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기록

All
감정 쏟아내기
생각
쓰고 싶은 글
아스라이
내 바람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내게 평범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하루에 두어 끼 정도 적당히 밥을 먹고, 가끔은 한 끼밖에 못 먹어서 허기졌다 하다가도 금세 다음 식사에 갈증이 누그러드는. 아주 넓고 번지르르한 집이 아니더라도, 내 잠자리 있고 씻을 공간 있으며 좋아하는 물건 몇 가지는 들여놓을 수 있는. 요즘 주변의 누군가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불편해 고민하다가도, 밥 뭐 먹을까 하는 그런 사소하고도 행복한 고민으로 넘어가는.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는 스스로의 시간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할애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삶. 언제 죽을까 두렵고, 왜 이렇게 망가졌나 싶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하는, 고통이 의식을 지배해 이인감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생애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스트레스 받고 평범하게 행복하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범주 안의 일들이 일어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당신의 곁에 머물고 싶어 했던 건, 당신과 함께라면 나도 이러한 평범함의 범주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감각 때문이었겠지. 마치 내가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처럼 흉내낼 수 있을 듯 싶어서였겠지. 다음을 기약하며 머릿속에 미래를 그리고, 잠깐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그 평범에 가까운 삶을 맛볼 수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거기에 가까워졌다 착각할 수 있어서였겠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거더라. 나도 이제 목숨 걱정 죽을 걱정 안 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병원에 들락거리는 일 없이 그냥 살아가고 싶은데, 내가 가진 이 병마의 덩어리는 나를 마구 헤집어 피폐한 삶의 가운데에 던져 놓는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몰라.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 되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내가 바라고 평범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몰라. 밤이 오면 별을 보고 별자리를 찾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절 오갈 때마다 제철 과일 두어 개쯤 오물거리며 저번에 간 거기는 그런 게 재미있었지 하고 웃음짓고 바보같은 농담 한 마디에 즐겁다 하며 시간이 언제 이리 빨리 지난 건가 행복하게 놀라고···. 모든 것이 아스라이 지나간다. 그 모든 것은 내 생각 안의 이상이라는 존재일 뿐. 언젠가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 날이 올까. 과연 나도 더 이상 이런 삶의 극단을 달리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며칠 뒤면 내가 이 병마와 싸워 온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것이 된다. 이건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고통스러운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느 자기파괴적 사고가 나를 꼼짝도 못하고 비명을 목구멍 안으로 욱여넣으며 현실감을 찾게 만드는지 모른다. 나 말고는 모두가 모른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가늠은 할 수 있지만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다. 그저 내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했어. 고생했어. 잘 살아남았어. 너는 생존한 거야. 많은 사람이 발병 후 5년 내로 사망하는 끔찍한 병으로부터 살아남은 거야. 내겐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미디어 매체가 필요 없다. 이게 곧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도 살아남았으니 내일도 살아남자. 이건 영원을 달리는 생존 일기다. 부디 그렇게 또 다시 내일도 한 줄을 더 써내려갈 수 있기를.
  1. 쓰고 싶은 글
  2. 생각
Dec 16, 2024
  • 이백
전지한 신은 그래서 대단하다
우매한 인간인 나는 스스로의 공포와 두려움에 다가설 때마다 공황의 바다에 빠져들고 맙니다. 떨립니다. 떨고 있습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립니다. 내 생각도 떨립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아직 이 극의 막을 종지부라고 결론짓고 싶지 않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자꾸 또 다시 금이 가는 것이 느껴지고, 나사가 아닌 부품이 빠져나가는 것을 어느새 인지하고 말았습니다. ​ 내가 어느 것을 잃어버렸습니까? 내 존재를 위해 지탱할 수 있는 부품은 내가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답니까?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햇빛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습니다. 분명 똑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어도 계속해서 따뜻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며, 저 나무가 자란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래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싶습니다. 그 무엇도 알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싫어 계속해서 멍청해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소용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 어귀에 앉아 조용히 빨려들어가는 기분일 때면, 내가 현재 정말 앉아있는 이 곳이 지옥불 위 같이 느껴집니다.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한 마디만 들려주세요. 그래, 차라리 그래도 좋으니 내가 이상한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이상한 것은 본인이 이상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합니다. 그러니 제가 스스로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공포만은 끊어내 주십시오. 신이 있다면, 당신은 그 전지를 어떻게 감당하는 것입니까? 다른 이들은 모두 전지를 부러워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당신의 정신이 부럽습니다. 필시 전지라면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인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것을 알 텐데, 그러한 전지를 가지고도 미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정말 진정한 신이 아니겠습니까?
  1. 감정 쏟아내기
  2. 생각
Aug 12, 2023
  • 이백
불꽃
우리가 아무리 맨몸을 비벼봤자 불씨조차 하나 만들지 못하는데 우리는 항상 서로를 위해 장작이 되어 불탔지 네가 곁에 머물러 주기만 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그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항상 그렇게 곁을 내주기를 원했어 사랑은 어리석어 매번 인간을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사람은 너무나 약하고도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 조심히 다뤄야 하는데도 빌어먹을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게 만들어 그러나 어리석기에 아름다웠고 어리석기에 사랑이었어 바보 같기 때문에 사랑이 낭만적인 거였어 나는 그걸 깨닫는 데에 꽤나 오래 걸렸어 어리석은 사랑을 해야 하는데 그저 한없이 어리석기만 하고 사랑 따위는 없었지 불이 붙어 타오르는 저기 저 사람들처럼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나까지도 꺼져버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제대로 타오르지조차 못했어 그래서 네게 따뜻하고 밝은 시간들만 안겨주고 싶었지만 때로는 어둡고 차갑기도 했어 그렇지만 그 시간이 무의미하기만 한 것은 아니야 그런 시간들을 보내왔기에 비로소 우리가 온전한 우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 또 다른 사람 만나 다시 불이 붙는 것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불타고 한없이 빛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영혼이 불꽃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서로 섞여 있는지도 몰라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함께 불타고 서로에게 빛이 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따스함을 알았기에 많이 서투르지만 부서지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내 일부를 가져가고 또 네 일부를 가져오고 갈망하고 추억하고 내 가슴 속 깊이 새긴 채로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일 때 마다 그 기억을 꺼내 감정의 이정표로 삼아 그렇게 아직 어둠이 나를 온전히 장악하지는 않았음을 확인해 아름다웠기에 일찍 사라졌지만 아름다웠기에 영원으로 남을 수 있었어 우리가 타올랐던 시간은 이제는 사라졌기에 그 누구도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순간이 사라짐이 괴롭지만 그 부재는 실재해 너를 다시 만날 수는 없어도 네가 사라졌다는 것 만은 내가 영원토록 기억하겠지 비로소 사라짐은 내 안에 영원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이야 어떤 것의 존재는 그 부재를 통해 영원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너도 그래 네가 사라짐으로부터 네가 존재했음을 영원에 각인했어 비록 기억은 기억일 뿐이라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네가 온몸으로 증명한 부재만은 존재하겠지 네가 그토록 바라던 영원토록 찰나의 홀린 듯이 기쁘고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에 대한 강렬한 기억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내 홍채 한켠의 화상 자국으로 남았어 그렇게 그 기억도 지금의 남은 불꽃이 모조리 꺼질 때까지 눈앞에 아른거리겠지 끝내고 싶지 않던 사랑아 다시는 잃고 싶지 않던 사람아 이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시간아 내 삶을 뒤덮었던 갸륵했던 계절아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엔 그 때 비로소 다시 함께 잠에 들자 그리고 같이 발을 맞춰 춤을 추자 밤이 새도록 또 다른 태양이 우리의 보금자리를 여명으로 가득 메울 때까지 끝나지 않는 왈츠를 추자 그렇게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없는 영원을 기약하자
  1. 쓰고 싶은 글
Dec 12, 2024
  • 이백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건 변한다는 것. 이리저리 구르고 깨지고 변화하는 것이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것. 나는 너를 만나기 전까지 쭉 죽어 있었어. 죽은 듯이 울지도 웃지도 않고 행복도 두려움도 모르고 삶을 흘려보냈어. 너를 만난 뒤로 그제서야 변화하기 시작했어. 우리 삶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몰라. 살아있다는 것은 언제나 무서운 거야. 무섭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런데 무서운 게 사랑스럽다는 것은 몰랐어.
  1. 쓰고 싶은 글
Nov 16, 2024
  • 이백
날숨
내 고통엔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 내 현실엔 맥동이 없다. 느끼지 못한다. 감각의 잔상에 숨을 들이쉬면 아직 뱉지 못한 한숨 냄새가 난다.
  1. 감정 쏟아내기
May 28, 2023
  • 이백
모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난 이미 어둠에 스며들었겠지.
모두의 고향은 이름없는 너였나 봐. 누군가 무언가를 아득히 슬퍼하는 글을 읽어보면 다들 하나같이 너를 찾고 있어. 네가 그립대. 너를 찾는대. 너를 찾고 싶어 눈물을 흘리고 밥을 먹다가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검은 색의 가운데에서 다른 형형색색의 무언가를 찾았대. 다들 너를 찾아. 누구인지 형용되지 않는 그냥 너 그 자체를 찾는대. 누구인지 형용하지는 않고 그냥 일단 무작정 너를 찾았대. 밤에게 잡아먹힌 나는 아득히 혼자 내 눈동자 안을 바라보다가 거울 속의 얼굴 안으로 스며들어가선 자신을 바라본다. 심연을 계속 쳐다보면 심연이 나를 쳐다보게 되고 결국 심연에게 먹히게 된다. 하지만 나를 보는 것은 내가 이미 나를 보고 있기에 심연과는 다르게 벌써 나를 먹고 있었다. 나는 나였지만 나는 나를 먹고 또 나를 먹고 그 나를 또 다른 나가 먹게 되고 또 다른 나는... 결국 나는 나에 대해 체해서 무언가 꿈틀대는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 내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너무 많이 쌓여 너무 많은 토악질을 했다.
  1. 쓰고 싶은 글
  2. 감정 쏟아내기
Jul 9, 2020
  • 이백
AM 4: 12
새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감기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해가 떠 있을 적보다 시간이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그냥 울고 싶은 기분이 들다가, 그냥 푸근한 이불 속에 감싸여 자고 싶다가, 갑자기 익숙한 것이 텅 빈 것처럼 느껴젔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니, 이것이 감정이긴 한 것인가? 따뜻한 손길 하나를 느끼고 싶었다. 끝까지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끝. 그 끝에 누군가 함께하며 내 손을 잡고 있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잠이 들기 전마다 곧 오게 될 잠이 끝인 듯이 느껴졌다. 그런 건 싫은데. 난 내가 생각하는 끝에 누군가 함께해 주길 간절히 원했다. 생각해 보니, 난 누군가의 끝에 함께 손을 잡아준 적이 없었다. 아. 그런 거구나. 나는 한 번도 손을 잡아준 적이 없었다. 그런 주제에 타인의 손을 원하다니. 그걸 깨달은 뒤, 나는 그저 푸근한 이불 속에서 숨죽여 잠들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숨을 거칠게 내쉬며 잠을 자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다가는, 누군가 홱 찾아와서 내 목을 분질러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숨죽여 잠들었다. 아니, 잠들지 못했다. 언제까지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복잡해서 이야기하기가 너무 어렵다. 나는 혼자라는 느낌을 철저하게 깊이 받고 있었다. 혼자라는 느낌을 받을 때면 항상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되어 버린다. 내가 혼자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누군가를 원했다. 누군가를 갈망했다. 누군가를 간절히 따랐다. 그것은 마치 의존증 같았다. 나는 인간 의존증에 걸려 있었다. 설령 그것이 부모가 아니라 할지라도.
  1. 쓰고 싶은 글
  2. 감정 쏟아내기
Dec 3, 2020
  • 이백
예속을 결속해 아무도 속하지 않은, 오로지 홀로 살아가는 숲속 오두막 에 떨어진 듯이. 속마음을 알고 있는 족속들은 모두 속속들이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속마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오로지 스스로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내 속에 살아 나와 함께 숨을 먹고 있는 녀석들은 나쁜 이들이지만, 나를 위로해 주며 나를 옥죄이던 속박을 풀어주던 이들은 모두 산산이 흩어져 소리소문없이···.
  1. 쓰고 싶은 글
Dec 28, 2022
  • 이백
여름의 추락일기
추락하는 여름이다. 바보 놀이를 하며 너를 잊고 있다. 자, 이건 바보 놀이야. 지금부터 내가 셋을 세면 너는 바보가 되어서 나를 전부 잊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나를 너는 영영 찾지 못하게 될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걸음을 맞춰 걷는 두 사람. 잠깐 동안은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며 시선도 같이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과연 너를 기다려 줄까? 한 발짝 뒤에서는 허둥지둥 그를 쫓아가다가, 두 발짝 뒤에서는 그의 그림자 속에라도 머무르려 하다가, 세 발짝 뒤에서는. 해가 중천에 떠 그림자가 짧아지면. 그림자 조차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면. 철로 한복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채로 가만히 서서, 곧이어 들어오는 열차 소리에 귀가 터져 나가고. 그 후로 눈, 손, 입, 피부가 차례대로 바닥에 떨어질 거야. 그렇게 곤두박질치고 말겠지. 자신이 서 있던 곳이 철로였다는 것도 모른 채로, 그에게만 정신이 팔린 네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괜찮아, 그 사람은 갈수록 밝아지는 별이라 멀리서도 지켜볼 수 있을 거야. 물론 조각난 눈동자로도 멀쩡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말이야.
  1. 쓰고 싶은 글
Nov 22, 2024
  • 이백
무지염원
모든 걸 알게 되면 인간은 미쳐버린다. 신은 전지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인 것이렸다.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희희낙락 즐겁게 살아가고 싶었다. 원래 가난한 철학자보다 배부른 돼지가 더 행복한 것이라 했던가. 불안, 공황, 허무, 우울, 절망, 분노, 경멸, 혐오, 자책, 초조, 환멸, 무력, 고통, 회의, 허탈, 야속, 원망, 억울, 질투, 실망, 혼란, 난처, 긴장, 후회, 염려, 그리고 또 다시 후회와, 질투와, 공황과, 절망과, 혐오가.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르고 싶었다. 그런데 알게 되더라. 점점 쌓여가더라.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도 계속해서 쌓여가더라. 그렇게 재로 가득 찬 재떨이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다 보면 종종 특별한 사건 없이도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보내게 될 그런 시간들을 잘 보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건 상관 없다는 듯이 삶은 야속하게도 지속되어 간다. 게다가 그런 나조차도 이 삶을 선택적으로 끝맺을 용기 따위는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살아갈 뿐이다. 내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고통이 느껴지는 이 시간들을 잘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자신을 어떻게 찢어발겨야 할지 궁리하는 사람이다. 자기혐오가 내 숨통을 짓누른다. 나는 그렇게 기도가 반쯤 막힌 채로, 그 사이로 조금씩 오가는 옅은 숨을 겨우 들이쉴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계속 존재하기는 해야 해! 계속해서 감각이든, 감정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느끼기는 해야 해! 앞으로도 쭉 그 부정적인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도록 해. 그리고 아무도 네 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몸 사이사이에 욱여넣도록. 설령 네 부품이 손상된다 하더라도. 타인 앞에서는 똑바로 웃을 것. 아무렇지 않은 척이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나를 보았을 때에 비슷한 생각조차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바깥에는 긍정적인 사고를 내보일 것. 자신의 부정적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티나지 않도록 다른 이들에게 또한 열정적으로 관심을 보일 것. 떨리는 손의 울림을 멈추고 지금 느끼는 것과는 반대의 행복을 적어 내려갈 것. 착한 사람의 탈을 쓰고 아무런 고통과도 연계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일 것. 만일 그 어떤 감정이라도 발각되었다면 그 즉시 도주할 것···. 9년. 이제 9년이다. 처음 정신질환이 발병했을 때에 생각했던 것이 있었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평생, 그러니까 15년 동안 겪은 일 때문에 병이 생겼으니 이 병이 낫는 데에도 똑같은 시간이 들게 되지 않을까?'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에는 나아지겠지, 하고 치부하며 마음 속 구석에 이 생각을 방치해 두었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15년이 걸리려는 걸까. 그렇다면 내게는 아직 6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것일까. 내가 그 시간동안 죽지 않고 잘 살아있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만 해도 팔 한 켠에는 흉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욱씬거리며 아려올 정도로 상처가 깊게 났었는데. 앞으로도 이와 같거나 혹은 이보다 더한 상처를 일절 만들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과연?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떤 인간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 않을까. 누구나 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행복이 맞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내 머리의 오염된 부분들은 계속해서 고통스러운 생각을 자가생산해 간다. 제발 그만.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 해 달라며 애원해 보아도 내 뇌는 그동안의 고통들로 인해 이미 부품 몇 개가 빠진 상태일 뿐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렸다. 벗어나고 싶다. 남은 생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 그저 염원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바라고 또 바라 본다. 그 언젠가가 내일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그 내일이 올 때까지는 다시 아무것도 모르게 되기를 바라며. 내게는 버거운 것들이 야속하게도 계속해서 목을 찔러 온다. 그래, 그렇다고 해서 이 목을 베어낼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대로라도 살아가자. 기필코 살아내는 거야.
  1. 쓰고 싶은 글
  2. 감정 쏟아내기
Nov 26, 2024
  • 이백
또 인간에게 영혼을 팔고 말았다.
무능하게 있었던 시간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인생 전반이 모두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치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아다닌다. 영원하지 못한 존재인 인간관계에는 더 이상 의지해서는 안 되는데. 그러나 나는 또 다시 새로 찾은 인간관계에 몸을 내던지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 부하되고 말았다. 신은 혐기성이었다. 그는 혐기성이었기 때문에 혐기성일 수 없는 인간으로부터 신이라고 칭송받고 있었다. 내 감정도 혐기성일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공간이 점점 좁아져 간다. 공간에 목숨을 구걸했다.
  1. 감정 쏟아내기
  2. 생각
Nov 25, 2024
  • 이백