 친구이자 우리가 알던 미술이 미술이 아니라고 가르치려 드는 선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